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제법 쌀쌀한 날, 길을 걷다가 고소한 기름 냄새에 눈이 탁 뜨여서 기름 냄새가 나는 쪽으로 향합니다.
도착한 곳에는 숙련된 아주머니 두 분이 뽀얗고 하얀 반죽 덩이들이 줄을 지어 기름판에서 스케이팅을 하듯 미끌어뜨리고, 벌써 몇몇 반죽은 황금빛 바싹한 색깔을 띠기 시작합니다. 둥그스름하고 봉긋하게 올라온 호떡들은 기름 쇼를 완벽하게 끝내면 차례대로, 사람들의 손에 하나씩 들려 나갑니다.
'내 차례는 언제 오려나' 하며 그 모습을 쳐다보다 보면, 길게만 느껴졌던 그 기다림의 끝이 보입니다. 그렇게 종이컵을 받아 들어 호떡을 한입을 베어 물면 바사삭하면서 속은 부드럽게 입을 감싸고, 뜨끈하고 달큰한 설탕시럽이 입안 가득 쫀득하게 퍼지는 그 맛. 그 맛에 호떡을 먹는 거죠.
혼자 해 먹기에는 외로운 호떡
혼자 자취를 하면서, 가끔 먹고 싶지만 혼자 해 먹기에는 너무 많은 음식이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아는 곳이 있으면 달려가 사 먹고 싶지만, 타지에서는 더욱 귀하고 그리운, 바로 '호떡'이 저에게는 그런 메뉴 중 하나입니다. 한인마트에 가면, 가끔 호떡에 우유 한잔을 곁들여먹는 그 오후의 간식 같은 달달함이 그리워 호떡 믹스를 큰 맘먹고 집어 들지만, 막상 집에 가서야 생각합니다. '이 많은 양을 누구랑 나눠먹지?...' 그렇게 갓 구운 호떡을 나눠먹고 싶은, 사람들을 꼽아보다가 마음이 허해져 결국 찬장에 꽤 오랜 시간 호떡믹스 박스에 먼지가 쌓이곤 했습니다.
그래도, 타지 생활이 길어지면서 감사한 점은 호떡을 함께 해 먹을 사람들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전에 일하던 키친에서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가끔 점심시간에 본인 나라에서 간단히 해 먹는 음식들을 간식 겸 점심으로 만들어 함께 나눠 먹곤 했습니다. 어느 날은 검은깨로 속을 채운 작은 찹쌀떡을 먹기도 했고, 새콤달콤한 소스에 곁들이는 베트남식 새우토스트, 코코넛의 진득한 향이 담긴 찹쌀밥에 곁들인 달큼한 망고, 브리오슈 반죽 남은 것에 앤초비와 레몬, 시금치, 카라멜라이징 한 양파를 올린 피자를 만들기도 하고, 고수 페이스트를 양고기와 함께 버무려 밥에 곁들여 먹기도 했습니다. 음식으로 정말 세계여행을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호떡의 마법
그리고 얼마 뒤, 제 차례가 다가오자, 친한 동료 몇몇이 저에게 '한국의 길거리 음식을 먹고 싶다'는 말에 고민을 하다가 호떡 믹스 두 개를 사서 준비하기로 합니다. 예전에 여행자 숙소에서 잠시 살 때, 처음 저에게 친구를 만들어주었던 호떡이 생각났거든요. 낯가림도 심하고, 낯선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어려워하는 저에게 처음 수많은 인사와 친구를 만들어 주었던 '호떡의 마법'을 한번 더 믿어보고 싶었습니다. 전 세계에 호떡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그리고 호떡은 사람을 불러 모으고 웃게 하는 마법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키친에서 쓰는 팬에 기름을 두르고 잘 발효된 반죽에 속을 채워 넣어 팬 위로 휘릭- 미끌어뜨려 줍니다. 기름에서 토독토독 빗소리 같은 소리가 들리며, 호떡의 마법이 시작됩니다. 사람들이 고소하고도 달콤한 냄새에 하나둘씩 제 주변으로 모입니다. '뭐 만드는 거야?', '바로 먹어도 돼?' , '냄새 너무 좋아' 라며 한 마디씩을 건네는 동료들이 모여듭니다. 호떡의 마법은 성공했는지, 바빠서 제대로 소개하고 인사를 나누지 못한 다른 팀 직원들도 하나씩 모이더니 관심을 보입니다. 호떡을 뒤집자, '와!'라는 탄성을 장난스럽게 하더니 맨손으로 먹을 준비를 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키친타월을 깔고 '절대 손대지 말라' 고 경고합니다.
둥그런 모양에 기름에서 잘 샤워를 마친, 누르스름한 색깔은 누가 봐도 예뻐 보이나 봅니다. 잘 구워진 호떡을 한 김 식혔다가 반으로 잘라 남은 설탕 속을 해바라기씨와 호박씨를 더해 채워 준 뒤, 소외되는 사람 없이 나눌 수 있도록 합니다. 한 명씩 집어 들더니, 더 먹고 싶다며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호떡믹스 두 개로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 한국의 달콤함을 맛보았고, 수줍은 저에게는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무척 많아졌으니 이것이 호떡의 마법이겠죠.
맛있어요!
오늘은 저희 집에 온 어린이 손님 둘을 위해서 호떡의 마법을 믿어보기로 합니다. 사실 이 친구들에게는 아주 어릴 때, 한번 해준 적이 있는데 너무 오래전 일이어서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법 사춘기 티가 나는 아이들은 낯선 저와 고랑이, 그리고 낯선 저희 집에서 며칠 지내려니 아마 많이 불편할 터라, 그래도 맛있는 호떡이 조금 이 친구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마법을 부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능숙하게 반죽을 섞은 뒤, 호떡 속을 2/3만 채워서 아이들을 위해 조금 작은 크기로 만듭니다. 기름을 두르고 약불에 차분하게 반죽을 올린 뒤, 커피를 담는 틴 케이스 뚜껑이 둥근 모양이어서 호떡 누르개로 대신 꾹 눌러줍니다. 기름에 호떡 익는 냄새가 고소하게 퍼지니, 어른 손님들과 아이 손님들 모두가 몰려옵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길거리 음식 중 하나라고 소개하며 하나씩 만들어 기름을 빼고 한 김을 식혀준 뒤, 반을 갈라서 남은 호떡 속 1/3로 속을 한번 더 채워줍니다.
이렇게 속을 한번 더 채워주면, 호떡 속의 김이 한번 더 빠져서 아이들이 너무 뜨겁지 않게 먹을 수 있고, 적당히 바삭바삭하게 설탕이 씹히는 맛이 느껴져서 식감도 훨씬 살아있게 됩니다. 한 어린이 손님은 메이플 시럽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 아이의 호떡에는 메이플 시럽을 작은 한 스푼을 쪼르르 추가해서 준비해줍니다. 그리고, 손님 상에 나가는 호떡은 그릇에 담아 아이싱 슈가를 싸리눈 처럼 살짝살짝 뿌려줍니다.
집에 있는 어른 손님들은 물론이고, 준비해 둔, 우유 한 컵과 함께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에 저는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조심스레 아이들에게 물어봅니다.
"혹시 더 먹고 싶니?"
"네!"
두 아이 모두 활짝 웃으며 그릇을 내밉니다. 사춘기 아이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활짝 웃는 모습에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구나 싶었습니다. 호떡 두 조각씩을 그릇에 더 올려주니 게눈 감추듯이 먹는 모습에 저도 웃게 됩니다. 다 먹은 그릇을 저에게 직접 가지고 오더니 '맛있었어요!'라고 하는 아이들. 오늘도 호떡의 마법은 '성공'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