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자마카롱 Jun 23. 2020

예루살렘 아티초크와 돼지감자

예루살렘 아티초크가 돼지감자라고?!

한 4주 전쯤이었나요,

집에 우편함을 확인하러 나가는데 옆집 할머니가 잡초를 뽑고 계셨어요.

워낙 친하게 지내는 터라, 평소처럼 서로 인사하고 안부를 묻고 수다를 떨고 있던 중

그녀가 묻더라고요.

"집에 예수살렘 아티초크가 있는데 좀 가져가서 먹을래? 나랑 남편이 먹기엔 너무 많은 양이어서..."

"진짜? 너무 고맙지! 잘 먹을게."

그래서 가져왔습니다. 예루살렘 아티초크. 제일 큰 건 정말 제 얼굴 만했어요. 정말로!


이건 생강이 아니라고!!!


'예루살렘 아티초크'

참 이름 낯선 작물이죠. 위에 사진 보면 무슨 생강같이 생겼나 싶으면서도

어디서 본 것 같은 생각도 들고요.


실제로 저희 동네 가장 큰 야채가게에서 이런 표지판을 본 적이 있어요.

'Jerusalem Artichoke;

This is not GINGER!!!'

(예루살렘 아티초크.

이건 생강이 아니라고!!!)




예루살렘 아티초크를 디저트에?


사실은 한 2년 전쯤, 호주에서 꽤 유명한 두 햇 셰프와 콜라보로 디너를 준비하게 되었어요.

워낙 유명세도 있고 아주 까다로운 그의 일화가 스태프들 사이에서 퍼지면서

그가 오기 전 주부터 엄청난 긴장감을 돌게 했어요.

(호주는 미슐랭 별이 아닌 햇(모자)으로 레스토랑 등급을 매겨요.)


가뜩이나 키친에 며칠째 도는 긴장감이 당황스러웠는데, 어느 날 출근하니 작업대를 가득 채운 이 뿌리채소(예루살렘 아티초크)를 보고는 당황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더 황당했던 건 다음 이유입니다.


저희 섹션, 즉 디저트에 사용된다는 말을 들은 거죠.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요?

씻으니 좀 생긴 게 나아 보이나... 그래도 예쁘게 생기진 않았죠. 오븐에 먼저 집어넣었어요

   

그리고, 며칠에 걸쳐 속을 파내고 말리고, 튀기고, 다시 말리고... 수십 가지의 과정이 더 있었습니다.




도대체 난 얘를 어디서 본거지?


다행히, 그 셰프와 콜라보는 성공적으로 끝났어요. 휴우- 아직도 떨리네요.

정말 많은 에피소드가 있는 행사 중 하나였거든요. 그 날 행사가 끝나고, 그와 함께 남은 디저트를 먹으면서 웃고 떠들고 사진을 수십 장을 찍었으니 이만큼 좋은 피드백은 없겠죠?

(디저트 사진 및 그와의 사진들은 저작권 문제가 있을 수 있어서 더 올리진 못할 거 같아요.)

그런데, 궁금하더라고요.

"도대체 '예루살렘 아티초크'가 뭘까? 도대체 난 얘를 어디서 본거지? 왜 이렇게 낯이 익지?"

그래서 물어봤죠.

구글과 위키피디아, 그리고 다음과 네이버에게.


여러분은 지금 예루살렘 아티초크 속을 파내는 중요한 순간을 보고 계십니다 :)



돼지감자= 예루살렘 아티초크


여러분 혹시 돼지감자 아시나요?

한국에서 당뇨병에 좋다고 TV에 종종 소개되고, 차로 끓여먹는 그거요.

네. 구글이 말해주길 예루살렘 아티초크가 바로 그 돼지감자라고 하네요.


돼지감자라고 하니 갑자기 친근감이 확 들지 않나요?

그래서 한국인인 저는 예루살렘 아티초크 레시피 말고 돼지감자 레시피를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차로만 마시는 줄 알았는데, 인터넷에 생각보다 많은 레시피들이 있더라고요.


집에 있는 연근과 함께 아삭함이 살아있도록 조리한 돼지감자 연근 조림.



돼지감자로 술을 만든다고?


예루살렘 아티초크. 즉, 돼지감자 (뚱딴지)는 해바라기가 에 속하는 뿌리야채이며,

예루살렘과는 전혀 관련이 없이 북미 원주민들이 처음 재배를 시작한 기록이 있다고 해요. 다른 영어 이름으로는 sunroot, sunchoke, or earth apple 등이 있어요.

실제로 돼지감자 꽃 사진을 보면 작은 해바라기나 노오란 데이지 같이 생겼어요.


그리고, 같이 일하는 셰프들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돼지감자에 든 이눌린 (Inulin)이라는 수용성 식이섬유 성분이 사람 체내에서는 흡수가 되지 않기 때문에,

다량 섭취를 하게 되면 설사를 하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양식에서는 보통 이 돼지감자를 퓌레나 수프, 튀김, 오븐에서 굽는 식으로 섭취하게 되는데,

한식에서는 역시나 피클, 조림이나 차 등 말리거나 식감을 살려서 먹는 레시피 들을 많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아시듯이 당뇨병과 다이어트에 좋기 때문에 더 건강한 레시피로 만들어 드시는 것 같아요.


또 재미있는 사실 중 하나는, 독일에는 이 돼지감자를 사용한 브랜디를 만드는데

아니러니 하게도, 식후에 소화를 돕거나 설사를 막기 위해서 먹는 리큐어라고 해요.


그래서 저는 뭘 만들어 먹었냐고요?


그리운 엄마표 엄마밥상. 지난번 한국 가서 먹었어요-



깍둑 썰어서 밥에도 넣어먹고,

집에 남아있던 연근과 조림도 하고 

그리고 돼지감자를 넣어 된장국을 끓여먹었어요.

돼지감자에서 느껴지는 흙향이라고 해야 하나요. 땅의 냄새가 마치 냉잇국 냄새 같은 향이 나서 순간 엄마의 밥상이 떠올라 울컥했죠.

혹시 해외에 있으신 분들 중에, 냉잇국이 먹고 싶다 생각이 들 때 돼지감자 넣어서 한 번 된장국 끓여보세요.

그 맛을 보는 순간 울컥하고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그 감정이 바로 '그리움' 일 거예요.

작가의 이전글 얼그레이 스콘으로 시작된 티타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