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말리는 시간은 영어 원서 소리 내서 읽는 시간

위잉위잉 쏼라쏼라

by 이보라



시련의 역사였다.


독서의 역사라고 부르고 싶지만 시련의 역사였다.


영어로 대화가 되기 시작할 때쯤부터였다. '이제 영어로 책을 읽어볼까?' 하고 고른 책들은 <안나 카레니나>나 <이솝 우화>, <두 도시 이야기> 같은 책들이었다. 중학교 때 배운 것 이상의 단어들은 모두 뇌를 떠난 지 오래인데(사실 진짜 떠나진 않고 그저 아주 뇌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아버린 것이지만) 겁이 없었다.


읽으려다 포기하고, 읽으려다 포기했다.


그러기를 한참.


그러다가 <쇼퍼 홀릭>이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같은, 상대적으로 술술 읽힌는 책을 만났다. 내가 원서를 읽는 게 아니라 원서가 읽히는 느낌을 처음으로 경험하면서 빠져들기 시작했고, 가벼운 연애 소설에서 자기계발서, 자서전, 경제경영서 같은 책까지 넘어갔다.


하지만 영어 원서 읽기를 시작한 지 10년도 더 지난 시점까지도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아무도 나에게 얘기해 주지 않은 바로 그것.


소리 내서 읽기.


일하면서도 영어를 잘 썼지만, 말하기에는 항상 아쉬움이 있었다. 영어를 잘한다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막힘도 오류도 없는 말하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었다.


그래서 영어 원서를 소리 내서 읽어보기 시작했다. 눈으로만 읽는 게 아니라 입으로도 읽기.


시작은 향수 기업 창업자인 조 말론의 책이었다. <Jo Malone: My Story>.


번역서가 없었기 때문에, 원서를 읽는 기쁨이 더 컸다. 영어를 하지 않았더라면 누리지 못했을 즐거움.


한 글자, 한 글자 소리 내서 읽기 시작했다.


가끔 웅얼거리고, 자주 버벅거렸지만 계속 밀고 나갔다. 눈으로만 후루룩 읽지 않고 한 글자, 한 글자 곱씹으며 읽으니 소화도 잘 됐다.


이제는 머리를 말리면서 원서를 소리 내서 읽는다. 한 손에는 드라이어를, 한 손에는 휴대전화를. 치렁치렁한 머리를 말리다 보면 10분이, 15분이 훌쩍 갔다.


그렇게 한 권, 또 한 권, 원서를 읽으며 산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삽질 복기]

- 늦게나마 시작해서 다행이다.

- 영어 공부랑 독서를 함께 한다는 건 참 좋아.

- 소리 내서 읽으니 기억도 더 잘 난다.

- 머리가 길어서 다행이야.


월, 화, 수, 목, 금,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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