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힘이 센 감정은 어떻게, 어째서 바뀌는 걸까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던 날, 내가 앉은 곳 맞은편에 한 가족이 앉았다.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어린이 두 명과 그들의 부모님처럼 보였다. 아이들의 어머니는 자연스럽게 카페에 비치되어 있는 연습장과 색연필을 가지고가 아이들에게 쥐어주었다. 나는 그 가족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 노트와 펜꽂이가 그저 인테리어인 줄만 알았는데 역시나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었다. 아파트 단지 상가에 있는 카페라서 그런지 가족단위로 방문할 수 있도록 어린이에게도 친화적인 곳인 듯했다. 부부는 카페에 들어서서부터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호흡이 척척 맞게 움직였다. 한 사람이 아이들과 그림을 그리는 사이 다른 사람이 주문을 하고, 한 사람이 음식과 티슈 같은 것들을 세팅하는 동안 다른 사람이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과 케이크를 먹여주었다. 포근해진 날씨만큼 가볍고도 예쁜 옷을 차려입은 부부는 분위기가 좋은 카페에서도 아이들을 돌보느라 바빴다.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취미는 없기 때문에 일부러 쳐다보지는 않았는데도 얼핏 내 시야에 들어오는 모습만으로도 그들의 분주함이 다 느껴질 정도였다. 소란스럽거나 짓궂은 아이들이 아니었는데도 모든 걸 스스로 할 수는 없는 나이인 것만으로도 너무 많은 손이 필요했다. 아마 익숙해서 괜찮았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여러모로 힘이 들만한 상황이었는데 아이들의 부모님은 행복해 보였다. 아이들에게 웃어주고, 볼을 쓰다듬어주고 연신 음식을 챙겼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우리 부모님이 떠올랐다. 나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혼자서도 척척 잘 한 줄만 알았는데, 내가 저 나이였을 때 우리 부모님도 저렇게 바쁘셨겠지. 밥 한 끼 먹고, 차 한잔 마실 때도 우리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으셨겠지.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에 보살핌을 쏟는 것으로 사랑을 겪으셨을 부모님 생각에 마음이 애틋했다. 나는 내 한 몸 건사하기도 정신없어서 늘상 '힘들다.', '귀찮다.', '누워있고 싶다.'를 달고 사는데 그 시절의 부모님은 어떻게 그 많은 책임들을 견디고 이뤄내신 걸까?
카페 손님을 보고 맺힌 감동은 찰나에 번져나가 내 코 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난 감동에 대해 눈물이 아주 쉬워졌다. 어릴 때부터 눈물이 많은 사람이기는 했지만 슬플 때, 분할 때, 억울할 때, 무서울 때 나던 눈물은 이제는 거의 감동에 한해서만 솟아나고 있다. 그리고 그 역치는 몹시 낮아서 조금만 아름답거나 대견해도 금세 입술을 물결모양으로 옴짝거리면서 턱에 호두를 만들어 버린다. 운동경기에 전력으로 임하는 운동선수의 열정이 대단해서, 맑은 눈으로 부모님을 바라보는 아기의 순수함이 아름다워서, 각박한 세상에서 묵묵히 도움을 건네는 사람들의 온정이 따뜻해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이는 동물들의 맹목적인 선량함이 애틋하고 때로는 안쓰러워서 그렇게 눈물이 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항상 감동이 이렇게 나를 가장 압도하는 감정이었던 것은 아니다. 한 때는 활기와 기쁨이 가장 강렬했고 설렘이 나를 움직이게 했던 시기가 있었으며 우울이나 분노로 가득 찬 시간도 있었다. 이유나 방법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나에게 가장 힘이 센 감정은 계속 바뀌어 왔다. 예전과 비교하자면 최근에는 기대나 설렘의 감정은 거의 존재하지 않다시피 하고 기쁨과 슬픔, 분노와 원망마저도 아주 일시적으로만 타오르고 사라진다. 지속적으로 소거되고 있는 감정 사이에서 그래도 감동이 중심을 지키고 가장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건 꽤 다행으로 느껴진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는데 그래서인지 나는 감동 덕에 내가 꽤 활발히 살아있다고 느끼곤 한다. 최근 안팎의 여러 상황들로 인해서 나 자신에게마저 냉소가 날만큼 염세적이 되기도 했는데 그래도 아직까지 내 마음의 선봉은 따뜻한 곳에 있는 것이다. 답답한 세상살이에 무력함이 모든 걸 장악하려고 할 때도, 어째서인지 어떻게인지는 몰라도 가장 센 감정의 힘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유난스러울 만큼 쉽게 뭉클해지는 마음을 좀 더 오래 품고 있으려고 한다. 순식간에 번지는 감동에 기꺼이 마음을 내주고 계속 그 힘에 의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