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그렇다고 했는데...
분명 뇌과학책에서 그랬던 것 같다.
어느 책에서 본 건지는 기억 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렇다고 했다.
잘 때 영어를 틀어 놓으면 내가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자는 동안 귀에 들리는 영어가 자연스럽게 뇌에 흡수되어서 나중에는 자기도 모르게 영어가 튀어나온다고. 솔깃할 수밖에 없는 정보였다. 일단 내가 뭘 안 해도 된다는 사실이 아주 눈길을 끌었다.
틀어 놓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그런 거잖아?
분명 20대까지만 해도 독신주의자였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매일 밤 함께 누워 침대를 공유하는 사람이 생긴 관계로, 이어폰을 이용하는 것 외에 달리 방도는 없었다.
하지만 무선 이어폰이라는 건 아직 존재하기 전이었다. 아니, 존재했을 수도 있는데 아마 심각하게 고가여서 나와 같은 대중의 손에는 아직 닿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쨌든 자면서 혼자 영어를 들으려니 침대 옆 협탁 위에 있는 휴대전화에 유선 이어폰 줄을 연결해야 했다.
며칠 해보니 장점이 있었다.
자면서 귀에 영어 음성이 들리니 마치 공부를 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정말로 있었다.
공부를 하면 분명 책을 몇 장 안 본 것 같은데 어느새 나의 코가 책 사이에 박혀 양질의 수면을 취할 수 있었던 것처럼, 분명 귀에서 영어 문장이 몇 마디 들리지 않은 것 같은데 일어나 보면 아침이었다.
자면서 영어를 틀어 놓는 것으로 그렇게 빠른 취침을 할 수 있다니, 이렇게 임상 실험으로 검증된 불면증 치료 효과에 대해서 과학 저널에 논문이라도 써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단점도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정신이 약간 몽롱했다. 간밤에 귀로 쏙쏙 들어오던 영어가 아침에 일어나서도 귓가에 맴도는 느낌이 있었다. 그렇다고 '오, 영어를 틀어 놓으면 영어가 더 들리긴 하는 건가?'라고 기대를 할 필요는 없다. 귓가에 맴도는 그 소리가 또렷한 영어 문장이 아니라 모기의 앵앵거림 같은 모호하지만 거슬리는 소리였을 뿐이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 정말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잠을 어떻게 잔 건지는 알 수가 없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유선 이어폰 줄이 목을 칭칭 감고 있을 때가 있었다.
영어를 뇌에 집어넣고 싶다고 해도, 질식사를 감수하고 할 만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자면서 영어 틀어 놓기는, 살기 위해 그만두었다.
치킨과 맥주가 있는 이 세상을 떠나기에는 너무나도 젊은 나이였으므로.
[삽질 복기]
- 제목은 모르지만 그 뇌과학책은 갖다 버릴 것이다.
- 그냥 잠을 푹 잘 것이다.
- 음, 근데 무선 이어폰이 이으니까 이제?
- 음, 삶이 버거워 잠 못 이루는 밤에는 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