엄마의 질문
이번 주엔 집에 오니?
왜 요즘 자주 연락 안 하니, 회사 일은 어떠니, 관심 있는 사람은 없니, 지난번에 가져 간 김치는 아직 있니, 왜 다 안 먹었어, 이불 바꿀 때 되지 않았니.
집에 가야 하는데.. 하는 압박과 엄마의 기다림을 버티고 버티다 집에 가는 길이면, 엄마가 '아마 할지도 모를' 질문들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며 미리 방어 태세를 갖춘다. 면접을 보러 가는 것도 아닌데, 어느새 머릿속 한 바닥을 빼곡히 채운 '그다지 귀찮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대답해 드리는 모양'의 후진 답변들. 하지만, 이 훌륭한 리스트는 대부분 예상을 비껴간다. 엄마는, 내게 오랜만의 저녁 한 끼를 먹여야 할 그녀는, 그저 물을 따름이다. 오늘 점심 뭐 먹었어?
엄마는 티 한 장도 혼자 못 사 입어?
더운 여름, 에어컨 바람 한 자락 없이 지낼 엄마를 위해 찾아간 옷집에서 구멍 숭숭 난 티를 뒤적거리며 나는 혼자 시키지도 않은 짜증을 냈다. 아는데. 못 사 입는 게 아니라 안 사 입는 거라는 걸, 이미 자신을 위해 쓰는 모든 돈을 사치라고 여기고 삽십 년을 살아버린 탓이라는 걸, 아는데, 딸년이라는 죄로 나는 계속 푹푹 짜증이 났다.
엄마가 내 옷을 사주던 시절엔, 엄마도 엄마의 엄마 옷을 사주었다.
엄마가 속이 쑥 비치는 화려한 꽃무늬 티를 들고 77이요, 하고 말하면 엄마의 나머지 손을 잡고 있던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오엥, 우리 외할머니 이렇게 안 뚱뚱한데 왜 엄마보다 큰 옷을 입는 거지? 내 엄마가 그때의 엄마의 엄마만큼 더위를 타는 지금은, 안다. 나이 든 여자의 체형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왜 그때 꽃무늬 티를 고르던 엄마가 자꾸만 옅은 한숨을 쉬었는지를.
저녁을 먹고, 나란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평소 일 때문에 많이 걸어야 하는 엄마의 슬립온 하나를 샀다. 이 신발의 이름이 '슬립온'인 줄은 모르는 엄마가, 1년 전부터 '니 그 검은 신발 같은 거' 갖고 싶다고 했던, 그 신발. 관심 없던 새 무지외반증이 더 심해져 나보다 작은 발에 나보다 큰 신발을 신어야 하는 엄마가, 저건 볼이 넓어 참 좋아 보인다던, 그 신발. 딸이 둘이나 있으면서도 혹여 짜증을 낼까 귀찮을까 말도 못 하고 혼자 아울렛에 가서 십오만 원짜리를 들었다 놓았다 했을, 그 신발.
엄마, 내가 쿠폰 받아서 이거 삼만 칠천 이백 십원에 샀어! 짱이지? 하니 비로소 엄마의 표정을 피게 한, 망할 그 신발.
"지수야 저런 걸 써야지 류현x~라면"
"엄마는 돈 만턴데에~~ 너도 이런 걸 써야지"
갓 카피라이터가 되었을 무렵, 엄마는 같이 티비를 보다가 종종 너도 저런 걸 써야지,라고 하셨다. 그럴 때마다 내가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와서까지 일 얘길 들어야 하냐며 버럭 했지만 생각해보면 엄마는 늘 그랬다.
"아까 너네 교복 입은 애들이 지나가는데.."
"야 마트 갔는데 너네 회사 칫솔 세일 하드라"
"엄마가 이런 광고를 봤는데.."
엄마의 세상은, 나의 세상에 맞춰 달라 보이는 걸까?
아무리 별 것 아닌 작은 광고라도 우리 팀에서 만들었다고 하면 진짜야?! 하며 볼부터 빨개지는 사람. 토요일이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떡볶이 재료를 사다 놓고 종일 올지 안 올지 모를 나를 기다리는 사람. 새벽 출근을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나를 쿡쿡 찌르며 오늘의 두부 쉐이크에 무엇 무엇이 들었는지를 자랑하는 사람.
엄마, 다음 주말에 또 올게!
나는 또 지키지 않을 약속을 하고 만다.
'작은 네가 올해의 여름을 잊어버려도, 엄마가 계속 기억해줄게!'
(일본 '글리코 유업' 광고)
엄마는 이모티콘을 잘 쓴다. 어찌나 적재적소에 기가 막히게 활용하는지 그것들을 수백 장 캡쳐해놓은 폴더가 따로 있을 정도다. 엄마는 단 하나의 카톡도 글만 적어 보내는 법이 없다. 내가 회사에서 깨졌다고 하면 입에서 불을 쏘며 밥상을 뒤엎는 콘을, 야근을 한다고 하면 쭈그려 앉아 엉엉 울고 있는 라이언을 보낸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 언젠가의 정월 대보름, 내 더위 사가~라! 고 보낸 카톡에 엄마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살께!

어차피 더울거니까♡
나혼자 산지 어느덧 4년 차. 안 하면 티 나고, 열심히 해야 티 안나는 온갖 집안일들을 하며 비로소 30년이 넘도록 티 안 났던 엄마의 세월을 알게 되었다. 까똑, 엄마, 나 오늘 퇴근해서 빨래하고 청소하고 옷장 정리하고 운동화 빨았어. 까똑, 이제 분리수거하러 갔다가 물 사 올 거야. 까똑, 엄마 왜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어? 세상 누구에게라도 티를 내야겠는 쪼렙의 나는 엄마를 일기장 삼아 잘잘한 카톡을 적는다. 엄마는, 때론 집안일이란 게 원래 그런 거라며, 때론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자버리자! 고, 가끔은 우리 모두 그렇게 쓸쓸한 거라며, 나의 사소한 순간들에 일일이 댓글을 달아 준다.
네오가, 무지가, 요즘은 라이언이 들고 오는 엄마의 인생 지혜를 들으며 오늘도 내 하루는 까똑, 위로받는다.
"엄마, 잘 가..!"
엄마의 엄마가 떠나가던 날, 엄마는 막 나가려는 관 끝을 겨우 톡 하고 건드려 보며 한 줄기로 울었다. 내내 실감이 나지 않아 슬픈 줄도 모르던 난, 엄마의 그 짧은 한 마디에 비로소 깜짝 놀란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었구나' 하는 너무나 당연한 깨달음이 가슴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세상 이기적인 두려움이 밀려와 오열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나의 엄마도 떠나가면, 엄마가 없는 세상이 오면, 나는 어쩌지?
엄마에겐 언제나 답이 있었다.
맑은 하늘과 일기예보 사이에서 고민을 하면, 엄마는 꼭 우산의 편을 들었다. 비 맞느니 손 무거운 게 낫다. 날씨는 신기하게도 엄마 말을 잘 들었다. 엄마가 우산을 가져 가라고 하면, 비가 왔다. 엄마가 겉옷을 챙겨 가라고 하면,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다. 엄마는 으쓱해했다. '거 봐라, 엄마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사실 우산과 겉옷이 짐이 되었던 날이 더 많았다. 그래도 나는 엄마 말을 들었다. 누군가의 '챙김'으로 무거워진 손이 좋아서.
엄마, 오늘은 나만 빼고 다 싫어. 엄마, 내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엄마, 사는 건 왜 이렇게 힘들어?
더 이상 '엄마 나 오늘 뭐 입어?'를 묻지 않는 지금도, 엄마에겐 언제나 답이 있다. 엄마라고 삶의 전부를 아는 것은 아닐 텐데, 내 모든 질문에 꼭 답을 해 주기 위해 엄마는 열심히 답을 찾는다.
가끔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 투정을 부린다. 엄마의 말대로 살았더니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모르고 커버렸다는 비싼 투정. 그래,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만 살 수는 없을지 모른다. 뒤늦게 원망이 들 때도 있을 거고 그를 거슬러보지 못한 것에 후회도 하겠지. 하지만, 셀 수 없는 인생의 순간 동안 엄마를 따랐을 때 최소한 내가 아픔이나 슬픔을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녀의 답안지엔, 오로지 어떻게 하면 내가 다치지 않을까에 대한 오지 선다로 가득하므로.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너에게 해줄 말이 없지만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 속을 뒤져 할 말을 찾지
- 양희은, '엄마가 딸에게'
일어났니?
출근했어? 점심 먹었니? 저녁은 먹었어? 야근하니? 오늘도 늦어서 어쩌니?
종종 엄마의 질문들이 부담스럽다. 나 살기도 바쁘고 벅찬데 일일이 엄마에게 나의 일상을 설명하는 것도, 잘 지내는 모양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도 무겁... 아니 그냥 내가 모지리라서.
연애할 때는 상대에게 묻지도 않은 일상을 분 단위로 시시콜콜 보고하면서 고작 내가 ‘살아있는가’를 궁금해하는 엄마의 저 질문들이 뭐라고. 엄마의 질문들은 전부 주어가 너, 그래 나라는 놈인데, 그래서 나밖에 대답해줄 수가 없는 것인데, 이깟 질문들에 응, 아니 대답하는 것이 대체 뭐라고.
고현정이 디마프에서 그랬다. 우리 세상 모든 자식들은, 눈물을 흘릴 자격도 없다고. 우리 다, 너무나 염치없으므로.
가끔 새벽에 퇴근해 무거운 몸을 풀썩 놓인 때면, 나와 시계의 숨소리만 번갈아 들리는 고요함 속에서 종일 답하지 못한 엄마의 카톡들을 넘겨 보며 또 염치없는 두려움을 느낀다. 언젠가 엄마가 없는 세상이 올까 봐, 언젠가 흰 운동화는 대체 어떻게 빨아야 하는지 물을 사람이 없을까 봐, 언젠가 세상 그 누구도 매일 아침 내가 살아있음을 궁금해하지 않을까 봐, 가만히 입을 열어 부른다. 엄마, 엄마, 엄마..
글|작은바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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