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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마녀 Jun 16. 2020

엄마, 발디 좀 팔아

발디잎에서 아기 발디가 나다


 바란다에서 발디를 양육 중이다. 우리 집 베란다 식물은 다 윗자란다. 다육이도 베란다에 완전히 적응해서 키가 멀대 같았다.         


      

  “엄마, 다육이 좀 팔아, 화분이 또 늘었네” 오래간만에 기숙사에서 나온 아들이 이렇게 얘기했다.

  “너무 귀여운데, 어떻게 팔아?”나는 그렇게 얘기했다.

  “개당 천 원씩 받거나, 이웃들 줘” 아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천 원에 살 사람이 있겠어?, 아직은 아기라 너무 조심스러운데...” 나는 이렇게 얘기했다.       


   

  몇 년 전 식물원 체험을 하고, 보상으로 다육이 3개를 받아왔다. 그전에는 다육이를 키워본 적이 없다. 다육이를 받아오면서 안 죽이고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집에는 아주 작은 식물 시절부터 키어온 관음죽, 신랑 친구네에서 알뿌리를 얻어와 키우는 사랑초, 반쪽만 남아 있는 인삼 벤자민 등 우리 집 터줏대감 같은 식물도 있었고, 벌레 쫓는 구절초, 친정에서 온 밴쿠버 제라늄과, 신랑이 결혼기념일 날마다 사주었던 시클라멘과 카네이션, 카랑코에 등이 있었다. 이때까지도 가끔씩 식물이 내 곁을 떠나는 경우도 있었다.



      <아기 발디와 아기 다육이>



  식물을 처음 키우던 때는 꽃집에서 1. 키우기 쉬운 식물, 2. 물과 햇볕만으로 잘 자라는 식물, 3. 식물의 이름과 며칠에 한 번씩 물 주는 것과, 햇빛과 응달 중 어는 곳을 좋아하는지 이런 것을 꼼꼼히 체크해서 사 왔다. 꽃집에서 며칠에 한 번씩 하라는 대로 달력에 날짜도 체크를 해가며 물을 주었지만, 어떤 식물은 살고 어떤 것은 죽기도 했다. 그렇게 몇 번을 하다 보니, 며칠에 한 번씩 주어야 하는 것도 맞지만, 한 가지 더 고려되어야 하는 것을 깨달았다. 식물이 있는 환경에 따라서 물 빠짐 정도와 햇빛, 바람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식물의 겉흙이 말랐을 때 듬뿍 물을 주며, 화분 밑으로 물이 나오는지 확인한다(뿌리까지 제대로 물이 갔는지 확인). 물의 양도 화분의 크기에 맞추어서 준다. 이따금 화분에 흙이 모자랄 때 조금씩 더 넣어주고, 가끔 식물 영양제도 주곤 한다.          



  다육이가 우리 집에 오고 나서는, 큰 아이 고등학교 뒷바라지와 건강 악화로 다육이를 제때 분갈이해주지 못했다. 올봄 다육이 잎 하나에서 작은 다육이가 나오는 것을 알았다. 봄철에 하나씩 해보면서, 지금은 제법 개수가 많아졌다. 발디는 잎 하나에서 새순이 나오고, 나머지 2개의 다육식물은 적심과 잎 하나에서 작은 다육이 나오는 것을 알았다. 아기 발디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발디의 성향을 알아가고, 발디의 몸짓에 대한 경청과 물을 주는 것과 분갈이 등의 배려라는 것이다. 어느 한순간 삐걱거리면, 새 생명은 말도 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람의 일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를 읽고, 경청과 배려를 적용하면 좋은 관계가 형성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양육 중인 다육이>



  요새는 발디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너무 좋다. 가끔 베란다에서 이 아이들을 보며 베란다에서 글을 쓰는 때도 있다. 발디를 보고 있으면,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생각도 나서 행복하다. 처음으로 목을 겨누던 일, 배밀이, 두 발로 썼던 일, 엄마 소리를 들었던 날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지금은 대학생,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그때의 그런 맛들은 없지만, 때론 친구처럼, 때론 역할이 바뀐 것처럼 지낼 때도 있다. 작은 발디도 우리 아이들처럼 그렇게 잘 크기를 바라며, 어떤 꿈을 가졌는지, 어떤 마음으로 말을 걸어주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베란다를 서성인다.     



   최근 블로그에 베란다 식물을 포스팅한 적이 있다. “10개가 넘는 화분을 어찌 키우냐고?” 묻는 이웃도 있었다.  “나이 드신 부모님이 화초를 키우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얘기하는 이웃도 있었다.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자신의 꿈이나, 일을 찾아갈 때의 허전함으로 인해 하나씩 화분을 늘린 것도 있고, 식물의 초록색을 보면 언제나 싱그러운 에너지를 얻는 것도 있고, 마음이 치유된다. 꽃 화분의 꽃은 한 계절 피었다 지거나, 하루 만에 져도 허락된 시간 내에서 아름답게 피기 위하여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았을 생각에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고, 따듯한 위로도 받기 때문이다. 식물 하고도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가 있기에, 나는 오늘도 그의 말 없는 행동에 귀 기울인다.           



  발디는 오늘도 나에게 말을 건다. 아들의 말처럼 발디를 팔아야 할까? 발디를 떠나보낼 수 있을까? 아직은 알 수가 없다.          



발디는 그냥 발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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