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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마카롱 Feb 15. 2021

발렌타인데이 혹은 까치설날


아침부터 갑자기 카** 에서 메시지가 쏟아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메시지와 올해는 가족들이 함께 모이지 못하고 각자 집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잠깐 친정이나 시댁에 잠깐 번갈아서 다녀온다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쏟아지고 나서야 한국에서는 설 연휴가 시작되었음을 실감합니다.


이번 설 연휴 동안, 호주에서는 커플들을 위한 밸런타인데이(2월 14일) 기간으로 호텔에서 일하는 고랑이와 디저트를 만드는 저에게는 1년 중, 무척 바쁜 시기이기도 합니다. 호주에서는 무척 이 날을 중요하게 여기는 커플들이 많지만, 저희는 매년 가장 바쁜 날 중 하나이기 때문에 추가 근무를 하거나 밤늦게 퇴근하고 집에서 잠을 자기 바쁘기 때문에 고랑이에게 대신 이번 주 휴무일에 만두를 만들자고 말해봅니다. 




요즘 다이어트 중인 고랑이에게 1주일에 딱 한 번, 먹고 싶은 한 끼를 준비해주는 터라 영화 쿵푸팬더에 나오는 ‘포’만큼이나 만두를 좋아하는 고랑이는 지난주부터 한인마트에 들려 두부와 냉동 만두피를 집어 들더니 만두 만들 생각에 신이 나있었습니다. 만두에 들어갈 양파와 파를 안 샀다고 저를 데리고 다시 마트에 들어가기도 하고, 김치만두는 올해 설에는 정말 안 할 거냐며 아쉬운 표정을 짓기도 합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한국 여자와 함께 보내는 명절 4년 차에 접어드는 고랑이는 만두를 뚝딱뚝딱 만들더니 솥에 삼발이 찜기를 올리고, 부지런히 간장과 식초, 고춧가루, 마늘, 참깨 등을 섞어 양념장을 만들어 가지런히 수저 옆에 놓아줍니다. 바로 쪄서 바로 먹다 보니 젓가락 대신 손으로 호호 불어 뜨거운 만두를 양념장을 찍어먹던 저희 둘은 결국 웃고 맙니다. 매년 이렇게 수저를 꺼내놓지만 정작 손으로 만두를 집어먹는 게 버릇이 되었나 봅니다. 날이 생각보다 더워서 두부와 볶은 땅콩을 갈아서 만든 콩국물을 한잔 마시며 식사를 마무리해봅니다.



한국에서 새해 첫날, 산이나 바다에서 해맞이를 한 뒤, 뜨끈하게 떡국 먹는 그 재미에 여행을 하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해맞이를 전국 방방곡곡 다니시는 분들은 '산에서 해맞이'와 '바다에서의 해맞이'는 그 맛이 다르다며, 어떤 분들은 해맞이를 끝내고 가족들과 회를 먹으러 가는 틈에 저도 끼어 다녔던 시간들을, 산 중턱에 있는 어느 한 절에서 한 그릇 하고 가시라며 내어주던 그 떡국의 맛을 더듬어보니 제가 맞이한 새해의 햇수가 제법 많이 쌓였구나 생각합니다. 


아직 여름 날씨에 해가 많이 긴 이곳에서는, 오후 6시가 되어도 대낮 같아서 집에서 멀지 않은 해변으로 운전을 해 노을을 보러 가기로 합니다. 작은 가방에 물과 삶은 달걀, 그리고 슈가플럼 몇 알을 카메라와 함께 챙겨 나가 보기로 합니다.


도착한 Jetty( 한국말로는 부두라고 어학사전에 나오네요)는 넓고 길게 펼쳐져 물을 가르며 걷는 듯 걸어봅니다. 물의 표면에 반짝이는 윤슬이 세상에 모든 빛을 다 머금고 흘러가는 듯, 그렇게 빛나는 시간을 눈으로 마음으로 담아보기도 하고, 퐁퐁 뛰는 물고기 소리, 바지런히 돌아다니는 펠리컨, 각종 새소리와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는 가족들 속에 저희 두 사람도 그곳에 스며들어 시간을 보내봅니다. 단 하루도 같은 그림이 없는 하늘이라는 신의 캔버스에 매 순간 눈 앞에 펼쳐지는 시간에 그저 말없이 지켜보다가 고랑이의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올 한 해는 좋은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노을에 덧붙여 봅니다.



다음 날, 발렌타인 데이 이벤트로 평소보다 더 일찍 출근했던 고랑이는 며칠 밤늦게서야 집에 도착합니다. 고랑이가 도착할 시간쯤, 고랑이가 좋아하는 발 마사지를 위해 페퍼민트 스크럽을 꺼내고 따뜻한 물을 준비해 봅니다. 고랑이가 오기 전 엄마와 통화를 하다가 좀 울었던 터라 퉁퉁 부은 제 얼굴을 가리기에는 이만한 이벤트가 없거든요.


매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한국말을 어려워하던 그가 올해는 제법 한국 사람들이 알아들을만한 발음으로 직장에서 만나는 한국인 동료들에게 인사를 전했다고 자랑을 하며 집에 들어옵니다. 매년 남들처럼 레스토랑에 데려가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작지만 선물이라며 꽃과 함께 카드와 초콜릿을 내미는 남자를 보며 올해는 설 연휴도, 발렌타인데이도 소소하게 웃는 시간이 많은 설렌타인 데이를 보내봅니다.


올 한 해, 항상 좋은 일만 웃는 일만 있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소소하게 웃고 행복한 시간들이 많은 그런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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