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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마나 May 13. 2020

식물로그: 옹알종알 푸릇푸릇 8남매를 소개합니다

보롱이, 오쟈 씨, 즈-마리, 방이울이, 귤이, 아오리 장미, 몬s

꽃집 사장님은 명쾌하시다. 아이들마다 물은 언제 주어야 하는지, 분갈이는 어떻게 하는지 여쭤보면 열 가지 물음에 답은 하나다.

"물은 흙을 만져봐서 마르면 주면 되고, 분갈이는 뿌리가 여기저기 삐져나오면 그 때 갈아주면 돼요"

아마 그 말씀에 자신감이 돋아난 것 같다. 그게 아니었으면 감히 8남매까지 들일 생각을 했을까.


보롱이는 '보로니아'이다.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꽃이 열리는데 그 모습이 딸기를 닮았다. 잎을 쓰다듬어주면 손바닥 가득 청량한 솔향이 남는다. 보롱이는 어딘가 의젓한 면이 있다. 향기도 그러거니와 꽃이 활짝 피질 않는다. 그런데 뒤끝이 있어서 꽃이 질 때 잎이 하나씩 나리면서 흩뿌리듯 진다. 처음엔 '우리 보롱이는 꽃이 필 때보다 질 때 더 화려하구나' 싶었는데 이게 청소하다 보니 뭔가 성질을 부릴 땐 부리는 녀석이지 싶다. 그래도 어딘지 야무지고 의젓해서 정이 간다. 머리가 무겁고 마음이 불안할 때 보롱이를 위로 쓰다듬고 나면 손바닥에 닿는 감촉도 좋고 향도 좋다.


우리 오쟈 씨는 '오렌지 쟈스민'이다. 오렌지같은 작은 주황열매가 열린다고 해서 오렌지 쟈스민이란다. 잎을 두 손가락으로 문질문질한 뒤, 손끝 향을 맡으면 달콤한 차내음이 난다. 이파리가 빳빳하고 물방울처럼 생겼는데 이파리가 층층으로 뻗어나온다. 오쟈 씨는 명랑하다. 주황 열매가 열린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나는 아직 못 봤다) 잎새를 보고 있으면 성격이 보인다. 볕이 좋은 날이면 참기름을 바른 것처럼 반짝반짝 빛이 난다. 물을 주고 난 뒤 민낯도 어찌나 개운한지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요즘은 나무가 되어가는 중인데, 그 사실을 알고 얼마나 벅차던지 - (이 이야기는 별도 에피소드로 다루겠다)


즈-마리는 '로즈마리'다. 8남매 중에서 제일 성격이 가볍다. 좋게 말하면 뒤끝이 없고 웃긴 말로 하면 간사하다. 조금만 관심을 게을리 하면 가장자리 줄기와 이파리를 축- 늘어뜨린다. 아이쿠야 싶어 물을 주면 언제 그랬냐는듯이 줄기와 이파리가 생글생글해진다. 속이 없어 좋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향기는 반전이 있다. 우아하다.


은방울꽃 자매 방이와 울이. 방이는 집에 올 때 은방울꽃이 조로록 피어있었다. 꽃 모양이 아가 머리에 두른 보넷 같이 곱고 예뻐서 마음이 콩콩거렸다. 울이는 방이보다 꽃 수는 적었지만 시원하게 뻗은 이파리가 있어 동생이어도 야무진 구석이 있어보였다. 꽃이 다 지고 난 후, 방이와 울이는 각기 한 개씩의 열매를 맺었는데 열매가 꼬마 초록 도토리같이 생겼다. 어디까지 클지, 저 여린 줄기가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이 내 몫이겠으나, 점점 커지는 열매를 보며 슬쩍 걱정이 된다면 지나친걸까.


귤이는 귤나무이다. 꽃에서 정말 귤같은 상큼한 향이 났는데 하얀 꽃이었다. 귤이도 잎이 두껍고 바딱바딱해서 좋다. 그런데 어느 날, 꽃이 지더니 꽃이 진 자리에 동그랗게 열매가 자라기 시작했다. 사실 귤나무라고 하기엔 너무 아가라서 열리다 말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직 자라고 있다. 귤이는 크게 손이 안 가도 알아서 잘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너무 잘해서 당황스럽다. 상황 판단도 정확하고 빠르다. 열매 중에서 가장 실한 녀석에게 에너지를 몰아주는 모양새이다. 좀 차갑다 싶다가도 알아서 척척하니 그 모습 지켜보는 재미가 꽤 있다.


아오리 장미는 하얀 사계절 장미이다. 사계절 장미라니, 늘 피는 꽃을 보고 있는 것이 좋다 싶은데, 사실 하얗고 새침한 모습에 두 번의 고민 끝에 들였다. 나머지 7남매가 혹여 장미라는 사실에 살짝 위축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생각보다 아오리 장미는 허당이다. 자꾸 핀다. 꽃이 귀한 맛이 없이 자꾸 핀다. 그래서 좋다. 참, 아오리 장미라는 이름은 향에서 왔다. 잎이 피어나고 질 때가 되면 약간 연푸른빛이 도는데 향기가 정말 딱 아오리 사과향이 난다. 그래서 아오리 장미.


몬s는 '몬스테라'다. 만화에 보면 우산으로 쓰는 그런 이파리인데 '몬'들은 정말 그렇게 생겼다. 잎 끝이 뾰족해서 정말 이파리 끝에 물방울 하나가 맺혀있을 때도 있다. 영화나 만화에서만 보았던 이런 '현상'들을 '실사'로 마주하게 되면 '오오오호오호오~'가 자연스레 내뱉어진다고 할까. 언제 사진으로 포착해야지 하고, 벼르는 중이다.


이렇게 우리집에 사는 푸릇푸릇 8남매와 식물집사. 식물 저승사자에서 유능한 식물집사가 되는 여정, 본격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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