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베란다에 상추, 고추, 토마토, 감자 등 여러 가지 작물을 많이 키웠다. 문 하나로 비밀의 화원이 열리는 것처럼 식물이 매일 크는 것을 볼 수 있게 하였다. 아이는 그것을 보고 매일 매일 재잘거렸다. 그 모습에 나는 매일 웃었다.
아주 기다란 화분을 장만하고, 여러 모종을 사와서 아이들과 꿈을 심었다. 햇볕을 흠뻑 마신 식물은 쑥쑥 자라났고, 물로 갈증을 해소하더니 키만 멀대 같이 자라났다.
“엄마, 오늘은 토마토 꽃 5개야” 아이의 말에,
“열매 잘 맺히게, 창문 열어놔. 붓으로 암술 수술을 고루 잘 문질러주고”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베란다에서 열매를 잘 맺게 해주기 위해서는 바람과, 애정의 손길이 필요하다. 하지만 크고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서 꽃을 솎지는 않는다.
아이는 아주 작은 토마토를 먹으며, 싱그러운 꿈에 조금씩 마음의 살을 찌웠다.
식물을 예쁘게 키우려면 윗순도 쳐 주어야 하고,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꽃도 잘 솎아주어야 한다. 자연에서 키워지는 식물은 바람과 눈비를 맞으며 자연에 순화한 것만 살아남는다. 베란다에서 키우니, 그곳에만 순응해주면 되는 것이 아닐까? 매일 매일 조금씩 꿈을 꾸는 내 아이처럼, 날마다 조금씩 성장해가는 꿈의 조각이기에 자를 수가 없다. 내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 알 수 없는 것처럼, 꽃잎에게 열려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기에 나의 잣대에 맞추라고 노려볼 수는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인생의 정답을 모르기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도전해 봐야 한다. 나 또한 블로그를 하면서 브런치라는 멋진 플랫폼을 알게 되었고, 브런치 작가라는 꿈을 꾸었다. 끝없는 열정과 몇번의 도전으로 작가가 되었다는 봄 편지를 받았다. 지금은 또 다른 꿈을 꾸고 있으며, 때로는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반짝반작 빛난다.
올해로 결혼기념일에 꽃 화분을 받은 지 4년째다. 그전에는 꽃다발을 선물로 받았다. 한주 두주의 시간이 지나고, 버려지는 향이 싫어서 신랑한테 꽃 화분으로 해달라고 하였다. 기왕이면 오래도록 품을 수 있는 꽃으로 해달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우리 집에 온 식물 중 가끔씩 죽는 경우도 있어서, 여러해살이면 조금 더 내 곁에서 활짝 웃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다행히도 나와 꽃 화분은 같은 꿈을 꾸었는지, 아직도 밤마다 꿈을 꾼다. 처음으로온 시클라멘은 씨앗을 받아서 작은 화분에 옮겨 심었더니, 올해로 3년차에 접어 들었는데, 꽃봉오리도 보인다. 엄마 꽃보다 더 큰 꿈을 꾸지 않을까 생각한다. 소박한 진분홍인지, 화사한 분홍색의 꽃이 필지 궁금하다.
< 왼쪽은 엄마 시클라멘, 오른쪽은 씨를 받아서 태어난 시클라멘 >
반려동물대신 키우는 반려식물도 식구 같은 때가 많다. 물을 마시고 싶은지, 햇볕을 더 쐬고 싶은 지, 잎이 누렇게 뜨지는 않는지 매일 체크해 봐야 한다. 사람과 똑같이 식물의 온도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말 한마디에 상처받을 수 있는 아이처럼, 식물에게 물을 주는 나의 손은 오늘도 떨린다. 누군가 꿈을 꾼다면, 응원부터 해주어야 할 거 같다. 시인의 꿈을 꾸는 나는 식구들과 이웃들의 따듯한 응원에 오늘도 열심히 시를 쓴다.
올해는 나의 꿈도 베란다에 심었다. 최근 화분으로 키워지는 프리지아를 봤기에 처음으로 화분을 사봤다. 프리지아는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꽃이다. 꽃말은 ‘천진난만, 순수한 마음, 당신의 시작을 응원합니다’이다. 봄으로 오는 길목에서 프리지아 한단을 사면, 칙칙했던 겨울의 일상에 향긋한 일상과 새로이 움트는 봄꿈을 꿀 수가 있기에 좋다. 또 하나 마련한 나의 꿈은 딸기 화분이다. 딸기가 밤마다 꿈을 키워서 열매를 맺는 것도 재미있고, 시중에 파는 딸기보다는 영근 꿈의 맛이라 상큼하다. 영근 꿈의 맛에 취하고 싶어서 올해 결혼기념일 선물로 딸기 화분을 사달라고 해서 딸기 화분은 2개나 되었다. 프리지아와 딸기는 여러해살이라 다음해에도 꽃이 핀다고 하는데, 아직은 그 꿈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같은 집에서 산 2개의 딸기 화분인데도, 하나는 토종 딸기처럼 오동통 같고, 하나는 서양 딸기처럼 길쭉하다. 열매를 맺는 속도도 다르다. 꿈의 모양이 다르다고 훈계할 수 있을까? 꿈을 꾸는 시간이 느리다고 내 아이를 닦달할 수 없는 것처럼, 인생의 꿈도 시간이라는 걸림돌만 발로 차 버리면 되기에, 반백의 나이에도 시인 등단과 시집 출간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