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누군가의 결심, 다른 이의 소망,

어떤 이의 인연

by 안녕마나

"다들 모여봐.”

다들이라 봤자 김 실장과 나뿐이지만 편집장은 우리 둘을 그렇게 부르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나는 그게 싫지 않았다.

김 실장과 나는 편집장의 맞은편에 나란히 앉았다. 우리 둘에게 동시에 무언가를 말하는 일은 밥 먹자고 할 때를 빼고는 거의 없기에 출근하자마자 우리를 불러 모은 이유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편집장은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거렸다. 그리고는 중대발표라도 하는 듯 목을 가다듬고는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아, 그러니까 말야. 우리가 사명을 바꾸고 새롭게 태어날거야.”

“사명이요?”

김 실장이 짐짓 놀란 목소리로 반문하며 말을 이었다.

“사명이면 뭐요. 비둘기소식지 이름 바꾸신다구요?”

김 실장의 물음에 편집장은 살짝 표정이 서글퍼지더니 이내 다시 결심한 듯 앙다문 입술로 고개를 끄덕였다. 김 실장은 나와 한번 눈을 맞추더니 편집장을 향해 혼잣말처럼 말했다.

“어머 이게 무슨 일이야, 그렇게 안 바꾼다고 고집 부리면서 여기까지 온 양반이...”

김 실장의 말에 편집장이 깊어진 눈으로 답했다.

“그러게. 그런데 어제 가족회의도 했는데 둘째 말마따나 세상도 변했고 우리도 변해야 하고 뭔가 지역 신문으로서의 발전도 고민해야 할 때이고.”

“뭐야, 지금 딸래미 말 듣고 그러시는 거예요? 진짜로?”

“아니, 꼭 그 애 말 때문은 아니고, 김 실장도 예전부터 해 온 이야기도 있었고. 나도 뭐 고민이 있었고, 마침 하 사장 그 새끼가 깐족거리는 것도 있고, 마누라며 딸들도 그간 나한테 열 내서 했던 이야기들도 있었고. 다 복합적인 거지. 내가 뭐 그 어린 것 말만 듣고 넙죽 회사이름을 바꾸겠나, 김 실장도 참.”

편집장의 말하는 모양새를 보니 그간 고민이 깊었던 눈치다. 편집장의 눈치를 살피던 김 실장도 편집장의 그런 고뇌가 느껴졌는지 눈이 동그래지며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편집장님, 그럼 진짜 이름 바꿔요?”

김 실장이 묻자 편집장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뭐 김 실장이야, 예전부터 그런 말 많이 했으니까 생각해 둔 이름 있어? 나도 고민은 했는데 먼저들 들어보자. 이 대리도 말해봐.”

내가 고민할 틈도 없이 김 실장이 오랫동안 묵혀온 듯한 이야기를 들떠서 내어놓기 시작했다.

“그럼 편집장님, 홍영 데일리 어때요? 매일매일 소식지 나가는 거니까 우리 소식지에도 딱 맞고. 괜찮죠?”

김 실장의 말에 편집장이 입꼬리 한쪽을 올린 채 미소 아닌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왜, 홍영 타임즈로 하지. 홍영 트리뷴은 어때. 홍영 포스트. 많네. 좋은 우리말 놔두고 무슨 영어야!”

편집장의 말에 김 실장이 입을 삐죽거렸다. 짧은 침묵을 깨고 입을 연 이는 나였다.

“홍영 데일리 괜찮은데요. 그럼 매일홍영은 어떠세요? 김 실장님 아이디어를 우리말로.”

조심스럽게 건넨 내 말에 편집장과 김 실장 모두 서서히 표정이 밝아진다. 그러더니 편집장이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허허허허, 역시 젊은 애라 다르다. 좋네, 매일홍영! 어때, 김 실장도 마음에 드나?”

김 실장이 나를 보며 웃고는 편집장의 물음에 답했다.

“아유 편집장님, 젊은 애라 다른 게 아니라 이 대리라서 다른 거예요. 말씀을 하셔도 제대로 하셔야지. 저도 좋네요, 매일홍영. 적당히 세련되고 그렇다고 막 생뚱맞지도 않고. 소식지 느낌도 여전히 있고.”

“그리고 우리 2면 정도까지만 기사를 실었는데, 우리 소식지 사이즈가 큰 것도 아니니까 상황 봐서 3면까지도 싣고 조금씩 늘려가지 뭐. 그리고 말이야.”

할 말이 회사명을 바꾼다는 것만은 아니었다보다. 이제야말로 본론인지 편집장이 갑자기 싱글벙글거리며 뜸을 들이고는 말을 이었다.

“사무실도 리모델링한다!”

“어머!”

김 실장이 깜짝 놀란 듯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토끼 눈이 되어, 나와 편집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편집장님, 어디 죽을 날 받아놓은 건 아니죠? 왜 이래요.”

김 실장의 진담 같은 농담에 편집장은 잠시 쏘아보는가 싶더니 다시 웃으며 말했다.

“할 때가 됐어. 그리고 하는 김에 명함도 파자. 내 생각에 나는 이 대리가 기자라는 이름 썼으면 좋겠는데. 사실 뭐 기자잖아.”

“어우, 그러려면 진짜 신문이 되어야죠. 지금은 사실 광고업이잖아요.”

김 실장의 대거리에 편집장이 받아쳤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잖아. 그 원래 하던 그 소식지 스타일은 그것대로 가져가고 앞에 기사를 조금씩 늘려보자고.”

편집장의 말에 김 실장은 조금 걱정스러운 낯빛이 되더니 말을 받았다.

“그러려면 이 대리 혼자는 힘들텐데.”

“내가 생각해 둔 게 있으니까 걱정 말고, 김 실장은 여기 리모델링 좀 맡아서 고민해줘.”

편집장의 말에 김 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한번 힐끗 보더니 다시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그럼 그냥 사무실을 싹 바꾼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죠? 이제 여름이 거의 다 가는데 에어컨 지금이라도 달아요? 사실 지금이 쌀 수도 있어요. 책상이랑 의자 뭐 이런 것들도 싹 바꿀게요?!”

김 실장의 들뜬 목소리에 편집장이 잠시 그녀를 막아서며 말했다.

“어이 김 실장. 이 가구는 왜 버려. 멀쩡한데. 사무실 리모델링이라고 했지, 내가 언제 가구까지 바꾸래.”

편집장의 말에 김 실장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더니 물러서지 않겠다는 말투로 대거리를 했다.

“어우 진짜, 편집장님! 그럼 여기 ‘매일홍영’으로 이름 바꿨다고 광고해야할테고, 그러면 여기 사무실에 사람들 불러다가 행사라도 한번 할텐데, 여기 사무실 싹 바꾸고 나면 이 가구들이 얼마나 헐어보이겠어요. 분명 하 사장도 초대하실 거면서 또 사람들이 속 긁는 소리하면 듣고 화내시게요?”

솔직히 처음에 김 실장을 봤을 땐 일도 설렁설렁하게 하고 그렇게 바빠 보이지도 않아서 참 팔자 좋게 일하면서 돈 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간을 두고 지켜보니, 그 여유는 능숙함에서 오는 능률이었고, 노련함에서 오는 안정감 덕분이었다.

편집장에게 지지 않고 자기 할 말을 하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편집장 기분 상하지 않게 저리도 적정한 선을 잘 지킬 수 있나 늘 궁금했는데, 그 역시 살펴보니 김 실장이 대거리를 하는 경우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김 실장은 회사에만 좋거나 자기에게만 좋은 일에는 그런 식으로 나서지 않았다. 나와 회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저렇게 기를 쓰고 할 말을 다 한다. 그 역시 저 사람의 성정과 오랜 경륜에서 배어 나오는 세련됨이리라.

골똘한 얼굴로 김 실장이 하던 말을 유심히 듣던 편집장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네, 그건 김 실장 말이 맞네. 그럼 너무 비싼 거 사지마. 싼데 좋은 거 있지? 김 실장이 잘 골라보고 나한테 몇 개 뽑아서 말해줘. 여기 인테리어는 저기 장 씨네한테 내가 미리 말해뒀으니까 거기 연락해서 상의해. 나 건너뛰지 말고.”

“싼데 좋은 건 어렵고, 비싸진 않은데 좋은 걸로 찾아볼게요. 그리고 제가 뭐 언제 편집장님 건너뛰는 거 보셨어요?”

김 실장은 웃어 보이며 편집장의 말을 받아쳤고, 편집장도 웃더니 해산하라며 손을 휘휘 저었다.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이 자리로 돌아가자 편집장도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일이 있다며 사무실을 서둘러 나섰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김 실장은 별안간 무슨 생각이 났는지 나를 불렀다.

“덕구 대리야.”

“네?”

“혹시 다음 일자리 알아보는 중이니?”

마침 요 며칠 골머리를 앓던 고민거리를 김 실장이 어찌 알고 불쑥 묻는다. 바쁜 그 와중에 내 생각까지 했나 보다. 나는 마땅히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고개를 떨군 채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다 말문을 열었다.

“뭐, 그래야죠.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뭐 계약기간이 반 이상 남긴 했어도 그래도 취업준비라는게 일년 잡고 해야하는 거잖아요. 계속 알아보기는 해야죠.”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말을 김 실장에게 쏟았다. 내 말에 김 실장이 의자를 내 쪽으로 가까이하더니 평소에 볼 수 없는 푸근한 표정이 되어 내게 말했다.

“너 같은 복덩이를 편집장님이 그냥 놓아줄 리가 없지. 게다가 소식지도 신문사처럼 키울 모양이니까 일하던 너를 내치겠니? 일도 잘하는데. 편집장 그런 사람 아니야. 그러니까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하던 대로만 하고 있어. 나도 말 보탤 일 있으면 그렇게 할 테니까.”

김 실장은 내 어깨를 두어 번 툭툭 치더니 다시 콧노래를 부르며 곧바로 사무 가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나는 감사하다는 인사가 너무 초라해보여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한 채 그런 김 실장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김 실장이 벼르고 있었는지 사무실 리모델링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인테리어 업체는 편집장이 미리 알아봐 둔 곳으로 이야기가 되었으니 가격이며 구체적인 디자인은 김 실장의 몫이었다.

김 실장은 자기 집도 이렇게 정성스럽게 꾸민 적은 없다며 자기 생각을 막아서는 편집장의 입을 가볍게 막았고, 사실 김 실장의 그러한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김 실장으로서는 하던 일에 다른 일이 겹친 것이라 일부 내게 일을 미룰 법한 상황인데도, 사무가구에 대한 내 취향 정도만 가볍게 물었을 뿐 가격 비교며 전체적인 인테리어 업체와의 입씨름까지 모두 도맡아 했다.

그 덕에 사무실 리모델링으로 부산스러운 와중에도 나는 하던 일을 차질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문제라면 편집장이었는데, 지역 광고지를 넘어서 군청에서 발행하는 월간지를 제치고 홍영 대표 언론사로 거듭나겠다는 그의 의욕이 과한 탓에 나는 어중간한 신분으로 취재 아닌 취재를 군청으로 나다니느라 일이 바빠졌다.

그날도 각자 나름으로 바쁜 어느 날이었다.

“이 기자, 이거 시간이 어긋나서 어쩌지, 김 실장도 장 사장 만나러 간다고 자리 비운 마당에 영 골치 아프네. 그러니까, 그 뭐냐. 오늘 새로운 직원이 하나 올 거야. 당분간은 이 기자하고 같이 이동하면서 일 배우고 그럴 테니까 그리 알고 인사나 나누고 있어. 나 금방 돌아올테니까, 알았지?”

편집장은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손을 들어 대충 몇 번 흔들어 보인 후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다. 오후 시간이면 김 실장이 늘 자리에 있었는데 요즘은 김 실장도 사무실 리모델링 건으로 자리를 비우는 일이 많다. 나는 그렇게 편집장을 얼떨결에 보내고 혼자 멍하니 서 있었다. 새로운 직원이라니, 정말 소식지 몸집을 키우긴 할 모양이다.

나는 편집장의 최종 확인을 받은 기사를 다시 한번 읽었다. 기자라니. 내가 무슨 기자인가 싶다가도 정말 사람 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나는 인쇄소에 기사에 대한 최종 확인이 들어가면 되는 것인지 확인하려고 김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실장님, 저 이 대리인데요.”

“아아, 어어. 네네. 아, 이 대리, 미안한데 나중에 통화해도 될까. 내가 지금 정신이 없다.”

“아, 그럼 인쇄소에 제가 최종 확인 넣을까요? 달라진 광고는 오늘자 리스트 책상에 뽑아놓으신 것으로 하면 되는 거죠?”

“어머, 고맙다. 이 대리. 아우, 고마워! 그럼 부탁할게! 나 끊는다. 고마워!”

아무리 바빠도 허둥대는 일이 없던 김 실장에게서 그런 목소리를 듣자니 낯설다. 나는 김 실장 자리로 가서 책상 위에 놓인 인쇄물들을 들여다보며 오늘자 광고목록을 찾았다. 평소 같으면 바로 눈에 띄었을 텐데 책상이 어수선한 것을 보니 요즘 정말 정신없이 바쁜 게 맞나보다. 살짝 흐트러진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쓰럽기도 하고, 어쩐지, 친근하다.

드르륵.

편집장이 벌써 온 건가. 고개를 들어 사무실 문을 보았는데 웬 낯선 내 또래의 여자가 쭈뼛거리며 들어온다.

“편집장님...안 계세요?”

조심스러운 말투와 달리 사무실을 살피는 표정은 망설임 없다.

“아, 안 계시는데요. 무슨 일로...”

나는 그 낯선 여자에게 그렇게 묻고는 편집장이 사무실을 나서며 내게 건넸던 말을 번뜩 떠올렸다. 새로 들어온다던 신입직원인가. 내가 묻기 전에 여자 쪽에서 선수를 쳤다.

“아, 이덕구 대리님이세요?”

그쪽에서 내 이름을 안다. 신입직원으로 온다던 사람이 맞나보다.

“네, 혹시 신입직원으로 오신다던?”

내 물음에 그녀가 활짝 웃는다. 낯선 사람이 내게 그렇게 활짝 웃는 것을 처음 봤다. 기억에 없으니 처음이 맞을 것이다. 나는 공연히 머쓱해져 입을 꾹 다물고 표정을 지웠는데, 그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녀는 표정을 바로 잡고는, 웃음을 참듯 옅게 미소 띠우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신입직원 고보영입니다.”

(13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