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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마나 May 13. 2020

푸릇 8남매 식물로그: 오쟈 씨, 나무가 '되어간다'

나무는 '되어간다'는 것, 그 사실을 잊지 않기

어느 날, 오쟈 씨 줄기가 딱딱하게 굳었다.

힘든 내색 한번 안하던 오쟈 씨의 줄기가 마른 듯 딱딱해진 것을 보고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

이번엔 또 뭘 잘못한거지. 부리나케 나무선생께 여쭈니,


"응? 나무가 되어가는가보네"


'나무? 오쟈 씨가 나무가 된다고?!'


갑자기 심장이 콩닥거렸다. 대놓고 벅차게 콩닥거린 것은 아니지만 오쟈 씨를 볼 때마다, 오쟈 씨가 나무가 되어간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마음이 두세 번 콩닥거렸다.

사실 그럴 것이다. 오쟈 씨도 씨앗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고운 흙이 오쟈 씨 씨앗을 품고 그렇게 첫 새싹을 틔웠을 것이다. 그렇게 자라난 오쟈 씨의 키가 크면서 내게 온 것일텐데. 나무는 원래 그런 것일텐데. 씨앗부터 시작하는 것이 본래 그 모습일텐데, 나는 그 말이 너무나 생경했다. 나무가 되어간다니. 나무가 되어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그냥 나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되어가는, 부드러운 줄기가 딱딱하게 굳어가고, 푸른 줄기가 연한 크림색에서 나무색으로 바뀌어가는 그 모습을, 그 순간을 목도하는 것이다. 그 사실을 생각하니 뭔가 오쟈 씨 인생에서, 나보다 훨씬 오래도록 살게 될 오쟈 씨의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한다는 벅찬 감정이 소리없이 시시때때로 끓어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상상해 보는 것이다.  오쟈 씨가 커다란 나무가 되었을 때 오가는 사람들이 지나며 말하겠지 - "와~ 이 나무, 정말 크다. 몇 살이나 되었을까". 그러면 과거의 나는 미래의 그들에게 지금 이 공간에서 폴짝이며 말하는 것이다. "저요! 저요! 제가 바로 오쟈 씨가 나무가 되는 그 순간을 보았죠! 처음엔 얼마나 작았는지 몰라요!"


우리도 오쟈 씨처럼 이렇게 어린 줄기에서 단단한 어른으로 자라는 그 순간을 지나왔겠지. 그 순간을 벅찬 마음으로 지켜본 소중한 누군가가 있었을테다. 내가 단단한 나무가 되길 빌고,

또 그 과정을 마음 졸이며 응원한 누군가를 곁에 두고 그렇게 우리는 나무가 되어간다. 서두르지 않되, 꾸준하게 볕도 쬐고 물도 마시고 바람도 쐬다 보면 그렇게 우리도 나무가 되어가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언젠가는 나무가 되어간다는 사실. 그러니 지금 좀 여려도 괜찮다는 것. '그럴 때도 있지~'라며 마음웅덩이를 폴짝 잘 뛰어넘을 것 - 빠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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