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그때 그 눈빛을 이해했더라면

by 안녕마나

“먼저 간다, 군청에서 보자.”

편집장은 내 어깨를 가볍게 두어 번 툭툭 두드리고는 사무실을 나섰다. 편집장이 사무실을 나서자마자 김 실장이 내게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이 대리가 좀 그렇겠네. 그러게 편집장님은 괜히 기자라고 인사 다니라고 설레발 치고 말이야.”

김 실장은 몇 마디 더 이어가려다 고보영 눈치를 한번 쓱 보고는 말을 삼켰다.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김 실장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고 김 실장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는 다시 컴퓨터 모니터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 대리님, 저도 같이 가요. 저도 기자라고 인사 돌았잖아요. 행복군민위원회면 웬만한 사람들 다 모이는 자리, 맞죠? 저도 이참에 같이 가서 고 주임이라고 다시 인사도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어느 틈에 내 자리까지 왔는지 고보영이 내 옆에 선 채로 말했다. 고보영의 말을 들은 김 실장도 우리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키보드 자판을 두들기며 말했다.

“그래, 고 주임, 좋은 생각이다. 한 번에 바로 잡는 게 모양이 덜 빠지니까 그렇게 해라.”

“이 대리님도 괜찮으신 거죠? 그럼 이따 같이 나가요. 오늘은, 차 타고 가요.”

고보영은 그렇게 말을 맺고 내 동의를 확인하는 듯 두 눈을 내게 야무지게 맞추며 고개를 한번 끄덕하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녀가 처음 출근하던 날, 자기 책상 정리 이외에 제일 먼저 했던 일은 소식지 차량에 붙은 ‘비둘기소식지’ 스티커를 떼어버린 일이었다. 스티커를 떼어낸 자리는 접착제로 끈적거려 행여 실수로 그 자리에 손을 얹기라도 하면 아무리 비누로 손을 씻어도 종일 손바닥에 온갖 것이 쩍쩍 달라붙었다. 며칠 후 그녀는 가방에 가루가 든 플라스틱 용기들을 챙겨와 고무장갑을 끼고는 차로 가서, 그 스티커 자국을 거짓말처럼 말끔히 제거했다. 재주도 좋다는 김 실장의 칭찬에 그녀는 고개만 살짝 끄덕일 뿐 별말이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문득 어릴 때 비둘기라 불리며 따돌림당했다던 그녀의 기억도 스티커와 함께 저렇게 말끔히 사라진 것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 실장에게 인사를 건네고 고보영과 나는 차를 세워둔 곳으로 말없이 나란히 걸었다. 차에 거의 다다랐을 때 나는 자연스레 운전석으로 향했다. 그때 고보영이 내 앞을 막아섰다.

“이 대리님, 내가 운전할게.”

“아니야, 내가 할게.”

“나 운전 좋아해.”

좋다니 할 말이 없었다. 마땅히 운전을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닌지라 운전석을 고보영에게 내주었다. 고보영은 옅게 웃으며 차에 올라탔고 나는 차 앞쪽으로 빙 돌아 조수석에 올라탔다. 고보영은 익숙하게 차를 돌려 도로로 나섰다. 어릴 때 시장을 오가며 트럭을 부지기수로 타 봤지만, 거짓말을 조금 보태어 웬만한 트럭 운전하는 아저씨들보다 고보영의 운전실력이 나았다.

“운전 잘하네. 진짜 좋아하나보다.”

“좋아한다는 말을 어떻게 거짓말로 하냐. 싫어한다는 말이면 몰라도.”

“나는 반대인데. 싫어한다는 말은 거짓말 못해도, 좋아한다는 말은 가끔 거짓말 하는데.”

“미련하네.”

그녀는 그렇게 혼잣말처럼 툭 한 마디를 내뱉고는 군청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 좋아한다는 말과 싫어한다는 말 그리고 거짓말까지 보태진 복잡한 셈법에서 미련하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일지 한참을 헤아려도 도통 알 수 없었다. 차는 그새 군청 주차장에 들어서고 있었다.

행사장이 있는 군청 본관 3층에 들어서자 회의장이 세 군데로 나뉘어 있었다. 미래산업분과와 동네활력분과가 중회의실에서 열렸고, 복지튼튼분과와 백년교육분과가 대회의실, 청정환경분과가 소회의실에서 각기 열렸다. 우리는 편집장이 미리 일러준 대로 미래산업분과와 동네활력분과가 열리는 중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 들어서며 나는 입으로는 편집장을 찾았으나, 정작 눈으로는 박춘수를 찾았다. 박춘수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고보영도 마찬가지였다.

“이 대리님, 저기 저 사람 좀 봐. 뭔가, 멋지다.”

고보영이 가리킨 곳에 박춘수가 있었다. 고보영은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나를 보며 싱긋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일하러 온 마당에 회의실에 들어서자마자 제 아버지를 찾기는커녕 ‘멋진 남자’에게나 눈이 가서는 내게 조르르 말하며 웃기까지 하는 고보영이 영 못마땅하여지려는 찰나, 박춘수가 나를 향해 손을 번쩍 들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이덕구 대리님, 오늘도 오는 줄은 몰랐네. 같이 오신 분은 처음 뵙네요.”

“안녕하세요, 매일홍영 고보영 주임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덕구 대리님 이웃 친구 박춘수입니다. 오늘은 동네활력분과위원으로 왔습니다. 이 대리님은 오늘 분과회의도 취재해?”

“아니요, 인사하러 온 거예요. 오늘 분과위원들하고 군청 실무자나 관계자가 인사 나누는 자리라고, 편집장님이 한 번에 인사 돌라고 하셔서 왔어요.”

“그럼 분과회의 내내 있다가 가겠네. 잘됐다. 끝나고 근처 카페에나 같이 할까. 고 주임님도 괜찮으시면 같이 가세요.”

고보영이 예의 바른 미소로 박춘수를 향하던 시선을 거두어 나를 쳐다보았다. 경찰서에서도, 군청에서도 인사를 돌 때면 고보영은 늘상 사람들에게 저런 표정을 짓고는 했건만, 지금은 어쩐지 눈빛이 유난스레 초롱초롱하다. 물론 인사만 돌고자 온 자리이니 분과회의가 끝나고 딱히 마무리 지을 기사는 따로 없었다. 그러나 사무실 리모델링으로 혼자 사무실에서 바쁠 김 실장을 두고 밖에서 여유롭게 커피나 마실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또랑또랑한 눈망울로 날 쳐다보는 고보영이 오늘은 유독 철없어 보인다.

“저 오늘은 어려울 것 같아요. 며칠 뒤에 사무실 리모델링한다고 김 실장님이 일이 많거든요. 들어가서 도와드릴 일 있으면 돕고 그래야 할 것 같아요. 다음에 같이 하세요.”

“덕구답네. 아쉽다. 그럼 다음에 같이 하자. 고 주임님도 그때 시간 되시면 뵈어요.”

“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반가웠습니다.”

박춘수와 그렇게 인사를 나눈 우리는 회의실 창문가에 여벌로 놓인 의자에 가 나란히 앉았다. 어쩌다 보니 멀지 않은 곳에 박춘수가 보였다. 박춘수가 앉은 테이블과 저만치 떨어진 자리에는 미래산업분과 테이블이 있었다. 문득 발족식에서 박춘수를 향해 ‘그 새끼 누구냐’고 묻던 롤렉스 시계를 찬 남자는 찾았으나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회의가 시작될 무렵 편집장이 회의실로 들어서며 우리를 발견하고는 밝은 미소로 짧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그리고는 박춘수가 앉은 동네활력분과로 가더니, 자리를 정해 자신의 소지품을 놓아두었다. 그리고 편집장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으로 테이블을 돌며 먼저 와 있던 위원들과 차례로 인사를 나누었다. 편집장이 박춘수에게로 가까워질수록 어쩐지 박춘수에 관해 묻던 편집장의 알 수 없는 눈빛이 떠올라 괜히 손에 땀이 났다.

드디어 편집장이 박춘수 옆에 섰고, 박춘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편집장과 악수했다. 여느 어른들의 인사처럼 그들의 인사는 간결했고, 서로에게 호의 넘쳤으며 적당히 어색했으나 나는 어쩐지 자꾸만 박춘수가 걱정되었다.

뒤이어 행복군민위원회 발족식 때 사회를 보았던 김선영 과장이 들어왔다. 반쯤 얼이 빠진 듯한 표정으로 그녀는 회의실로 바삐 들어오며 먼저 와 있던 위원들과 눈인사를 나누었다. 회의실 앞쪽에 자리를 잡고 선 그녀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총무과 김선영 과장입니다. 오늘 바쁘신데 이렇게 자리해 주신 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메일로 안내해 드린 대로 분과회의는 분기별로 이루어질 예정이고 오늘은 정기회의와는 별도로 분과위원님들 그리고 군청 담당과 직원들, 그 밖에 관련 공공기관 관계자 여러분과 인사 나누는 자리로 가볍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분과별로 분과위원장을 뽑아야 하는데, 분과별로 투표하시어 정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분과위원장님 역할은 뭐, 따로 다른 위원님들과 다른 특별한 역할이나 지위를 가지시는 게 아니라 분과회의 의사 진행 역할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김선영 과장은 연신 회의실 뒤쪽에 자리한 벽시계와 회의장에 앉은 위원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가쁜 숨으로 말을 마쳤다. 때마침 군청 직원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회의장에 들어서더니 김선영 과장 옆으로 가서 나란히 섰다.

“아, 그럼 먼저 미래산업분과 군청 실무자로 함께 할 전략성장국 송은경 주무관입니다. 그리고 그 옆은 동네활력분과 군청 실무자로 함께 할 도시개발국 이재우 주무관입니다.”

김선영 과장의 소개에 맞추어 두 사람이 차례로 회의실에 앉은 위원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고, 조용한 박수 소리가 그들의 인사에 답했다. 두 사람 모두 나보다 나이가 두어 살 많아 보였다. 나는 곁눈으로 박춘수를 흘깃 보았다. 첫날 발족식에서 보았던 그때의 표정과는 사뭇 다르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편안한 얼굴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마음이 좋았다. 박춘수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어떤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 그리고 저희 관련 공공기관 담당자들도 오실 텐데요. 저희 군수님 뵙고들 오시느라 시간이 좀 걸리시나 보네요. 담당자분들 오시기 전에 제가 잠시 설명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저희 관련 공공기관에서는 중소기업진흥공사 중부지사와 한국도시계획공사 중부지사에서 오셨고, 각각 미래산업분과와 동네활력분과 회의에 함께 참석하실 예정입니다. 아, 저기들 오시네요.”

김선영 과장이 또다시 가쁜 숨으로 설명을 이었다. 그녀가 쏟아낸 말 중에 어쩐지 낯익은 단어가 있는 것 같아 그게 무엇인지 되뇌이고 있을 때, 고보영이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군청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꽤 이름있는 공기업에서도 오네. 위원회 그럴 싸 하다.”

고보영이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사회를 보는 김선영 과장의 옆으로 새로운 두 사람이 섰다.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미래산업분과를 함께 해 주실 중소기업진흥공사 중부지사에서 오신 황의영 과장님. 그리고 동네활력분과를 함께 해 주실 한국도시계획공사 중부지사에서 오신 권세진 과장님이십니다.”

김선영 과장의 말에 따라 두 사람이 차례로 위원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박춘수가 속한 동네활력분과에 참석한다던 한국도시계획공사 중부지사 권세진 과장의 시선이 동네활력분과로 서서히 옮겨와 한곳에 멈춰 섰고, 괴이하리만치 작은 그의 검은 눈동자가 안경 너머에서 번뜩였다. 그의 시선이 멈춘 자리를 따라서자 그곳에는 박춘수가 있었고, 박춘수의 얼굴은 섬뜩하리만치 서늘하고 차갑게 굳어있었다.

(16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