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녹초구만. 우리는 다음에 봐도 되는데.”
현관문을 열고 내 얼굴을 확인한 박춘수가 말했다.
“괜찮아요.”
나는 일부러 더 기운차게 웃어 보이며 박춘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요즘은 집에 가면 밥 먹고 누워서 핸드폰 좀 하다 보면 그대로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요새 일이 좀 고됐다.
비둘기소식지에서 매일홍영으로 거듭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행정절차가 복잡한 것도 이유였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편집장 스스로 매일홍영을 광고 대행사가 아닌 언론사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렇다 할 소명이나 내적 동기가 없음을 우리가 모두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여기 ‘모두’에는 편집장도 포함된다.
회의를 거듭할수록 김 실장과 고보영 그리고 나는 편집장이 바랐던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편집장이 말로는 지역신문으로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그가 원하는 것은 그저 그가 골프 모임에 나갔을 때 무시당하지 않을 정도의 외연만 갖추면 되는 것이었다.
이를 가장 먼저 깨달은 이는 김 실장이었다. 처음 우리 셋 모두 언론사로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여러 변화 앞에서 편집장이 망설일 때마다 그를 설득했다. 그러나 김 실장은 이내 빠른 상황파악으로 편집장이 원하는 변화의 수준을 눈치챘고 이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나와 고보영에게 편집장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려주었다. 나는 처음에 조금 실망하였으나 애초에 기자가 되기를 바랐던 것은 아니었으므로 이내 쉽게 마음을 내려놓았다. 고보영은 비둘기소식지라는 이름을 걷어내 버린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며 더는 바라지 않았다.
편집장의 진의를 가장 늦게 깨닫고, 또 가장 많이 당황한 이는 우습게도 편집장 자신이었다. 비둘기소식지를 통해 쌓아 올린 일의 익숙함과 그를 통한 안정된 수입 어느 것도 그는 내려놓을 생각이 없었다. 그 역시 김 실장 덕에 자신의 진심을 마주했고, 처음에는 예상 외로 당혹스러워했다. 스스로 언론인이 되어야겠다는 어떤 열망의 부스러기조차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그는 짧게나마 괴로워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가 바랬던 것은 치장이었음을 빠르게 인정했다.
이 아픈 깨달음 덕에 편집장은 최소한 두 가지를 얻었다. 그는 마을 장터 같은 자신의 광고소식지가 어쭙잖은 기삿거리를 만들어 내는 신문사들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 유튜브도 결국 광고업이 아니겠냐며 매일홍영이 홍영의 유튜브나 다름없다는 논리를 계발하기에 이르렀고, 이 논리 덕분에 편집장은 예전보다 더 자신감이 넘쳤다.
“매일홍영 이름으로 언제 나와?”
그가 테이블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리모델링 공사는 이번 주에 마무리되고, 매일홍영은 아마 다음 주 월요일 맞춰서 나올 거예요.”
“빠르다. 빠르다는 건 소식지 식구들이 고생 엄청 한다는 이야기겠고.”
그가 씨익 웃는 얼굴로 물을 한모금 삼키며 말했다.
“요즘 사진 좀 찍으셨어요?”
내 물음에 그가 테이블 위에 미리 빼둔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dp 시리즈로 좀 찍어봤어. 니가 알려준 운곡산 그, 월봉계곡. 거기에 가서 찍어봤지.”
그가 내게 사진을 보여주려는지 카메라 곁에 놓여있던 노트북을 켰다. 박춘수의 동공 위로 노트북 화면 불빛이 너울거렸다. 며칠 전 진우를 만난 이야기를 그에게 아직 하지 않았다. 언젠가 이야기해야지 벼르고 있었는데 그간 내가 바쁘기도 했고, 막상 박춘수에게 이 말을 해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홍영에 왜 왔으며 무슨 일은 하는지, 박춘수는 여전히 말을 아끼는 그가 근래 들어 조금씩 정착해 가는 것 같아, 괜히 그의 마음에 소요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은옥 아주머니를 그렇게 만든 이가 이용선이라는 사실을 고보영에게 들었을 거라 알 리 없는 진우는 은옥 아주머니 사건에 대해 짧게 설명해 주었다.
이용선 그자가 가게에 드나드는 바람에 은옥 아줌마는 시장에서 쫓겨나듯 만둣집을 옮겨야 했고, 이용선이 그 과정에서 대로변 가게를 소개해 주었으며 이후로도 은옥 아주머니에게 이런저런 핑계로 접근했고, 은옥 아주머니와 몇 차례 다툼이 있었고, 이후 앙심을 품고 독극물을 먹였다는 것이었다.
그날 박춘수에게 서울로 돌아가라 이르던 이용선의 눈빛과 말투에서 나는 알 수 없는 선의를 느꼈던 터라 진우가 하는 말을 그대로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진우가 맺는 말끝에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니까’라고 덧붙이는 바람에, 내가 그날 이용선을 잘못 본거라 여기며 마음에 이는 의구심을 밀어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
박춘수가 노트북을 내 쪽으로 밀어 놓으며 말했다. 화면에는 그가 찍은 숲의 풍경이 담겨있었다.
“이야, 잘 찍으셨네요. 역시 dp 색감은 특별한 데가 있다니까. 이건 2로 찍으셨어요?”
나는 노트북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그때 실수로 esc 키를 누르는 바람에 사진을 띄워놓은 화면이 꺼지고 말았다. 나는 사진을 다시 열기 위해 응용 프로그램을 찾았다.
그때 바탕화면에 ‘한국도시계획공사’라는 폴더가 보였다. 마침 박춘수의 시선은 베란다를 향해 있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는 나를 잠시 잊은 듯했다.
나는 행여 더블클릭 소리가 날까 조심하며 오른 클릭으로 그 ‘한국도시계획공사’ 폴더를 열었다. 그 안에는 다시 몇 개의 폴더들이 있었는데 긴장한 탓에 폴더 이름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딱 하나, 익숙한 이름을 달고 있는 폴더가 눈에 띄었다 - ‘홍영_평가심의’.
“사진 이상해? 뭘 그렇게 심각한 눈으로 봐?”
박춘수가 미소 지으며 나를 향해 물었다. 나는 얼른 폴더를 닫고 응용 프로그램을 열었다. 프로그램이 열리는 그 짧은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사진 몇 장 없는데, 뭘 그렇게 오래 보냐.”
박춘수가 재미있다는 듯 나를 보며 말했다.
“아, 원래 뭐냐. 여기 사진 찍은 정보들도 같이 보고 그러는거죠. 이래봬도 사진학과 출신인데.”
나는 그렇게 얼버무리며 화면에 다시 사진을 띄우고서야 박춘수를 향해 노트북을 다시 밀었다. 이용선과의 대화에서 박춘수가 물었었다. 자신이 당한 일이 왜 억울한 일이냐고. 분명 알아야 할 무언가를 알고자 온 사람이다. 이용선은 그에게 실마리이다. 그에게, 말해야한다.
“저기.”
“왜, 사진정보를 보고 나니 형편없어? 저번처럼 색 정보가 날아갔나?”
농담처럼 말을 던지며 의자에 기대어 앉던 그의 눈빛이 내 표정을 살피더니 순식간에 깊어졌다.
“무슨 말이야, 나한테 할 말 있구만. 뭐냐.”
나는 목소리를 몇 차례 가다듬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은옥 아주머니 일이요. 그 경찰 친구한테 들었는데, 살인사건으로 결론 났고, 범인도 잡았는데, 그게.”
박춘수는 눈빛으로도 재촉하지 않았다. 조바심도 없다. 긴장한 기색도 없다. 나는 말을 이었다.
“이용선이래요. 그날 여기 왔던.”
식탁 위에 올려두었던 박춘수의 오른손이 움찔거렸다. 그는 자세를 고쳐앉아, 나를 향해 얼굴을 가까이하며 물었다.
“네 생각은 어때, 네가 직접 들었으니 느낌이 있지 않냐. 수긍이 가던?”
나는 사람들이 갑자기 적극적으로 협조한다던, 그래서 너무나 이상하다던 진우의 말과 표정이 떠올랐다. 절대 아무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은옥 아주머니 사건은 이미 종결되었고, 이제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박춘수만 빼고는.
“그게, 제 생각보다는. 그 경찰 친구의 아주 개인적인 생각인데. 원래 그게 자살 사건으로 결론이 나는 모양새였는데, 갑자기 목격자가 나오고 다들 엄청 적극적이었다고 그랬어요. 본인이 보기에는 사람들 그러는 게 이상하다고.”
“담당 경찰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라면, 꽤 신빙성 있는 의구심이네.”
박춘수는 잠시 말이 없더니 벽에 걸린 달력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날 이용선 씨가 우리집에 온 게 7월 9일이었어. 그날 폭우가 쏟아졌고 하늘에서 물 폭탄이 내렸다고 말들이 많았지. 덕구, 너만 괜찮으면 하나만 알아봐 줄 수 있을까. 사람들이 갑자기 적극적으로 되었다는 시점 말이야. 7월 9일 이전인지 이후인지 말이야. 이렇게 하자. 최초 목격자가 나타난 게, 언제인지. 알아봐 줄 수 있을까? 내가 부탁할게.”
“왜요?”
내 물음에 박춘수가 나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하필 날 만난 이후라면, 더 이상하니까.”
“어이, 이 기자님!”
진우가 저편에서 손을 흔들며 나타났다.
“왜 혼자 왔냐, 보영 씨는?”
“내가 기자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지, 이 대리라고 부르라니까."
“흐흐흐흐, 내가 편집장님 경찰서에 오셔서 지역신문 뭐네 어쩌네 하실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그래도 비둘기소식지가 알부자라는 건 홍영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니까. 너도 잘 풀린거지.”
나는 ‘그래도 계약직이야’라고 대꾸하려다 말았다. 김 실장의 말이 떠올라 스스로도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미리부터 희망을 꺾을 필요는 없으니까.
“다른 게 아니라 나 지금 사무실 들어가보는 길인데, 하나 궁금한 게 있어서.”
“뭔데? 은옥 아줌마? 저번에 말한 게 전부인데.”
“응, 그런데 그냥 궁금해서. 너가 그...사람들이 갑자기 적극적으로 변했다고 했었잖아.”
내 말에 진우의 눈 밑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돌려서 물을 일이 아니었다. 정확해야 한다. 나는 진우의 표정을 못 본 채 말을 이어나갔다.
“그 최초 목격자가 나온 게 언제인지, 기억 나?”
내 물음에 익살스럽던 표정은 온데 간데 없이 진우의 표정이 굳었다.
“그건 왜 물어?”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되묻는 진우를 보니, 행여 녀석으로부터 답을 못 듣게 될까 봐 조바심이 일었다. 나는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 말을 뱉었다.
“그게 우리 엄마인가 싶어서.”
“응? 너네 엄마?”
“응, 혹시 우리 엄마가 최초 목격자인가 해서. 엄마하고 은옥 아줌마 이야기는 통 안 해서. 엄마한테 묻기도 그렇고. 그냥 걱정돼서.”
그제야 표정이 조금 풀어진 진우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아주머니는 최초 발견자니까, 그 부분만 진술하셨고. 목격자는 한참 후에 나왔지.”
“아, 언제?”
나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말투로 스쳐지나듯 물었다. 진우는 내가 엄마 이야기를 꺼내니 개인적인 관심이라 생각했는지 무리 없이 말을 풀어놓았다.
“그게 자살로 종결하고, 안치실에서 화장터 가려고 했던 때 기억 나지? 그 이후야.”
그렇다면, 그날 이후다.
(15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