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부터 225까지
221
내 보기에 사는 모양이
안온하고 따뜻하다고
그 사람이 행복한 것은 아니고
거칠고 꼬이는 것 같아 보이더라도
그 사람이 불행한 것도 아니다.
차갑고 불안한 것이 싫다는 이유로
안정되고 따뜻하면 분명히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 날이 대부분이지만,
굴곡을 통해 마음의 조각이 다듬어지고
원치 않은 풍파로 색이 바랜 모습이
근사한 사람들도 있는 법이라
어설프게 정의 내려서 내뱉을 말을
다듬어야 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다만,
소원이 있다면 두 가지다.
이 추운 계절에는
근사한 인생의 모습은 덜 봐도 좋다는 것
닫히는 올 해의 문 앞에 모인 나와 사람들이
뜨끈한 마음으로 저물어 갔으면 한다는 것
딱 두 가지만
올 해에게 싹싹 빌어 남기고 싶다.
심술내지 말고
이 두 가지만 이뤄주고 떠나면 좋겠으니 말이다.
222
사소한 것을 잘 지키는 마음이
가장 힘들 때의 나를 지켜준다.
일어나면 창을 열고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것
하루에 한 번은 씻는 것
이틀에 한 번은 최소한 밖에 나가보는 것
제철 채소와 과일을 먹어보는 것
귀찮아도 내 공간을 청소하는 것
가장 힘들 때 가장 하기 싫은 일은
사실 큰 일이 아니라 작은 일이다.
작은 일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내가 너무 금방 흩어진다.
눈물이 많이 나고 그 눈물이 나를 머금어서
잠자리에서조차 털고 일어날 수가 없다.
어렵고 크고 대단한 일을 미뤄두고
우선 욕실로 가서 얼굴을 씻고 양치를 해 보자.
말갛게 씻은 얼굴로 시작하는 하루가
당신을 살릴 것이다.
나를 아끼는 것은
결국 나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을
우리는 살아가는 내내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23
제주항공을 타고
앞에서 활주로를 달려
날아가는 준비를 하는
대한항공의 뒤꽁무니를 보았다.
서서히 달리더니
슈웅하고 가벼이 지면을 떠난다.
그동안
남이 날아가는 뒤꽁무니만
바라보느라
정작 내가 날고 있다는 걸
잊고 있지는 않았을까?
224
허니문의 첫날밤만 어메이징한게 아니다.
여행의 첫날밤도 그것과 비슷하다.
분명히 껄끄럽고 생경스러운 풍경이었는데
딱 하루밤만 자고 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지난 밤 덜덜 떨며 두리번 거리던 골목과
낯선 말을 짖궃게 쏟아대던 사람들.
희한하다 싶어 손대기 어려운 음식들이
아주 조금씩 그리고 가만히, 편안해진다.
고작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쉼 없이 말을 걸던 귀찮은 인간이
귀 기울여주고 싶은 인생으로 다가오다니 !
이것보다 신기한 일이
살면서 몇 번이나 더 있을까?
어두컴컴 시끌벅적, 두렵고 낯설 때
하룻밤만 꾹 참고서 자봐야겠다.
그 어디라도, 눈만 뜨면
다시 내 세상이 시작될테니까.
225
시간이 지나면 다 약이 되지
지금 일이 '너에게'는 값진 경험이 될거야.
세상에 ! 그렇게나 무식한 말을 뱉어놓고
똑똑한 인간들의 책보다 대단한 위로를 했다고 으쓱했던 날이 있었지.
속에 진주가 들었는지 뻘만 가득한지 모를
조개만 네 손에 쥐어주고선,
너무너무 아파하는 널 보면서도
열지 마. 조개가 입 벌릴 때까지 기다려.
했었어.
그런데 알겠더라.
세상이 겨울 왕국이고 마음에도 렛잇고가
울릴만큼 더럽게 추울 때
언젠가 뱉은 말을 똑같이 들었을 뿐인데
그 몇 마디가 그 때의 나에겐
정확히 불행이고 슬픔인 것을...
사이다 같은 인생들 속에서
고구마 먹다가 사이다 사려면
꼭 100원이 모자라고,
목빠지게 좋은 곳에 가서도
남들 사진만 연신 찍어주는 기분으로 살다보니
남들이 잘못해서도 아닌데
자꾸 삐딱한 마음으로 축하하지 못하겠는거야.
그러는 나를 보니 못 견뎌 죽겠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너한테
좋아질거라는 둥
힘을 내라는 둥
그런 말을 하기가 너무도 싫더라.
이번 여행이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자랑은 아니었음 좋겠어.
나에게 지금은
이런 목 막히는 시간이 뭉쳐져 굴러온
보상금 같은거라는 걸
너에게 지금은
이런 시간이 올거야 라고 말하는 일이
엄마가 말하던 헛짓이라는 걸
우린 친구라,
나도 너도 너무 잘 아니까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