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원 동물의 세계
레슬링을 하잔다.
또?
격투기 중에서 선호하는 건 태권도이다. 몸이 딱 붙어서 붙잡고 부딪히며 하는 운동은 싫다. 상대방과의 적당한 거리 두기, 그리고 바닥과의 적당한 거리 두기 둘 다 가능한 격투기가 좋다.
근데 유일하게 있는 조카가 하필이면 남자아이고, 자꾸 레슬링을 하면서 놀자고 한다.
살아야 했다. 이 분위기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대안을 찾아야 했다.
함께 자연 다큐멘터리 영화를 자주 봤으니 잡지도 괜찮지 않을까? 인터넷을 찾아보다 보니 내셔널지오그래픽 영어 잡지가 눈에 들어왔다. 키즈 잡지와 리틀 키즈 잡지가 있는데 둘 다 흥미로워 보인다.
그래, 구매. 클릭. 클릭.
큼지막한 동물 사진이 잔뜩 박혀 있는 표지부터가 영 내 취향이 맞다. 조카에게 읽어주려고 산 건데 내가 더 끌리고 있는 것 같다.
거미 얘기도 있고, 재규어 얘기도 있고, 호랑이 얘기도 있다.
새로 입주하신 자연 다큐멘터리 잡지를 위해, 집 책장 한쪽에 편안하게 자리를 마련해 드리고 조카를 맞이했다. 역시나 레슬링을 하자고 했지만 거대한 거미 사진으로 조카를 유혹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영어 잡지 중 리틀 키즈는 문장이 아주 짧고, 문장의 수 자체가 적었다. 미국 드라마나 영어 원서에서 보기 어려운 동물 이름이나 그들의 생활상과 관련된 용어가 툭툭 튀어나온다.
리틀 키즈를 보고 키즈 잡지로 넘어가니 갑자기 활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건 백과사전인데?
감당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데, 글밥이 늘어나면서 조카의 호기심은 빠르게 사라져 버렸다. 아직 노안이 올 나이도 아닌데 내 눈에도 작은 글씨 크기가 좀 버겁다.
그래서 또 레슬링을 하잔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삽질 복기]
- 나도, 조카도 이제 리틀 키즈가 아니지만 리틀 키즈만 볼 것이다.
- 리틀 키즈 재독으로 다시 도전해 보겠다.
- 레슬링 결투 요청은 어떻게든 거부할 것이다.
- 남자아이 엄마들을 존경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