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오전의 여유는 생각할 기회를 준다.
평일 오전 한산한 카페에서 크로플과 아이스커피를 마시면서 생각했다. 귀가 깨질 것처럼 추운 날씨였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아주 예쁜 하늘빛으로 높고 광활했다. 카페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로터리 역시 한가했고 적당한 간격으로 지나는 차들마저도 느긋하게 주행하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여유와 휴식으로 가득한 시간 속에서 내 머릿속에 떠오른 '요즘 좀 그러네~' 싶었던 자잘한 생각들을 모아보았다.
1. 아침잠은 힘이 세다.
이건 정말 미스터리다. 난 왜 이렇게까지 아침잠이 많을까? 당장 오늘만 해도 사실 원래 나의 계획은 맥도널드에 가서 맥모닝을 먹는 것이었는데 아침에 몇 번 베개를 쥐어뜯다 보니 맥모닝을 먹기에는 이미 촉박한 시간이었다. 굳이 꼭 먹으려면 먹을 수 있었겠지만 평일 오전의 여유를 즐기기 위한 스케줄을 지키겠다고 다급하게 뛰어다니는 것은 모순적이기 때문에 포기했다. 나는 늦게까지 안 자는 것이나, 잠에 들지만 않으면 밤을 새우는 것도 가능한데 이상하게 잠에 들기만 하면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너무너무 힘들다. 진짜 침대가 나를 끌어당겨서 머리를 꽁꽁 묶어놓은 것 같다. 저혈압인가? 요즘 다른 사람들은 미라클모닝이라고 해서 아침 시간을 자신 만의 시간으로 효과적으로 사용하던데 나는 그냥 모닝을 맞는 것 자체가 미라클이다. 나에게 아침잠은 정말 힘이 세다. 그럼에도 큰 지각없이 학창 시절을 보내고, 매일 6시 15분에 일어나 출퇴근을 한 것 보면 어쩌면 자본이 더 힘이 셀지도 모르겠다. 새삼 아침잠의 위력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지만, 분명 앞으로 선택권이 없는 이른 기상들을 많이 겪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여유를 계속 즐기려고 한다.
2. 미루다 미루다 취미까지 미루다니
여유가 생긴 후, 내가 결심했던 것은 영화를 많이 보는 것이었다. OTT사이트에 보고 싶은 영화들을 잔뜩 찜하거나 관심작품으로 체크해 두고 시간이 생기면 꼭 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막상 시간이 생기고 나니 썸네일만 한참 돌려보다 결국 보고또보고또봤던 시리즈나 영화만 주야장천 틀어놓고 있다. 영화를 하나 보자면, 이건 지금 보기에 너무 헤비하고, 이건 너무 무섭고, 이건 배경지식 좀 알아보고 봐야 하는데 아직 안 찾아봤고, 오늘 피곤해서 머리 안 돌아가는데 이건 너무 생각할 게 많고, 이건 너무 시끄러울 것 같고, 이건 진짜 완전 각 잡고 보고 싶으니까 지금은 안 되고 아주 별별 핑계들로 결국 돌고 돌다 프렌즈, 중경삼림, 오만과 편견(1995)에 다시 자리 잡는 것이다. 정말 미루다 미루다 이제는 속 편하자고 하는 취미까지 미루다니! 이제는 문화를 즐기는 일에도 에너지가 모자란 시기가 온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을 조급하게 먹지 않는 이유가 있다.
3. 그래서 힘 빼기 연습
아침에 계획만큼 일찍 일어나지 못하고, 계획했던 대로 많은 영화를 보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편안한 마음으로 브런치나 먹었던 것에는 이유가 있다. 지난 한 해를 무언가에 쫓기듯이 빠듯하게 보내면서 나는 좀 지치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 안의 모든 시계들이 아주 촉박하게 맞춰졌다. 오늘도 버스 정류장에 버스를 기다리다가 도착시간보다 2~3분 늦어지는 걸 보고 금방 답답해지는 나를 느꼈다. 멀리서 신호등이 바뀌는 걸 보고 후다닥 달려가려고도 하고, 카페에서 커피가 나오자마자 금방 벌컥벌컥 들이켜기도 했다. 다음 일정이 있거나, 설계된 시간표가 있어 맞춰야 하거나, 최대한 많은 업무를 끝내야 하는 게 아니고서야 굳이 에너지를 써야 할 필요가 없는 부분들이었다. 물론 나는 평생 성격이 급하게 살아왔지만, 그래도 매사 이렇게 신속정확만을 추구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속으로 되뇐다. '뭐 급한 일 있나? 되는 대로 하자구.' 오늘 같은 날, 버스가 조금 늦게 오더라도 나는 어딘가에 늦는 것이 아니다. 건널목은 안전하게 다음 신호에 건너면 되고 커피는 천천히 목을 축이면서 향을 음미해도 괜찮다. 나는 나의 시간이 흐르는 속도를 내가 선택할 수 있도록 훈련하고 있다. 별 거 아닌 일이지만 그래도 이 사소한 연습이 꽤 효과가 좋다. 때로는 휴식을 억울할 만큼 필수적인 보상으로 생각하기도 했고, 휴식 중에 은근한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휴식은 보상도 나태도 아닌 그저 하나의 상태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요즘의 내 상태가 맘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