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나서

166부터 170까지

by 여름

166

인생 마음대로 안 된다.

그래서 어쩔 땐 다행이다.

핑계 댈 자리 하나 양보해줘서


매일 인생의 무지막지함을 욕하면서

땅 끝으로 바다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두 발 딛고 살 수 있는 것도


아주 작지만

각자의 크기로

핑계 댈 의자 한 자리


인생이 나에게 선심 쓰듯 남겨준

그 한 자리덕에

살고 살았고 살 것 같다.


167

사람들은 행복이 선이라고 생각해서

이 정도면 이만큼이면

행복한 것이 아니냐고 다그치며

물을 때가 있다.



하지만 행복이란 건

찰나에 찍어둔 점과 같은 것이라

내가 내 마음에 찍어두고도

어디있는지 몰라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결국 산다는 건 그런건가?

흩어진 행복의 점들을 찾아 돌아다니며

새로운 점을 찍고

지나간 점을 잊다가


그 무수한 점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 이어지면 눈을 감게 되는 일

그래서 누구에겐 너무 이르게 닿고

다른 이에겐 오래도록 닿지 않는 일


168

언제라고 감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우리의 지난한 계절이

다 걷힐 날이 올 겁니다.


그리고 또 살다가

그 계절의 냄새가 코 끝을 스치거든


아, 녀석이 다시 와서 나를 기다리는구나

하고 다시 한 번 힘을 모아주세요.


입 밖으로 소리를 내서 그 글자가

내 귀로 들어오는 당신의 소식이 없을 때에도


나 뿐만이 아니라 당신의 그 계절도

심히 고단치 않도록 나지막이 기도하겠습니다.


계절 그리고 작은 한숨

인생에 잘 버무려져 다시 만날 때

작게나마 웃기를 바라봅니다.


169

예년과 다르다는 숱한 뉴스 속에서도

계절은 낮동안 그 이야기를 따르다가


밤과 낮으로 다시 움직여

이 계절을 보내고 다른 계절을 불러온다.


다행이기도 하며 서러울만큼 정확해

마음을 무력하게 만드는 섭리


우리는 세상에 오는 계절을 택할 재주가 없고

떠나는 날 또한 알 수가 없어


한 계절을 다 품어 보지도

그 기운을 다 입어보지도 못하고 간다.


그를 만날 계절이 그 때 일 줄을

그와 헤어진 날이 코끝에 앉은 온도였을 줄

짐작도 못하다가

엄마 립스틱 몰래 뭉개버려 흠씬 혼나던 날만큼

축축하게 울어서야 한 계절을 버릴까 말까 한다.


계절 너는 분명 네 번 뿐인데

삼백하고도 육십 오일

하루하루 다른 기온과 습도 속에서

잊어야 할 일들을 잊지 못하고

잡아야 할 사람들을 놓쳐가며

나는 살아간다.


날씨 탓이라도 하며

접은 마음들을

주욱 찢어 날리기라도 하니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찌고 심술궂던 이 여름 가는게 유난히 서글프니

나는 이 계절이라도 살아냈던걸까.


170

사람들이 이혼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지금까지의 내가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나는 분명 그대로인데 그 한가지 사실이
나를 동정해 줄 사람 무언가 잘못된 사람
심하게는 실패한 사람으로 치부해 버린다.

자식들은 또 다른 불안을 갖는다.
지금 이 곳이 지옥이기에 다른 선택을 한
부모들은 살기 위해 지난 시간을 부정한다.

나빴던 일 좋았던 일
자식을 안았던 첫 순간, 그 때문에 울고 웃었던
많은 날이 녹아든 지금으로 접어든
인생의 나날들에 등 돌린다.

안타깝게도 부모는 그 시간을 등지고
마음을 찾아가지만 자식들은
온 인생을 송두리째 버려진 느낌에
슬픔으로 그 시간을 달려야 한다.

주저앉고 절망스러워하는 것도 잠깐이고
자식은 자식대로 살아내야 하기에
전보다도 더 빠르고 더 아무렇지 않게
달려야 한다.

지나보니 알겠다.
부모는 부모가 아끼고 정성들여 키운
현재의 나보다 더 어리석고 더 연약한 사람으로
이 거친 세상을 건너가자고 만나서
나를 이 고단함 속에서 늘 지켜냈다는 것을


그럼에도

앞으로 결혼이란 단어는 꼴도 보기 싫고
그이후로도 좀처럼 행복을 찾지 못하는
부모 모습에 애가 탈 수도 있다.

하지만 알아줘라.

네 부모도 수많은 눈물 방울 속에
살고자 너를 잠시 내려두고 숨을
고르는 중이었다는 것을

오랫동안 너를 지키느라
자신의 땀과 자존심을
수없이 닦아내 투명할 지경으로
연약해졌다는 것을

작가의 이전글생각이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