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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나 Sep 04. 2023

남의 인생은 참 재미있다

내 인생도 재밌...을 걸?



나의 생각은 크기가 크거나 하나의 주된 흐름을 가지고 있지 않다. 자잘한 생각들이 질서 없이 떠다니는 것이 내 머릿속 풍경인데 그걸 정리해서 브런치에 적으려니 항상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혼자서 주제를 정하고 쓰다가 또 탈락시키고...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경연프로그램이 벌써 몇 시즌 째인지 모르겠다. 나름대로 숙고하고 쓴 글들은 문장도 깔끔하게 정리해보려고 하고 좀 더 제대로 된 표현이나 묘사를 하려고 애쓰는 편인데 그게 원래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은 아니다. 내 생각들은 보통 줄줄 흐르고 있기 때문에 빗물 받듯이 그걸 담아놓고 싶었다. 그래서 브런치에도 그런 기타 분야를 만들기로 했다. 기타, 잡동사니, 창고 뭐 그런 공간. 내 안의 조각난 파일들이기 때문에 <디스크 조각모음>으로 이름 지었다.

사실 이런 글들은 블로그에 더 어울리는 것 같아서 그쪽에 글을 쓸까 싶었지만 이미 포스타입과 브런치, 두 개의 채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자꾸 글들을 흩어놓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아서 브런치가 이걸 감당하기로 했다. 하하하 이제 이 매거진은 나의 너절한 글들을 잘 모아놓고 있을 것이다. 따지자면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곳이다. 뭐랑 승부해서 어떤 승리를 가져온다는 건지는 모르지만 암튼 그렇다. 그냥 상대 없는 쉐도우복싱을 하는 링이다.






오늘 내 디스크에 등장한 조각은 바로 '남의 인생은 정말 재미있다.' 다. 오늘도 해야 하는 일들은 안 하고 시험공부를 회피하는 학생처럼 마음은 초조하고 몸은 느긋하게 유튜브를 보면서 딴짓을 하고 있었는데 대기업의 알고리즘은 나에게 정말 다양한 영상들을 소개해주었다. 가끔은 소름 돋는다. 내가 검색하는 내용이나 본 것들을 저렇게 은근슬쩍 모은 것도 모자라서 추천까지 하다니. 아무튼 나는 그다지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라 브이로그 같은 걸 보는 일이 없는데 요즘 하는 일 관련해서 찾아볼 일이 좀 있었다. 그 이후로 가끔씩 브이로그 추천이 뜨는데 썸네일에 이끌려 들어가 보면 정말 다들 인생을 알차고 재미있게 산다. 물론 SNS나 이런 플랫폼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은 그들의 하이라이트고 나는 지금 내 인생의 백스테이지에서 그걸 보고 있다는 걸 알지만... 근데 그 하이라이트가 엄청 화려한데요? 아무튼 나는 오늘 드물게 다른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면서 내 시간을 썼다.


누군가 친구들과 여행을 간 브이로그를 보면서 저렇게 여럿이 여행을 가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인간관계는 대부분 소규모로 이뤄져 있고, 그마저도 점점 서로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지면서 정말 소수로만 여행을 다니는 것에 익숙해져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누군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옷을 차려입고 풍경이 좋은 곳에 가서 여유로운 얼굴로 차를 마시는 것을 보고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옷을 차려입을 수 있고, 가까운 곳에 좋은 공원이 있고, 커피는 지금도 마시고 있는데도 그랬다. 나는 정말 인간이 신기하고 웃기다고 생각했다. 비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게. 아무튼 나는 그 영상 속의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데도 세세하게 파고 들어가서 비교했다. 나는 저런 스타일이 안 어울리는 걸, 저런 분위기가 나는 곳이 아닌 걸, 지금 난 신경 쓸 게 많아서 저렇게 여유롭고 편안할 수 없는 걸. 이상함을 느낀 내가 생각의 차단벽을 올렸지만 저런 생각들은 그러든가 말든가 거침없이 내달렸다. 왜 사람들이 SNS를 보면서 박탈감을 느낀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얼마나 얄팍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나는 저 사람이 얼마나 옷을 공들여 입었는지 혹은 대충 입었는지 알 수 없고, 저 사람이 정말로 여유로운지 혹은 이 뒤에 신경 쓸 일이 있는지도 모르고, 저 장소에 가는 것이 얼마나 간단한 일인지 혹은 피곤한 일인지 알 수 없다. 모든 번거로운 부분과 복잡한 내용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보이는 부분만을 놓고 어떤 판단이나 기분을 느낀다는 건 좀 별로인 것 같다.


어쩌면 나의 인생도 편집해놓고 보면 저렇게 재밌을 수도 있다. 일단 오늘이 월요일인데 출근을 안 했잖아요? 내일이면 또 신선하고 흥미로운 일을 새로 시작하고, 매일 같이 몰두하는 일이 있기도 하고, 어떤 면을 보느냐에 따라 내 인생도 재미있을 것이다. 이 모든 걸 알면서도 참 남의 인생이 재밌어 보인다. 이래서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말이 있나? 나의 일은 다 어렵고 복잡하고 다른 사람의 일은 간단하고 즐거운 것 같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남의 인생이 얼마나 간단한지 복잡한지가 아니라 결국 내가 사는 건 내 인생이라는 것이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커피를 때리고 자판을 두드리는 지금의 내 인생. 모든 게 내 취향이다. 여기까지 생각해 보니 꽤 괜찮은 것 같다.





여기는 '조각모음'하는 곳이라서 사실 짧은 글들을 올리려고 했는데 정리를 안 하고 써서 그런가 구구절절 글이 길어졌다. 그런데 정리를 하지 않고 글을 쓰는 연습을 하는 게 목표(자꾸 정리한답시고 문장들을 삭제해서)인 내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아, 이것도 요즘 연습 중이다. '어쩔 수 없지, 뭐~' 오늘 이 글도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있는 거나 잘해보려고 한다. 아니, 그냥 해보려고 한다. 그럼 또 곧 그냥 글을 쓰러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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