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배움
야생에 있던 그들이 배가 고파서 그랬나 보다.
넷플릭스의 침공이 시작되면서, 그렇게 온갖 동물들이 우리 집으로 기어들어 왔다. 호랑이, 치타, 사자, 코끼리, 범고래, 문어, 펭귄, 산호, 기러기, 열대 조류 등 종류가 너무 다양해서 다 헤아릴 수가 없다(사실 기억 안 난다).
영어 공부를 핑계로 다큐멘터리들을 열심히 골라보았다.
디즈니플러스, 쿠팡플레이 등 OTT 채널에 갖다 바치는 돈이 늘어날수록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도 늘었고, 세계 경제에 이바지하고 싶은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큐리오시티 스트림(Curiosity Stream) 같은 다큐멘터리 전문 서비스도 구독했다.
동물의 세계는 아름다웠지만 냉혹했고, 흥미로웠지만 잔인했다. 인간이 사는 세상보다는 덜 냉혹하고 덜 잔인했지만, 충분히 아름답고 흥미로웠다.
동물 다큐멘터리를 볼 만큼 보니 그 야생에 세계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는 대충 감을 잡게 된 것 같았다. 그들의 영역 확장 본능에서 영감을 받아 나도 영역을 확장해 본다. 동물의 왕국을 벗어나 요리, 과학, 역사, 인물, 건강 다큐멘터리로 경계선을 넓힌다. 본다고 열심히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새로운 작품이 계속 튀어나오는 바람에 행복의 도가니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리고 이모표 영어 신봉자가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지.
조카와 놀 때도 영어 다큐멘터리를 보며 놀았다. 영어는 알아듣지 못하고, 한글은 잘 읽지 못해 자막을 따라가지 못하는 꼬꼬마일 때는 변사 겸 성우 역할을 해야 했다. 화면이 바뀔 때마다 생동감 있게 해설을 넣어 주었다. 문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같이 울먹거리고 철새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같이 경이로움에 빠졌다.
BBC 스타일의 영국 영어도 늘고 내셔널지오그래픽 스타일의 미국식 영어도 늘었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아마도.
영어 공부라는 핑계가 있어서 참 좋았다.
앞으로도 이 핑계와 일생을 함께하고 싶다.
[삽질 복기]
- 사실 회화에는 별 쓸모가 없다.
- 그러나 교양에는 도움이 된다.
- 영어 대화에서 사용할 수 있는 어휘가 늘기는 늘잖아.- 변사인지 성우인지 아무튼 협업 제안이 오면 마다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