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부터 210까지
206 -조카를 보며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밥알이
그렇게 귀하게 보일 수 있는지
화장실에 앉아서 냄새를 풍기면서도
태연하게 냄새 안 나여 하고
해맑게 말할 수 있는지
내 것을 욕심없이 나 거에요 라고
정확히 밝힐 수 있는지
마음이 간 사람에겐 수없이 뭐하냐 묻고
아직 어려운 누군가에겐 안 놀아 이렇게
단순하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지
어른이 돼서 이렇게 하게 되면
그르칠만한 일들이 전부지만
아직 어리고 분별없는 시절엔
그것이 아담한 사랑으로만 비춰진다는 걸
나는 이제 너를 보면서
알게 되었단다.
207
버려지고
모르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나도 알아채지 못하고
나를 만들어가는 시간이라고
당당하지만 겸손히
말할 수 있게 살아야지
208
내편에겐 세심하게
타인에겐 무심하게
세심과 무심도
늘 적당하게
209
비가 많이 온다.
우산으로도 가리기 어려운 비바람이다.
비옷을 입고 제 몸과 제 옷을 가린다.
그리고 나 말고 누군가가 앉을 좌석에
철푸덕 앉는다.
기사 아저씨가 운전석 옆에
긴 막대 버튼을 옆으로 밀치니
마이크로 소리가 난다.
맨 뒤에 앉으신 분
비옷 입고 앉으면 그 다음 사람은
어떻게 앉을까요?
목소리는 좀 화가 난 듯 했지만
어투는 공손했다.
무례한 사람은 비옷을 벗고
아저씨는 비옷 입는 사람들이 탈 때
비옷 벗고 앉으세요 라고
안내했다.
어른이면 알고도 남아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일들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와 같이 산다.
전엔 찌푸리고 말았지만
이젠 그럼 나는? 이라고 물어본다.
비옷을 벗을 자신이 없는 나는
그냥 비바람에 우산을 쓴다.
남을 돌아볼 자신이 없는 나는
뒤가 나쁘지 않을 소심한 선택으로
살아간다.
210
식당에서 손님이 떠나고
흔적을 치울 때
내가 손님으로 가서 옆 테이블의
잔재를 보았을 때처럼
속이 울렁거리거나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는 일은 없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식당의 손님이 흔적으로 남기고
가기 전의 모든 순간들이
나에게 담겨있기 때문이다.
마트에서 재료를 고르는 손
양념을 버무리는 찰나
그리고 완성된 모습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음식
과정없이 본 결과에는
야박하게 굴 수 있지만
과정을 세세히 보고 산출되는 결과에는
감안할 지점들이 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있다.
식당에서 알게 되는 것들은
가끔 사는데도 도움이 된다.
같은 선상에서
약간 다른 형태일 뿐이란 걸 보고 느낀다.
의외로 응용은 수학에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네 하고 다시 또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