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원래 그런 것'이란 없다, 이유가 있을 뿐.

by 안녕마나


“원래 다 그래.”

틀렸다. 원래 그런 것은 없다. 하물며 자연도 끊임없이 변하거늘, 어떻게 사람 사는 세상에 원래부터 그런 것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세상사에 이유는 있을지언정 ‘원래’는 없는 것이다. 그냥 지금 그대로가 편해서, 마주하기 두려워서, 진실을 믿지 않아서 ‘원래 그렇다’라는 말 뒤에 숨는 것뿐이다. 그 말을 방패 삼아 지금 이대로가 괴로운 이를, 마주하는 것이 두렵지 않은 이를, 진실을 믿는 이를 주저앉히려는 것이다. 그들은 기다리고 있다. 내 두 무릎이 꺾이는 때를.

면회시간은 끝이 났다.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서 점점 멀어져 가던 이용선은 문 뒤로 사라지기 전 한 마디를 보탰다.

“박춘수, 그 사람한테도 대충 쉬었으면, 돌아가라고 전해주고. 나하고 이제 상관도 없지만, 그 사람 위해서 하는 말이니까.”

이용선은 그렇게 들어왔던 문으로 나갔다. 나도 방을 빠져나와 왔던 길로 다시 걸어 나왔다. 대로변으로 나와 버스를 기다리는데 왜 굳이 휴가까지 내어 이곳에 왔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은옥 아주머니의 지나간 죽음에 대해 한 계절이 다 흐르도록 신경을 쓸 만큼 나는 괜찮은 놈이 아니었다. 은옥 아주머니를 왜 죽였느냐며 악다구니를 늘어놓을 작정도 아니었다. 스스로 내가 죽였노라 자백했다는 그에게 갑자기 왜 그랬느냐고 물을 생각도 없었다. 그날 밤, 박춘수의 집으로 와서 고작 한다는 이야기가 왜 돌아가라는 말뿐이었는지, 혹 다른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물으려 했던 것도 아니었다. 왜 하필, 박춘수의 집에 다녀갔던 그 날 이후 자살로 종결되는 줄 알았던 은옥 아주머니의 죽음이 갑자기 그의 살해로 이어졌는지 이상하지 않으냐며 물으려 했던 것도 아니었다. 도대체 그가 끝내 말하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물으려 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를 향한 나의 모든 질문은 계획에도 없이 마치 오래도록 고민하고 정해둔 질문인 듯 순서를 지어 차례로 튀어나왔고 내가 던진 이 많은 질문 중 그는 어느 것에도 답하지 않았다. 다만 묻지 않은 말에 대한 답 하나와, ‘원래 다 그런 거야’라는 거짓말과 박춘수에게 서울로 돌아가라전해달라며 건넨 말이 전부였다.

소식지에서 일하게 된 후로, 그간 주말이면 엄마 가게에 한 번씩 들르고는 했지만 늘 잠깐뿐이었다. 지난 화요일은 한 달에 한 번뿐인 시장 정기 휴무일이라 그날은 다들 미뤄둔 가게 정비로 바빴다. 나도 오랜만에 엄마 가게로 가 밀린 청소를 했다. 오랜만에 다 함께 쉬는 날이라 그랬는지 모두 표정들도 밝고 오랜만에 본 나를 반기는 아주머니와 아저씨들도 많았다. 점심때가 되자 다들 약속한 듯 상인회 사무실 앞 복남 할머니네 족발집 평상으로 모였다. 안주도 없이 진작부터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킨 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손님 하나 없는 시장을 꽉 채웠다.

“갑자기 은옥이네 생각나네.”

살짝 불콰해진 목소리로 누군가 말했다. 나는 뒤를 돌아보려다 말고 귀만 열어두었다.

“죽은 사람은 뭣하러, 술맛 떨어지게.”

“이렇게 한 번씩 모일 때마다 은옥이네가 만두 한 접시씩 돌리고 그랬잖아. 이제는 돈 주고도 못 사 먹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술이나 마셔.”

“그런데 그 죽인 놈이 하 사장네 사람이었다는데, 들었어?”

“누구, 하 사장? 하재명이?”

“응, 맞다, 말 나온 김에. 저번에 선일네가 횟감 좋은 거 들어왔다고 하 사장한테 갖다 준다고 하 사장네 집에 갔다가 이상한 걸 봤다고 그러더라고.”

“그 새끼는 뭘 또 그렇게 갖다 바치고 지랄이야. 또 뻐긴다고 선일네가 쓸데없는 말이나 한 것은 아니고? 뭘 봤다는데?”

상대가 되묻는 말에 남자는 잠시 말이 없더니 이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거이 아니고, 그 은옥이네 만둣집 있던 그 건물에 속옷집 이 씨 알지? 그놈이 그 집에서 나오더라는데.”

“에이, 난 또 뭐라고, 그게 뭐가 이상한 일이래. 하 사장 집에 사람 들락거리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구먼, 뭘 또, 새끼가 과장은.”

“아니, 그거이 아니고, 그 속옷집 사람이 은옥이가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고 경찰서 가서 말한 아주 결정적인 제보자라고 그러더라고.”

“그게 뭐.”

“아니, 그게 뭐가 아니라, 그 이씨가 그러고 나서 신수가 훤해졌다더라고. 장사 안된다고 맨날 담배나 빨아대던 놈이 여전히 장사는 안되면서 표정이 폈더라는 거야. 그런데 알고 보니 가게 월세를 1년 동안 반만 내라고 그랬다더라고.”

“월세를?”

“어, 월세를.”

“어디서 들었는데?”

“그 속옷집 이씨가 술 처 먹고 그랬대. 지가 뭐 하 사장하고 유 회장님하고 가까운 사이라면서 어디에 가서 술 먹고 자랑질 좀 하다가 그런 말이 나왔었나 보더라고. 다 그 속옷집 이 씨가 지 입으로 그러더래.”

“그나저나 그게 뭔데 너는 이렇게 목소리를 소곤소곤하고 그러냐. 그게 뭐라고.”

“아니 이상하지 않어? 하 사장이 데리고 있던 놈이 사람 죽였다고 잡혀들어가는 데 일등공신을 한 놈한테 뭣 하러 월세를 깎아주느냐고. 그것도 반씩이나 1년을.”

“에이, 쓰잘데기 없는 소리하지 말고 술이나 마셔. 왜, 자네도 그 속옷집 이씨처럼 잘 보여서 그 건물 싸게 들어가고 싶어서 배가 아픈 거구먼. 나중에 만나면 물어보든가. 난 또 뭐라고. 이상하긴 개뿔이 이상하다.”



“이상하네.”

어제 시장에서 들었던 아저씨 두 사람의 대화를 전해 들은 박춘수는 미간을 살짝 일그러뜨린 채 말했다. 팔짱을 낀 채로 내내 테이블 위만 응시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하 사장이 데리고 있던 사람이 살인을 저지른거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게 걱정되어서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제보자 월세를 깎아준 건 아닐까요?”

나의 말에 박춘수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덕구 저번에 너가 그랬었지, 하 사장이 자꾸 편집장한테 소식지 1면에 자기네 좋은 일 한 거 실어달라고 그런다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 사장은 BH개발에서 생색내기용으로 좋은 일이라도 하게 되면 편집장에게 연락하여 1면에 실어달라 했다. 그와 통화를 마치고 나면 편집장은 예외 없이 전화기를 소파로 집어 던졌고, ‘같잖은 새끼’라며 그답지 않게 열을 올리곤 했다.

“그런 하 사장이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 다른 것도 아니라 월세를 감면해 줬는데 그 일을 이렇게 소리 없이 조용히 했다는 건 두 가지의 경우 밖에 없어.”

“…뭔데요?”

“하 사장이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사람이 변했다거나.”

박춘수가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바로 마주보았다.

“조용히 처리해야할 이유가 있었거나.”

짚이는 거라도 있는지 물어보려고 입을 달싹이는데 박춘수가 별안간 싱긋 웃었다.

“저녁 안 먹었지? 라면 먹을래?”

묻기는 박춘수가 묻고 끓이는 것은 내가 했다. 그의 부엌은 말끔히 정돈되다 못해 밥은 해 먹고 사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모든 식기며 조리도구가 깨끗했다. 마음은 정리하고 싶어도 잘되지 않지만, 살림살이는 그렇지 않다며 청소가 그리도 좋은 이유를 말하던 박춘수가 떠올랐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는데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고 했다. 문득 흐트러지고 조금은 지저분한 그의 집은 언제쯤 볼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에 공연히 코끝이 찡해졌다.

“라면 잘 끓이네.”

“라면이야, 뭐.”

“이용선 씨를 처음 본 게 내가 같이 일하던 부장실 앞이었어.”

나는 젓가락질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먹으면서 들어. 몸에 긴장 풀고. 그래야 머리도 잘 돌아간다.”

나는 보란 듯 라면을 한 젓가락 입에 넣었고, 그는 말을 이었다.

“말했었나. 잠깐 스친 것 뿐인데도 못 잊을 것 같은 그런 순간이었다고.”

내게 먹으면서 들으라 했지만 정작 그는 한 젓가락을 끝으로 오른손에 젓가락은 시늉인 양 들고만 있었다.

“계획공사에서 일할 때 마지막 부서가 평가심의부였어. 지자체에서 도시개발이나 재개발 관련해서 사업비 신청하면 그거 심사해서 예산 지원해 주는 일이었거든. 내 마지막 평가심의가 홍영이었고.”

그로부터 그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이게 처음이었다. 간혹 어떤 일이나 물건에 대해 자기 생각을 말하고는 했지만, 자신에 관한 이야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권세진하고는 그 때 같은 팀이었어. 내가 맡았던 홍영 건을 어느 날 그 녀석이 맡게 되었고.”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내 질문에 박춘수는 예상치 못한 질문이라는 듯 놀라는 척 하며 씨익 웃었다.

“그러게. 일이 줄었으니 좋다고 생각할 순 있겠다. 그런데 내가 잘하고 있던 일을 뺏겼으니 기분은 더럽지. 다른 사람들 생각은 달랐던 것 같긴 한데.”

박춘수는 라면 대신 콜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라면은 아무래도 핑계 같았다. 대수로운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하려는 일종의 무대장치.

“다른 사람들은 왜요?”

“그게, 그렇지 않고서야 하던 일을 뺏는 건 이상하잖아. 그리고, 내가 부장 말을 좀 안 들었거든. 그 건으로.”

“어떻게요?”

“홍영에서 재개발 건으로 예산 신청이 올라왔어. 이런 지방 도시에는 주인 없는 오래된 집이나 땅이 많거든. 그래서 도시재생 차원에서 그걸 정리하겠다고 그러는 거야. 뭐, 그건 흔하지. 그런데 이게 골치 아파. 땅 주인이 하나면 모르겠는데 땅 주인이 죽으면서 상속받고 그러면 주인이 여러 명이 되잖아. 자손들 중에는 그런 재산이 있는지도 모르거나, 안다고 해도 크게 신경 쓸 만큼의 수준이 아니거든. 그래서 그거 정리하는 게 좀 골치 아파. 그런데 그걸 하겠다는 거야. 그래서 어렵지만 애쓰신다 생각했어.”

“했는데요?”

“그런데 말야, 그렇게 개고생해서 시에서 사들인 그 땅을 어떻게 활용할지 그 계획을 봤더니 그저 민간에 넘긴다는 거지.”

나는 선뜻 그게 왜 의문이 둘만한 일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멀뚱한 눈으로 박춘수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가 덧붙였다.

“생각해 봐. 그렇게 고생해서 땅을 다 샀어. 그러면 보통 시에서 역점을 두는 사업에 필요한 건물이나 시설을 짓거나 뭐 그런 식이거든. 체육관이나, 복지관이나, 공원이나 뭐 그런 거. 그런데 그 땅을 민간에게 넘기겠다는 거야. 말은 좋았어. 민간에 의한 도시개발 촉진.”

대학 때 교양수업으로 배웠던 경제학이며 정치학 수업이 떠올랐다. 그때 정부 주도 경제개발, 시장 주도 경제개발 같은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뭐 대충 그런 이야기인가 싶었으나 이해는 되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것인지 여전히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자 박춘수는 그런 내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몸을 내 쪽으로 기대어 놓으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왜요?”

“나도 고보영 따라해 봤어.”

“에이, 뭐에요.”

“생각난 김에, 기다려 볼까 한다, 고 주임이 내가 홍영에 왜 내려왔는지 짜 맞춰서 알아오는 거.”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번에 그랬잖아. 내가 여기에 왜 내려왔는지 자기가 안팎으로 들은 말 짜 맞춰서 알아내기 전에 나더러 실토하라고.”

그랬다. 고보영이 술자리에서 그렇게 말했었다. 박춘수는 활짝 웃어 보이며 말했다.

“재미있잖아. 내가 여기에 왜 내려왔는지 안팎으로 짜 맞출 퍼즐 조각을 가지고 있다는 게. 그런데 말야, 내가 할 말과 고보영이 짜 맞춰서 올 말이 서로 다를 것 같단 말이지.”

“고보영이 틀릴 것 같아요?”

박춘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니, 맞을 것 같아. 그런데 그 정육면체 이야기 아냐?”

“뭔데요?”

“정육면체를 책상 위에 올려놓잖아. 내가 가만히 앉아서 한 번에 볼 수 있는 면은 고작 3면뿐이야. 나머지 셋은 못 봐.”

“그런데요?”

“아, 덕구! 형님이 고급스러운 비유를 하는데 바로 알아먹고 감탄은 하지 못할망정 그런데요가 뭐냐, 그런데요가.”

박춘수는 입맛을 한번 쩍 다시더니 말을 이었다.

“고 주임하고 네가 그리고 어쩌만 다른 누군가가 내가 못 본 나머지 면들을 내게 알려줄 것 같다는 말이야. 그래서 나는 기다려 보려고.”

“기다려서요?”

“고 주임이 말해주면 그때 내가 아는 것도 같이 맞춰보려고.”

“제 것도요.”

박춘수는 내 말에 싱긋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지.”

“맞다, 아까 이용선 씨 이야기하려다 만 것 아니었어요?”

“아, 그래. 그게 생각해 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걸리네. 네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더 그렇다.”

“뭐가요?”

“내 일이 그렇게 권세진한테 넘어갈 무렵에 말야, 그러니까 일이 넘어가기 전에. 그때 이용선 씨를 부장실 앞에서 마주쳤거든. 그리고 며칠 뒤에 권세진한테 일이 넘어갔지. 그런데 이용선 씨가 저번에 내 회사 아이디하고 비번을 가지고 온 거야. 자기가 그 일 하고 관련이 있다는 걸 내게 알리려는 거지. 그리고 나한테 서울로 돌아가라고 했잖아. 뭔가 협박이라기보다 위험을 알리는 경고 같았어.”

“그리고, 이용선이 여기 다녀간 이후에 며칠 지나서부터 하나둘씩 목격자가 생기기 시작했고 은옥 아주머니 사건이 타살로 마무리됐고요.”

“그렇지, 덕구. 잘한다. 그리고 목격자라고 나선 속옷집 주인이라는 사람은 가게 월세를 1년 동안 반이나 깎아줘서 신이 났고, 깎아준 사람은 하 사장이고, 이용선은 하 사장이 데리고 있던 사람이고.”

“이용선 씨를 만나볼게요.”

“응? 덕구 니가 왜?”

“한번 물어보고 싶어서요. 그리고 이왕 만날 거라면 형 말고 제가 만나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박춘수는 내 말이 재미있다는 듯 가볍게 웃어보였다.

“…이유는, 알 것 같네.”

“네? 뭐, 딱히 이유는 없는데. 그냥 제가 은옥 아주머니를 오래 알기도 했고 하니까.”

박춘수가 내게로 몸을 기울이더니 고개를 살며시 가로저었다.

“그건 반만 맞는 이야기고, 이용선 씨하고 덕구하고 공통점이 하나 있거든. 아주 중요한.”

“뭔데요?”

“둘다 은옥 아주머니를 아끼지, 아주 많이.”

은옥 아주머니가 잘못 되고 난 후 병원에서 마주쳤던 이용선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런데 박춘수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걸까. 내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자 그가 덧붙였다.

“그날 우리 집에 이용선 씨가 왔을 때. 그 사람이 일어나서 돌아가려 할 때, 덕구 니가 은옥 아줌마 가게며 병원에는 왜 왔었느냐고, 왜 들어오지도 못하고 도망쳤느냐고 물었을 때 말이야.”

그날 보았던 이용선의 붉은 눈이 떠올랐다.

“그 사람 눈은 뭐랄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습이었거든. 죽인 게 아니라 끝내 살리지 못했다는 자책감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죽인 사람이 지어 보일 만한 표정은 아니었거든. 오히려 그 반대라면 모를까. 순전히 뭐, 내 감이지만.”

이용선의 붉은 눈에서 무력하게 번저나가던 분노도 떠올랐다.



수감자 면회는 처음이었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는데 그와 나의 관계를 묻는 란에서 멈칫했다. 우리 둘은 무슨 사이인가. 가족도 아니고, 딱히 민원인도 아닌, 어쩌다 만나서 알게 된 사이인데 그런 사이를 표시하는 칸은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런 인연이 인생에서 한둘이 아니건만. 둘러대듯 문서를 쓰고 예약한 시간에 만나기로 한 면회 호실을 찾아갔다. 신분증을 맡기고 들어서는데 교도소는 처음이라 나는 자꾸만 움츠러드는 어깨를 바로 펴 보려 애를 썼다. 이용선은 먼저 면회실에 도착해 있었다. 수감자가 거부할 경우 면회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전안내에 나는 그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다행히 그는 나와주었다.

“나와주셔서 감사해요.”

말을 건네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전보다 말끔했지만, 그의 얼굴 여기저기에 깊게 팬 주름 위로 괴로움이 웅덩이처럼 고여있었다. 말을 고르는 건 의미가 없어 보였다. 어차피 목적은 분명했으니.

“은옥 아주머니, 왜 죽이셨어요.”

그의 턱 근육이 꿈틀거렸다.

“저한텐 정말 소중한 분이셨어요.”

그렇게 말이 튀어나왔다. 엄마에게도 그런 말은 해 본 적이 없다. 은옥 아주머니에게도 해 본 적 없는 말이었다. 그런 말을 은옥 아주머니를 죽였을지도 모르는 이에게 꺼내놓은 것이 한편으로는 기가 찼다.

“정말 죽이셨어요?”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참회인지 억울함인지 분노인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많은 감정이 그의 눈동자 위로 한꺼번에 지나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렇게 쉽게 할 자백을 왜 진작 안하셨어요. 목격자 나오자마자 거의 바로 잡히셨다던데요.”

나의 말에 그를 감싸고 있던 모든 감정이 일순간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는 비어있었다.

“박춘수 씨 집에 다녀가신 뒤로, 갑자기 목격자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어서 빨리 이야기를 끝내고 가 주기를 바라는 듯 쥐죽은 것 마냥 고요하게 앉아있었다.

“박춘수에게 하려다 못한 말이 뭐였어요. 하려던 말이 있었죠? 협박하러 온 게 아니었잖아요. 뭔가 알려주러 온 거잖아요. 정말 은옥 아줌마 죽인 거 맞아요? 난, 아저씨가 결코 좋은 건 아니지만, 아니 너무 싫지만 아저씨가 죽였다는 생각이 안 들어서 그래요. 그냥 그래요.”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면회실에서 그가 처음으로 내게 눈을 마주쳤다. 해골이라고 해도 좋을 그의 앙상한 얼굴이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뗐다.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어, 예전에.”

그는 말을 마치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나는 그가 무언가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구나 생각하고 반가운 마음을 애써 누르며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았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그의 눈시울이 잠시 붉어졌으나, 이내 하얀 재처럼 빛을 잃었다. 면회시간이 끝났음을 알려오자 이용선이 먼저 몸을 일으켰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을 향해 외쳤다.

“하려던 말이 뭐였어요!”

그는 마치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나는 다시 외쳤다.

“뭐가 이래요! 왜 아무 말도 못해요! 뭐가 이래요!”

그러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말했다.

“원래 다 그래.”

원래 그런 것은 없다. 그럴 수 없다.


(금요일, 21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