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나서

171부터 175까지

by 여름

171

불의의 사고나 자연재해가 아니고서야,

내가 나를 끊어내지 않는 이상

어떻게든 살아진다.


172

그렇잖아. 사람이.


당긴다고 오지 않고

밀어낸다고 떠나지 않고


억지부려서 안 될 것

여기까지구나. 잘 포장해서

고이 넣어두어야지지


더 망가지지 않도록

그걸 보느라 좀 더 아프지 않게


173

나는 나의 삶을 살고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삽니다.



보통은

일반적으로


그런 수식어로 시작하는 말이나


내 생각에는

나라면


이런 가정법을 두는 문장들을

한 두개만 마음 속에 들여 놓고,


아~ 하고 물결치는 감탄사로

당신의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하고 있어요.

그 정도 성의만 새해에는 하려고요.


바쁘고 어지러운 큰 세상 속에서

아마도 잘 안 되겠지만

그래도 다시

입 밖으로 내어 봐야죠.

아~ 하고 영혼을 한 스푼 담아서


이 울림이

타인일 수밖에 없는 그대들 가슴 속에

가 닿기를 바라면서요.


174

음악을 듣는 데에 막귀다.

리듬이 좋아서 일 때,

가사가 귀에 박힐 때,

큰 고음도 저음도 없이 담백한 보컬일 때


고양된 정서와 취향을 갖는 것이

멋진 것이고 현대인의 교양이라고 생각했다.

틀린 말이 아니고

그 고양시킨 무게만큼 대우받는 일이 많으니까


그런데

막 이라는 접사에는 날 것, 솔직함이라는

일차원적인 뜻이 녹아있는 걸 알았을 때


고양된 것이 훈련을 통한 가공일 수 있으며

나 자신에게 가장 솔직한 파편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흥분하며

감정을 쏟을 수 있는가도 함께 잃는 것이구나


헤아려보니


고양된 정서와 취향의 사람이길 포기했다.


막귀와 막입

그리고 막정서

막. 마지막일 수 있고 막. 벌거벗은 채일 수 있는


나의 막을

잃고 싶지 않다.


175

남녀 사이에서 친구라고 선을 그어

경계를 명확히 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두 사람 다 그 경계에 서서 서성이거나

둘 중 한 사람이 정지선을 넘어 걸어오고 있다는 뜻이다.


진짜 친구는 애써 친구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이미 다 아는 소모적인 정의를

서로 나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생각이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