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고보영이라는 그녀의 인사에 나는 무어라 대꾸하면 좋을지 몰라 그대로 멈춰서 있었다. 뒤이어 편집장이 사무실로 헐레벌떡 들어왔다.
“어? 왔네. 오면서 못 봤는데.”
뛰어왔는지 숨을 헉헉거리던 그는 날쌔게 부채를 집어 들더니 신경질적으로 목 주변을 따라 빙 둘러 부채질을 했다. 조금 진정되었는지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나와 그녀를 향해 손짓했다. 그녀는 내게 인사를 건네던 얼굴과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마지못해 편집장이 있는 소파로 향했다. 그녀가 먼저 움직인 다음에야 나도 정신을 차리고 뒤를 따랐다.
“어, 덕구는 여기 앉아라.”
그녀와 나란히 앉아야 하나 고민하며 우왕좌왕하던 나를 보더니 편집장이 자기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탁탁 치며 말했다. 편집장 바로 옆에 앉는 것은 처음이라 나는 쭈뼛거리며 그의 곁에 앉았다.
“둘이 인사는 나눴나?”
편집장의 물음에 나는 그녀를, 그녀는 나를 쳐다보다 시선이 마주쳤다. 나는 어색하게 피했고, 그녀는 그런 내 모습까지도 끝까지 바라보았다. 우리 두 사람 모두 별말이 없자 편집장이 말했다.
“어, 그러니까 이 기자, 이쪽은 이번에 새로 들어온 고보영. 그리고 이쪽은 이덕구 기자. 원래 이덕구 대리인데 이제 매일홍영이 될 거니까 미리부터 기자라고 부르고 있어. 그러니까 기자님이라고 부르고, 나한테는 편집장님이라고 부르면 되고.”
“편집장님, 그럼 다른 분들은 저를 뭐라고 부르시나요.”
잠자코 편집장의 말을 듣고 있던 고보영이 대뜸 물었다. 짧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기다리는 모습은 당돌하다기보다 당차 보였다. 글자 그대로 갓 들어온 마당에 물을 것은 묻고 보는 내 또래의 그녀에 비해, 나 자신은 너무 물러터진 것 같아 괜한 자괴감이 들었다.
“뭐, 글쎄. 생각해 둔 거 있어?”
“저도 기자로 뽑힌 거니까, 기자라고 불러주세요.”
“에이 그럼 이 기자하고 구분이 안되잖아.”
“괜찮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에 별안간 끼어든 나를 향해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날아든다.
“기자로 뽑으신 거니까 고보영 씨도 기자 맞죠. 그래야 현장에서도 협조받기도 좋을 것 같고요.”
내 말에 편집장이 고보영을 쳐다보았다. 고보영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이 기자님한테는 선배님이라고 부를게요.”
“아뇨, 됐어요. 그냥 이 기자님이라고 부르시면 돼요. 저도 고 기자님이라고 부를게요.”
“왜요?”
“전 선배 말고 기자할래요.”
이렇게까지 우길 만큼 ‘기자’라는 이름이 간절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어째 말하다 보니 모양새가 그리되어버렸다. 사실 그저 나는 동료였으면 했다. 선배도 후배도 아닌 동료. 그것이 우리 사무실에는 더 어울렸고, 나는 그게 더 좋았다. 내가 바란 것은 그뿐이었는데 굳이 두 사람에게 설명하지는 않았다.
“네, 저는 좋아요. 이 기자님, 잘 부탁드립니다.”
고보영의 청량한 표정에 편집장도 마음이 가벼워졌는지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호칭 정리까지 끝났으니까 오늘 고보영 씨는 먼저 들어가고 내일 9시까지 나와.”
편집장은 소파에 그대로 앉은 채 고보영에게 가 보라 했고 고보영은 내게 눈인사를 건네고는 쭈뼛거리는 기색조차 없이 그대로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기분 탓이었을 수 있지만 어쩐지 사무실 밖으로 향하는 그녀가 콧노래를 부르며 나가는 것 같았다.
나도 편집장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편집장이 멈춰세우더니 맞은편에 가서 앉으라며 손짓했다.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고보영이 앉아있던 맞은편 자리로 가 앉았다. 편집장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꽤 뜸을 들였다. 이윽고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말이야. 내가 덕구 너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그러니까 오해하지 말고 들어라.”
편집장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그렇게 말문을 연 뒤에도 한참이나 말을 골랐다.
“그, 보영이 그러니까 고 기자한테 일 잘 가르쳐 주고 응? 그리고 연애 같은 건, 하지 마. 일에 집중하고 일 열심히 해.”
일 안하고 둘이 연애하면서 돌아다닐까봐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그런 말을 듣고 기분이 좋을리 없지만 그래도 편집장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염려라는 생각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눈치를 보던 편집장도 마음이 놓였는지 그제야 얼굴이 조금 가벼워졌다. 인사를 건네고 소파에서 일어나 내 자리로 돌아가는데 편집장이 말했다.
“아, 이제 보니까 내가 홍영 경찰서에, 그 뭐냐, 출입 기자 같은 거로 두 사람 이야기해 뒀으니까 일단 내일 경찰서 가서 인사만 돌고 와. 군청이야 알만한 사람은 얼추 아니까 거긴 다른 기회에 한 번에 인사 돌자. 곧 뭐, 기회가 있을 거다. 그럼, 가서 일 봐. 얼른 마무리하고 들어가라.”
“어머, 보영아, 너가 여긴 웬일이야?”
김 실장이 출근하는 고보영을 보고는 크게 놀라며 물었다. 둘이 아는 사이인가 헤아려 보는 사이, 고보영이 김 실장에게로 가서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신입직원 고보영 기자입니다.”
그렇게 인사를 건넨 그녀는 마치 나보다 오랫동안 이곳을 다녔던 사람처럼 비어있는 책상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입을 벌린 채 놀란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 실장은 저편에 앉아있던 편집장을 향해 의자를 돌려 앉으며 그를 향해 물었다.
“새로 뽑는다던 기자가 보영이었어요?”
“왜, 반칙이네 뭐네 그런 말 말아. 나름대로 엄격하게 입사면접 치렀고, 이 대리처럼 확실하게 계약서도 다 썼어. 제대로 안하면 나한테 말해.”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내 표정이 어리둥절해 보였는지 김 실장은 나를 바라보더니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금붕어처럼 소리도 내지 않고 입만 뻐끔거렸다. 자세히 입 모양을 들여다보자니 김 실장이 내는 입 모양은 이랬다 - ‘딸’.
내가 놀라는 표정을 짓자 김 실장은 코웃음 치더니 급히 핸드폰을 꺼내어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가 핸드폰을 내려놓자 동시에 내 핸드폰이 울렸다. 김 실장이 보낸 메시지였다.
[세상에 그걸 몰랐니. 이 기자도 어지간히 둔하다. 잘 해봐, 애 괜찮아. 근데 보통내기는 아냐.]
그제야 편집장을 향한 고보영의 당돌한 듯 어색한 행동도, 편집장이 어제 어렵게 내게 건네던 당부도 모두 이해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고보영의 이목구비가 편집장과는 영 다르다. 비록 첫눈에 예쁘다고 할만한 외모는 아니었지만, 얼굴이며 태가 어쩐지 곱고 부드러워서 자꾸 눈이 갔다. 아마 편집장의 아내가 곱거나, 그도 아니면 저래 봬도 편집장이 젊은 시절에는 꽤 괜찮은 얼굴이었나보다.
편집장이 손뼉을 몇 번 짝짝 치며 말했다.
“자, 오늘 새 식구도 들어왔으니까 점심은 다 같이 냉면이나 한 그릇씩 하러 가자. 오늘 내가 쏜다. 수육까지 풀코스로.”
편집장의 말에 김 실장이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고, 고보영은 그저 슬쩍 웃을 뿐 책상 정리에 여념이 없었다.
“아, 그러니까 보영이, 아니 고 기자하고 이 기자 두 사람은 저기 홍영 경찰서 가서 인사나 한번 돌고 와. 아침 시간에 그나마 사람들 자리 지키고 있으니까 지금 다녀와. 저기 회사차 몰고 다녀와.”
편집장의 말에 ‘네’하고 대답하려는데 고보영이 나보다 빨랐다.
“저희 그냥 버스 타고 가도 되나요. 경찰서면 여기 앞에서 한번에 가는데.”
“왜, 차가 편하지 않아?”
“이 기자님만 괜찮으시면 이번엔 그렇게 할게요. 이 기자님, 괜찮으세요?”
고보영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게 물었다. 내가 마땅히 말을 잇지 못하고 편집장을 쳐다보자 그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알겠다, 뭔지. 알았으니까 그럼 버스 타고 다녀와.”
나는 편집장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서둘러 고보영과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에서 고보영은 말이 없었다. 핸드폰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버스가 오는 쪽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버스가 오려면 아직 좀 더 기다려야 한다.
“고 기자님. 왜 버스 타자고 했어요?”
내 물음에 그제야 고보영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말했다.
“편하게 갈 수 있는 걸 저 때문에 고생이시네요. 그런데 한번만 봐 주세요. ‘비둘기소식지’라고 박혀있는 차, 타기 싫어서 그랬어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런 나를 고보영이 바라보며 말했다.
“어릴 때 애들 사이에서 별명이 비둘기였어요. 나 따돌리던 애가 지어준 별명이라, 정말 싫거든요. 걔가 그렇게 부른 뒤로 다른 애들도 다 따라서 비둘기라고 부르고. 참, 그런데 우리 동갑이라고 하지 않았나. 말 놔도 되죠?”
나는 오랜만에 동갑내기와 일하는 것이 좋아 고개를 끄덕이려다 어제 편집장이 했던 당부가 떠올랐다. 동갑내기끼리 말 놓는 것쯤이야 괜찮겠지 싶은데, 편집장의 생각은 다를지도 모른다.
“좋아, 다른 사람 없을 때만.”
고보영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완이 좋은 편집장 덕에 미리 기다리고 있던 경위 한 분의 도움을 받아 강력계와 생활질서계를 돌며 인사했다. 그렇게 경찰서를 한 바퀴 돌며 인사들 한 뒤, 미리 연락한 진우와 시간이 맞아 경찰서 입구에서 잠깐 만날 수 있었다.
“이야, 이덕구! 이제 너 기자야? 저번에 편집장님이 오셔서 이름도 바꾸고 회사도 키운다고 막 그러시던데 그냥 하시는 소리가 아니었나보네. 난 또 편집장님이.”
나는 행여 고보영이 듣는 앞에서 진우가 말실수라도 할까 진우의 말을 막아서며 말했다.
“어어, 이제 매일홍영으로 이름 바꾸고 그럴거야. 그리고 여기는 이번에 새로 들어온 고보영 기자. 고 기자님, 이쪽은 차진우 순경이예요.”
내 소개가 끝나자 진우와 고보영이 인사를 나눴고, 진우는 고보영이 눈치채지 못하게 팔꿈치로 내 등을 툭 쳤다. 아무래도 진우가 말실수든 무엇이든 할 것 같아 나는 진우에게 나중에 따로 보자고 말을 건네며 돌아서려는데 진우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나를 불러세우더니 고보영 눈치를 한번 보고는 나를 향해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 은옥 아주머니 건 말야. 종결됐어. 나중에 연락하자.”
진우와 나는 그렇게 서둘러 인사를 나누고 고보영과 나는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했다. 경찰서 정문에서 정류장으로 오는 내내 말이 없던 고보영은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내게 대뜸 물었다.
“은옥 아주머니라면 그 이번에 살인사건, 그 피해자분, 맞죠? 취재하고 계셨어요?”
고보영의 질문에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어떻게 지역뉴스나 군청 인터넷 소식지, 그 어디에서도 일언반구조차 없던 은옥 아주머니 이야기를 고보영이 안단 말인가. 은옥 아주머니와 관련될 법한 작은 소식이라도 일부러 찾으며 챙겨보았건만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설사 내가 놓친 뉴스가 있다 해도, 피해자 이름을 언급했을리 없다. 피해자의 이름이 알려질 만큼 떠들썩한 사건이었다면 내가 그 뉴스를 놓쳤을 리도 없다.
“그걸, 어떻게 알아?”
내 질문의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보영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맞지? 저번에 아빠가, 아니 편집장님이 누구랑 통화하는 거 들었어. 통화하면서 그 사람한테 걱정이 많으시겠다고.”
“왜, 왜 걱정이 많으시겠다고 그래? 은옥 아줌마 지인이야? 없다고 들었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그 용의자, 그러니까 편집장님이 통화하던 그 사람이 살인범을 직원으로 데리고 있었던 것 같던데.”
“그게 무슨 말이야? 누구랑 통화하신건데?”
내 물음에 고보영이 기억나지 않는 무언가를 기억해 내려 애쓰는 듯 한 손으로 긴 머리를 쓸어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한참 말이 없던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게, 통화하던 그 사람한테 뭐라고 부르긴 했는데, 기억이 잘 안 나네. 하. 누구였더라. 아무튼, 그런데 그 살인범을 이 실장이라고 불렀다가 용선이라고도 부르는 것 같던데. 살인범 이름이 이용선인가봐.”
(14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