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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나 Sep 16. 2023

생즉고 : 삶은 고통이다

열심히 살기 싫어요

오늘은 일이 겹쳐서 늦게까지 연달아 일을 했다. 전혀 힘든 업무들이 아니었는데도 나는 한숨을 한 오천번 쉬었다.(물론 나 혼자 있는 공간에서.) 일만 하려고 하면 단전에서부터 한숨이 올라온다. 진짜 일하기 싫어 죽겠다. 프리랜서는 일이 있을 때는 몰려서 괴롭고 없을 때는 불안해서 괴롭다. 일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야 일이 많을수록 신이 나고 재밌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어떤 일인지가 중요하다기보다는 그냥 일 자체를 싫어한다. 내 안 어딘가에 분명히 한량의 유전자가 깊게 새겨져 있는 게 분명하다. 못난 후손이 괜히 조상님을 탓해서 죄송스럽지만 그래도 진짜 이렇게 불가항적으로 싫음이 우러나오는 것은 타고났다고 밖에 볼 수 없어서 그렇다. 이건 분명 천성의 문제라고요.


평생 일해서 나 자신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점에서 삶은 진짜 고통이다. 그냥 사는 게 너무 힘들다. 남들 다 그렇게 일하고 사는데 뭐가 그리 힘드냐고 한다면, 1. 남들이 다 하는 거랑 내가 힘든 거랑은 상관이 없다는 점. 2. 남들은 다 하는 일을 나는 지독히 하기 싫어하니까 그 자괴감에 더 힘들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나도 속으로는 이렇게 징징대면서 밖으로는 괜찮은 척하는 것처럼 혹시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이렇게 일하기를 눈물 나게 싫어하는 건 아닐까? 동지가 있다면 찰나의 위로가 될 것도 같다. 물론 그래도 이 고통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냥 해파리처럼 떠가며 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정말 괴!롭!다!


그럼 원하는 대로 해파리처럼 살면 되지 않느냐고? 그럼 저는 뭐 먹고살죠? '열심히 살기 힘들어요, 열심히 살기 싫어요.'라고 하면 '그럼 열심히 살지 마세요! 쉬어가도 괜찮답니다!' 해주는 힐링글들을 많이 봤다. 근데 열심하지 않게 살아보니까... 참 잘 안 살아진다. 미치겠다.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정서적으로도 그렇다. 능력이나 결과에 대해서는 욕심이 없는 편이라서 대단한 사람들을 봐도 '세상의 밸런스를 위해서 부족한 사람도 있어야지, 헤헤' 하고 태평한데 성실이나 근면의 부분에서는 그게 잘 안 된다. 이래서 조기교육이 중요한 건가? 대한민국 입시제도에 절여져 청소년기를 다 보내고 청년실업난 시대에 일자리 얻어보겠다고 아등바등 살아보니, 해파리 같은 삶일 때 내 발목을 끌어당기는 불안을 능숙하게 통제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는 지금 아주 모순적이고, 그래서 조금 웃긴 상황이다. 열심히 살지 않으면서 열심히 살기 싫어하는 상황. 한숨에 도가 터서 16비트로 쪼개 쉬는 한숨 아티스트가 된 상황. 너무 어이없지 않나? 한껏 게으르게 살면서 열심히 살 상상만으로도 피곤해하다니. 나 참.... 


아무튼 뭐 엄청난 걸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 인생 하나 잡고 있는 걸로 이렇게 힘든 걸 보면 정말로 삶 자체가 곧 괴로움이다. 누군가 그랬다. 삶은 고통인데 그 사이에 겪은 행복들(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훌륭한 음악을 듣거나 하는...)이 진통제가 되어주는 거라고. 근데 요즘의 나는 그 진통제에 내성이 생긴 것 같다. 그리고 복용 가능한 진통제 종류 자체가 줄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하려다... 가도! 체지방이라던가 건강 걱정으로 자제해야 한다. 그래서 또 고통스럽다. 맨날 떡볶이 때려먹고 물 대신 맥주를 마시고 간식으로는 소스 가득한 샌드위치를 먹고 매끼 디저트로는 초코케이크, 치즈케이크, 레드벨벳케이크, 티라미수, 생크림케이크, 꽈배기, 도넛을 돌아가며 먹고 싶지만! 정상 혈당과 정상 체중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다. 좋아하는 건 참아야 하고 싫어하는 건 꼭 해야 하다니. 삶은... 고통이다..... 이런 상황에 삐져서(누구한테?) '몰라, 다 안 먹어!!!' 하고 싶지만 그럼 또 위가 상하니까 끼니때마다 적당히 건강한 음식들을 챙겨 먹는다. '몰라, 막 살 거야!!!' 하다가도 겁나서 영양제를 왕창 챙겨 먹는다. 삶은 고통이지만, 그래도 그런 삶을 유지하려고 엄청 애쓰고 있다. 나도 나를 모르겠다. 그냥 모순의 인간화 수준이다. 


아무튼 그래서 결국 나는 새로운 진통제를 개발하기 전까지는 그냥 이 고통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데 솔직히 즐기는 것까지는 무리고 그냥 피할 수 없다면 못 피하는 거다. 그냥 그대로 맞는 거지, 뭐. 다행히 이렇게 글로 나의 마음을 기록하는 게 최근에 가장 약발 잘 받는 진통제인 것 같다. 혹시나 누군가 나처럼 '나만 이렇게 열심히 살기 싫나? 다들 갓생 사는데 나만 이렇게 무기력하고 열정 쓰레기인 거야?' 하는 생각으로 외딴섬에 표류된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면 나를 보고 약간의 동지애나 아주 작은 위로를 얻으실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 아마... 괜찮을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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