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나서

46부터 50까지

by 여름

46.

마음이 퍼석퍼석해 지기 전에


그대 내게로 와요.


커서가 몇 번이나 깜박이는지 셀 수 있을만큼


망설이는 순간이 길어지기전에


그대 내게로 와요.


손가락이 춤을 추듯 미끄러져 정신없는


놀림으로 움직일 때는 이미 늦잖아요.


그대와 나 사이에


깜박이는 커서의 아련함이


쏜살같은 엄지 손가락에 가려지게 전에


그 전에 와. 줘요.


47.

그냥 좀 좋은 사람인데 싶으면


우선 멈춰서요


좀 더 좋다라는 마음이 부풀면


한 번 더 멈춰서구요.




궁상스럽게 싸우고 미운정이 들어


살결 냄새까지 킁킁대는 사람이 있다면



그저 좋아서


요만한 손톱 자국으로도 흠집내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람도 있나봐요



그런게 있나봐요.


그래서,


당신은 내게 그런 사람인가봐요.


그러니 그냥 거기 서 있어요


나도 여기 서 있을래요.


48.

잡생각이 많아 잠이 안 오는 밤


운동장을 돌아 본 사람은 안다.


끈적이는 여름 밤에 꼼작도 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 습함에 온 몸을 녹이는 것이


나은 사람들은 안다.


여름에만 찾아오는 그 물기 가득한


슬픔을.


49.

보송보송한 솜털로 들어가

어설픈 화장으로 나오는 시간

술담배의 맛도 모르고 걸어가

소주잔 부딪히는 소리를 제법 낼 수 있는 시간

대학.이라는 시간

어른.이 되어가는 공간


50.

머리를 잘라내는 것은


묵은 시간을 버려내는 것



머리카락을 자른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등 돌린 애인이 찾아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는 그저 머리카락이 자라난 시간만큼이라도 가벼워지고 싶어서


타인의 손을 빌어


스스로에게 자유를 쥐어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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