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부터 220까지
216
누군가를 좋아할 때
명치 끝이 시큰하면서
마음이 떨리는 기분이라면
그 사람을 떠나보낼 땐
온 가슴이 울렁이다가
휘젓는 폭풍이 지나는 기분이다.
분명 아주 가늘고 약한 감정이었는데
작은 아지랑이같던 것이
나무 한 그루가 되고 두 그루가 되고
숲을 이루어 갈 때 그를 잃었기 때문이다.
과감한 사람은 숲을 싹 태워버리거나
나무를 모두 베어버리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 한 사람은
시들어 떨어진 나뭇잎을 보면서
헤어질 날들을 가늠하며
꾹꾹 슬픔을 눌러 기다린다.
몇 번 숲을 이루고
그것을 갈아엎어야
닿을 수 있는지
우리 모두는 알 수가 없어서
오늘도 설렘과 걱정을 동시에 안고
누군가를 만난다.
217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아파트 옆 길을 오래도록 달리고
약속을 잡으면 소모되는 걸 알면서도
긴 시간 여러 사람을 건너가며
만나던 날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집이 좋다는 사람의 이야기엔
저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코끝이 살짝 쨍한 바람이 불고
어 좀 춥네 하며
어깨를 자연스레 움츠리는
요즘과 같은 온도와 공기에 맞물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집에 와서 좋다는 안도감이
당신과 나의 내일을
지켜줄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고 자라고
언젠가 숨을 다할 공간
그 물리적 공간이 같지 아니할지라도 말이죠.
218
바닥을 치는 기분이 몰려올 때
남 탓과 핑계가 짝을 이루던 날을 지나
나의 작음에 속상하고
못 됐다는 말을 들은 마음에 틈이 생기면
늘 우선이던 허기진 배도 뒤로 하고
누워 잠 잘 생각만 듭니다.
가을이라 그런 거라고
겨울은 추워서 그럴 틈도 없다고
매 번 달래 보아도
나의 작음을 보면 나도 내가 싫기도 합니다.
누가 어른이란 말을 만들어서
나를 미워하는 날이 하루 더 길어지도록
한 것 일까요
속상한 어른들을 모아서
등을 마주하고 속 시원히 운다면
나아질까요
어른의 시간은 길고도 반듯해서
술 취한 듯 서툰 내 마음은
갈지자로 이리저리 오늘도 헤맵니다.
219
실수를 하는 것과
늘 실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후자인 날들이 많아도
전자가 될 수 있는 게
살아가는 길이니까
너무 조급하지도
겁내지도 말고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준
고운 마음들을 자주 들여다보자.
220
내가 아름답지 못 한 날에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따뜻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당장은 달라지지 못해도
서서히 나도 물들어갈 거라고 믿으며
버티고 살아냅니다.
어느 날
누구도 나를 보며
결이 고운 날들을 그려갈 수 있다고 믿으면서
하루는 무겁게 일어나고
다음 하루는 좀 더 가벼이 잠자리에 듭니다.
그러다보면 계절이 바뀌고
내 마음에도 찾아들어
세상과 나는 한 뼘 크곤 하니
지금은 그것만을 믿으며 나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