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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마나 May 13. 2020

식물로그: 우리집 푸릇푸릇 8남매 이야기

푸릇푸릇 8남매, 더 비기닝

'이 화분 들여놓을까...'


화분들이 들으면 가장 기겁할 말이다. 내가 식물을 키운다니, 그처럼 공포스러울수가. 우리 아버지는 꽃나무를 특히 좋아하셔서 어릴 적부터 마당에는 꽃, 풀, 나무들이 철마나 색을 바꾸며 공간을 가득 채웠고 엄마는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살아있는 것을 키우는 데 제법 솜씨가 있었다. 나도 나만의 공간을 갖게 되자 습관처럼 푸른 것을 찾기 시작했다. 사무실 책상 한켠에도, 베란다 한켠에도 늘 화분을 놓아두곤 했다. 그런데. 나는 식물 잘 키우는 것도 유전이겠거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전혀 아니었다. 부모님은 식물을 곁에만 들여놓으면 꽃들이 마구마구 피어나고 나무가 쑥쑥 자라나 가지마다 먹을만한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거늘 나는 아니었다. 되려 그 반대였다. 물을 주어도 잎이 마르고, 볕을 비춘다고 비추어도 아이들이 시름시름 앓았다. 어디에서 본 건 있어서 화분에게 "너 참 예쁘다"며 고운 말들도 쏟아부었지만 아니었다. 똥손은 고사하고 그야말로 식물 저승사자였다. 그래서 고무나무를 끝으로 다시는 화분을 들이지 않았다. 눈을 떠 잠에 들 때까지 푸른 것을 보지 않아도 별 무리가 없는 일상이 이어졌다. 그래서 그렇게 잊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때, 내 마음에 병이 들었다. 나도 자연이었을까. 마음이 그렇게 되자 본능처럼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산 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집에 화분을 들였다. 그래도 된다고,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처럼 생각날 때, 혹은 주말에 회사를 가지 않는 날마다 물을 주는 저승사자 루틴은 이상하게도 사라졌다. 마음이 답답하면 나의 식물 8남매 곁으로 가 앉았다. 같이 바람을 맞고 볕을 쐬고 물을 주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그저 발을 움직여 걸을 뿐 나도 너희들과 같지 않겠나 싶었다.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매 순간 달라지는 8남매의 하루와 그를 지켜보는 것이 생각보다 아주 많이 즐거웠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푸릇푸릇 8남매를 모시는 식물집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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