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자마카롱 Sep 17. 2020

15년째 월세 살이  

404호, 월세 28만원


2006년, 18세 고3이었던 저는 첫 자취방을 얻게 됩니다. E 대학교 근처, 한 여학생 전용 고시텔였어요. 

정말 저 하나 딱 누울 작은 침대 하나와 바로 옆에 작은 책상 하나와 의자, 그리고 선반이 있는 보증금 28만 원(한 달 월세)에 월세 28만 원짜리 404호. 화장실, 샤워실, 세탁실이 공용으로 한 층마다 하나씩 있었고, 신발장 자리 하나, 그리고 공용 주방에 밥과 김치와 라면이 제공되는 고시텔이었어요. 고시텔 총무님이 404호 말고 보여준, 또 다른 방은 창문이 있는 방이었는데, 3만 원이 더 비쌌던 터라 그 돈이 아까웠던 저는 404호에서 수능이 끝나고 12월까지, 5개월 정도를 살게 됩니다. 


매일 알람 없이 새벽 5시에 일어나 까치발로 세수를 하고, 공용 주방에 있는 밥통에서 밥을 퍼서, 정수기 뜨거운 물에 밥을 말아 김과 김치와 작은 고추참치 반캔을 따서 먹으며 모의고사 문제를 풀었어요. 새벽 6시 15분쯤 조용히 신발을 갈아 신고 걸어서 학교를 갔다가 밤 10시 30분, 야자를 마치고 돌아와서 공부를 하다가 잠이 드는 일상의 연속. 


그렇게 시작된 저의 자취방은 서울 곳곳에서 35만원짜리 창문 있는 방, 42만원짜리 화장실 딸린 방, 43만 원짜리 티브이와 인터넷, 화장실이 딸린 방등 거의 1년에 1-2회 꼴로 이사를 다녔고, 그리고 마침내 한국에서 마지막 자취방은 보증금 500에 50만 원짜리 작은 베란다와  인덕션이 딸려있는 작은 방까지 이어집니다. 


회사를 옮기면서, 혹은 집안문제 때문에 가끔 부모님 댁에 함께 살 때도 있었지만, 제가 나와 산 15년 가까운 시간, 단 한 번도 제 부모님은 제 자취방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셨고, 와보신 적이 없어요. 

친구들이 자취방에 로망을 가지게 했던 제 방 사진.

'자취한다'며 집을 나왔지만 그저 잠자고 샤워하고 나와 지내는 공간이다 보니 뭐하나 제대로 두고 사는 게 없었어요. 바나나 같은 먹기 쉬운 과일들, 연두부 두어팩, 인스턴트커피, 컵라면 몇 개, 참치, 김 그리고 옷과 속옷 몇 가지 몇 개와 신발 두어 켤레. 좋아하는 책 몇 권과 CD들. 접시 하나, 밥공기 하나 컵 하나, 다**에서 산 수저 한 세트. 그 모든 짐은 늘 캐리어 하나에 다 채워 넣을 만큼 의 짐만으로 살았어요. 


그 당시 좀 통통한 편이다 보니 결국에는 갖고 있던 바지 두어 개가 허벅지 부분만 닳아서 허벅지 살이 보이게 되었지만, 바지 하나 살 돈이 아까워서 그냥 긴 허벅지를 어느 정도 가릴정도의 상의만 늘 입고 다녔어요. 어떤 날은 학교를 갈 차비가 없어서, 결국 학교를 못 간 적도 있었어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공강 없이 학교 시간표를 주 3일로 짠 뒤, 끝나면 바로 과외와 아르바이트를 하고 새벽 1시가 다 되어서 집에 오곤 했어요. 


학자금 대출에 제 치과치료비도 모잘라, 집에 갑작스럽게 빚이 생길 때도, 정말 끊임없이 일자리가 생겼고 매일같이 서울 동쪽에서 서쪽을 가로지르고, 강남에서 강북으로, 또는 분당까지 투잡 쓰리잡으로 일을 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날은 너무 피곤해하면 위에 상사 분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요즘애들은 느슨하다', '젊은애가 뭘 그렇게 늘 피곤하냐.' 자기 관리를 못한다' 할 때마다 자존심이 상한 저는, 회사 더 가까이로 이사를 와서 악착같이 일을 했어요. 



예쁘고 아기자기하게 꾸미는 자취방에 대한 로망이 있는 제 친구는 요즘 부모님과 자주 싸우게 된다며, 인**에 올라온 제 자취방이 궁금해 하루는 제 자취방에 떡볶이와 맥주를 사들고 옵니다. 그래도 제가 한국에서 그래도 가장 사람 사는 곳 같이 꽃도 자주 사서 꾸며놓은, 가장 자랑할만한 500에 50을 내고 살던 제 자취방에 오던 날. 어떻게 이렇게 작은 공간에서 사냐며 친구가 속상해하며 울먹이는 표정을 짓고는 다시는 제 앞에서 자취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부모님이 제가 사는 곳을 한 번도 안 보신 게 다행이다 싶었어요.

처음 제가 사는 집에 제 돈으로 가구를 들여놓는 순간. 5일을 꼬박 조립했어요/

저는 제 주머니에 단돈 천원이 있어도, 통장에 13원이 남아있던 순간에도 가난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부모님은 쌀이 없으면 검은 쌀과 남은 잡곡으로 밥을 털어서 자식들 입에 넣어주실지언정 굶기신 적은 없고, 드라마에서 처럼 사람들이 저희 집에 찾아온 적도 있지만, 제 분신과 같던 피아노에 차압 딱지가 붙여지는 순간을 제 눈으로 본 적도 없고, 부모님은 본인들 속옷은 그토록 늘어져서 결국 걸레로 만들어 쓸 때까지 조차 낡도록 돈을 아껴서 저에게 가난한 예술가들의 삶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그림과 음악이 담긴 책을 알려주시고 사주셨으니 저는 '제 부모님은 부모님으로서 최선과 최고의 노력과 정성을 들이셨다'라고 생각해요. 


그 덕에 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과외 학생이 성적이 팍팍 올라 보너스라며 학부모님께 받은 지갑을 갖고 다니니 어린애가 사치스럽다며 욕을 했고, 일하던 곳에서 공짜로 납품되어 받아 온 생수 한 박스가 있어서 물값이 아까워 매일 한 병씩 들고 나와 먹으니 생수도 비싼 생수 사 먹는 된장녀라며, 돈 많은 집에서 고생 없이 곱게 자란 물정 모르는 아가씨 취급을 할 때도 있었으니 그래도 '내가 빈티 나게 살지는 않아 보여서 다행이다' 하며 웃었죠.

자취 9년만에 빛도들고 제 가구를 채우며 제대로 방을 가져봅니다.
늘 방 한 귀퉁이에는 친구들이 보내준 편지와 카드들을 붙여놓는 습관이 있어요.


그렇게 한국에서 열심히 '주어진 나날을 살아가는 법'을 10년 가까이 배우고, 타지에 오니 그 아무것도 스펙이라고 할만한 것은 없었지만 그 열심히 살려고 했던 저의 시간들이 저를 먹여 살리고 있더라고요. 없으면 없는 데로, 있으면 있는 데로 살아가며 그럼에도 조금 더 나아지겠지 싶어요


'**에서 한 달 살기' 같은 외국에서의 한 달 살기가 아닌, 여행에서 삶으로 더 나아가는 '타지에서의 집'은 아주 자주 이방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합니다. 저도 셰어하우스에서 인종차별적인 발언부터, 부모님을 들먹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만큼 별소리를 다 듣고, 별거 다 보고 지내기도 하다가 4년 반전쯤, 마음이 잘 맞는 하우스메이트를 만나서 같이 이사를 하고 집을 꾸미며 3년을 같이 살았어요. 작은 공간이지만, 빛과 바람이 잘 드는 큰 창을 열어서 청소를 같이하고,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고, 먹고 싶은 음식을 서로 챙겨주며 지내며 조금씩 다른 사람들이 편하게 밥도먹고 술도 마실수 있는 집에서 살게 됩니다. 


호주의 집들은 인스펙션(집 상태를 검사)을 정기적으로 하며, 집을 나갈 때도 돈을 주고 청소를 하고, 각 방이나 공간의 벽 단면 하나하나에 흠집이 있는지 체크해서 리포트를 작성해야 하며, 수백 장의 서류에 사인을 하고 '왜 이 집에서 살아야 하는지', '이 집이 왜 나에게 적합한지' , '어떻게 이 집에서 지낼지' 등등 수도 없이 적어내야 합니다. 돈이 있다고 무조건 집을 구할 수 있는 것만도 아니기 때문에 집 때문에 마음 졸이는 순간들도 참 많았어요. 

저와 하우스메이트가 조립해서 만든 식탁에서 사람들을 초대해서 먹은 어느 주말 점심.
15년째 월세 살이

지금도 저는 월세를 살고 있고, 어제 집주인과 에이전시에 집 계약 연장을 위해 이메일을 보냈어요. 15년째 월세 살이. 작더라도 내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과 꿈을 가지고 있고, 가끔은 한국에서 친구들이 신혼집을 '은행집이야'라고 하지만 예쁘게 꾸며 알콩달콩 사는 모습들을 보면 참 대견하다고 생각해요. 그 모든 게 얼마나 어려운지, 맘고생의 연속인지 아니까요. 


며칠 집세와 생활비 고민을 하다가, 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어제는 장보고 남은 동전만 모아둔 틴 케이스를 열어 오렌지 나무를 하나 사서 집 입구에 두었어요. 좋은 일이, 좋은 기운이 집 앞에서 기분 좋게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소망을 담아봅니다. 월세살이면 어때요. 꼬박꼬박 집세를 밀리지 않고 잘 내려고 하고, 청소도 열심히 하며 내 공간을 돌보고 아끼고 있는데 하루살이든 월세 살이든 이건 제가 오늘도 잘 살아가고자 하는 삶인데요. 나중에 친구들이 '제 집'에 놀러 왔을 때, 작지만 깨끗하고 아담한 방에서 잘 쉬며 즐겁게 지내다 가는 상상을 해봅니다. 아, 집에서 잘 키운 오렌지를 몇 알을 웰컴 기프트로 주는 상상도요.

잘 자라서 좋은 소식, 좋은 기운 많이 가져다 주렴 :)


작가의 이전글 첫 번째 편지, 사실은 아빠가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