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자마카롱 Sep 25. 2020

사부작사부작,
나를 일으키는 쉽고 작은 습관들

사부작-사부작: 별로 힘들이지 않고 계속 가볍게 행동하는 모양. (출처:표준어 국어사전)
사부작사부작 살고 있는 1인입니다.
사부작-사부작


며칠 전, 제가 엄청 좋아하고 한 때는 그녀의 팬클럽(?)까지 자청했던 C 언니와 오래간만에 연락을 했어요.

'사부작-사부작'이라는 제가 좋아하는 단어를 콕 집어서 사용하며 메시지를 보내는 언니의 진심 어린 응원에 저는 잠시 요즘 힘들었던 마음을 조금 뒤편으로 접어두고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4살짜리 어린이도, 30대인 저도, 심지어 퇴직을 하신 60대이신 저희 어머니도, 여전히, 그리고 매일 우리 모두는 고민 하나쯤은 가지고 살죠. 저는 예민하고 끙끙거리는 성격이라 친구가 메시지에 답변이 없으면 '혹시 내가 오늘 실수했나...' 하며 잠을 설치고, 심지어 꿈에서도 수천 개의 스콘을 혼자 굽고, 독촉 이메일에 답변을 하고, 회의를 참석하는 등등 꿈에서도 일을 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흔히 말하는 '유리멘탈의 소유자' 이여서 자주 상처 받고 부서지고 하지만, 그래도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회복탄력성이라고 하나요. 그래도 어디서 호되게 혼나고 까지고 와도 스스로를 보듬을 수 있는 작은 팁들이 여러 가지로 생기더라고요. 일이 안 풀리고, 걱정이 많고, 혹은 그냥 이유 없이 축축 쳐질 때, 아무도 안 만나고 싶고 말도 하고 싶지 않고, 나만 행복하지 않은 것 같을 때, 그저 혼자 침잠하고 고립이 될 때. 저에겐 이런 시간에서도 사부작사부작 거리며 조금씩 스스로를 일으키는 힘을 만들어주는 작은 레시피 몇 가지를 적어봅니다.

1. 햇빛이 좋은 날, 이불 빨래로 하루를 시작해봅니다.

마지막으로 이불이나 침대, 베개커버를 빨래한 지, 혹은 바꾼 지가 언제 인가요? 의외로 침잠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이부자리에 대한 신경을 쓰지 않고 그저 지쳐서 우울해서 눕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하루에 잠자는 시간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꽤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인데, 그러다 보니 의외로 놓치고 지내는 곳이 바로 이 이부자리 이더라고요. 발로 밟아서 이불 빨래를 바로 하셔도 좋고, 혹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한두 번 크게 털어서 세탁기를 돌리셔도 좋아요. 미루면 정말 귀찮은 일이니, 아침에 재빨리 시작해보세요. 의외로 맘먹고 하면, 하루 알차게 몸을 움직이게 해주는 마법의 일상이에요.


2. 집에 있는 시간이 긴 날이어도, 샤워를 하고 깨끗하고 좋아하는 옷을 입으세요.

집에 있다 보면, 무조건 내가 제일 편하고 늘어진 옷을 그대로 입는 경우들이 많아요. 하지만, 조금 하루를 잘 쓰고 싶다고 생각이 들면 일어나서 아침 샤워를 하시고, 잠옷 말고 깨끗하고 좋아하는 옷으로 갈아입으세요. (아침 샤워는 세포를 깨우는 역할을 한다고 해요. 창의적인 발상이 필요한 사람들은 아침 샤워가 도움이 된다는 하버드 대학 연구 사례가 있어요). 혹은 저녁 샤워를 하시는 분들이라면, 간단히 세수를 하시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어주세요.

일광욕하는 맥주. 사진 찍어준다고 했더니 이렇게 포즈를 짓네요.


3. 조금 더 걷고, 하루에 최소 10분은 햇빛을 쐬세요.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죠? 운동을 끊기엔 너무 귀찮고, 돈이 없을 수도 있어요. 집 근처에 좋은 산책로도 좋고, 퇴근길에 버스나 지하철 한정거장 일찍 내려서 걸을 수도 있어요. 혹은 우유라도 맥주라도 하나 사러 조금 더 거리가 있는 슈퍼나 편의점을 가셔도 좋고, 저녁에 떡볶이나 빵이 먹고 싶으시다면, 사러 갔다 오셔도 돼요. 그저 내가 즐겁게 조금 더 걸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스스로에게 만들어 주는 거예요. 그것도 정말 할 힘도, 귀찮으시면 집에서 빛이 잘 드는 창가나 장소에 10분 정도라도 스스로를 노출시켜보세요. 저는 정말 밖에 나가기 싫은 날에는 제 방 한편에 햇볕이 잘 드는 창이 하나 있어서 거기에 등을 대고 저희 집 맥주(고양이)와 광합성을 하곤 해요. 코로나로 락다운 덕에 밖에 나가지 못할 때, 저는 이 햇빛을 쐬는 시간이 도움이 참 많이 되었어요. 창문이 없는 고시텔에 살던 시절에는 빨래를 할 겸 나가서 햇빛을 쬐고 오곤 하기도 했고요. 조금씩 저도 장 보러 걸어 나가고를 6개월 정도 하다가, 이제 조금 습관이 잡혀서 일주일에 3-4번 정도 6km 정도 걷고 있어요.

저희 집 화장실에 둔 라넌큘러스예요 :)

4. 화장실에 꽃 한 송이를 놓아주세요.

이건 너무 황당한 것 같죠? 저는 가끔 우울하거나 정말 힘들 때는, 화장실에 꽃 몇 송이를 두곤 해요.

화장실이라는 공간은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가는 공간이지만, 가장 방치되고, 가장 피곤할 때 가는 공간이더라고요. 저는 세면대 근처에 꽃을 두고, 그냥 이를 닦다가 한 번, 손을 씻다가 한 번 보곤 해요. 비싼 꽃이 아니어도, 비싼 유리 화병이 아니어도 좋아요. 그저 한 송이라도 괜찮아요. 이게 참 신기한 게,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이 방법을 소개해주었더니 '신기하게 기분이 좋아졌어.'라는 메시지를 받곤 해요. 꽃을 안 좋아하시면, 작은 선인장이나 다육이 같은 애들도 좋아요. 꼭 화장실이 아니어도 돼요. 내 책상 위, 식탁 위, 사무실 한편, 침대 맡에 두고 한 번씩 쳐다도 봐주시고 혼잣말이라도 해주세요. 매일매일 볼 때마다 식물들은 참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답니다.


5. 하루에 한 끼 정도는 사진을 찍을 만큼 예쁘게, 맛있게, 즐겁게 드세요.

기분이 우울하고 힘이 없으면 음식이 먹기도 싫고, 배고파서 먹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다 보니, 그냥 냉장고에 있는 컨테이너 채로 음식을 꺼내서 먹거나 하는 경우가 많아지더라고요. '설거지가 귀찮아'라는 생각이 들어도,

과자라도 봉지가 아닌 좋아하는 그릇에 담아서 드시고, 맥주를 드신다면 잔을 냉장고에 5분 정도 넣어두었다가 맥주를 따라 드세요. 라면을 끓여먹어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로 끓여 드세요. 내가 꼬들한 면발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라면 면발의 꼬들함으로 승부를 보겠다'며 라면을 끓이거나 국물을 자작한 것을 좋아한다면 정말 만들면서 군침이 돌도록 국물 자작하게, 맛있게 끓여주세요. 특히, 남은 음식을 먹을 때는 더 잘 데워서, 혹은 그래도 박스나 패키지 남은 것이나 남긴 자국 없이 말고 그릇에 담아서 드셔 보세요. 아무리 귀찮아도, 내가 나를 챙기고, 보듬고 , 귀찮아하지 않아야 내가 나를 돌보고 존중하는 습관이 들더라고요.


마음결이 고운 친구가 예쁜 선물을 보내주어 저의 사부작사부작을 적어보고 있어요.

그리고, 하루에 딱 하나, 내가 나를 일으킬 수 있는 작은 노력을 써보고, 해보세요.

딱 덜도 말고, 더도 말고 하루에 아주 쉬운 하나의 노력을 해보세요. 깜빡하고 챙겨 먹는 것을 까먹는 비타민을 꼭 챙겨 먹는 것도 좋고, 생수 500ml짜리 2개를 사서 하루 동안 1리터의 물을 먹는 것도 좋아요. 장 보러 갈 때, 장바구니를 들고나가는 것도 노력이에요. 좋아하는 글 한 구절을 읽고 메모를 해도 좋고,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유투버의 영상을 챙겨보는 것도 좋아요. 그리고 이 노력을 노트나 메모지에 써놓았다가 다 하고 찍찍 그어놓으셔도 좋고, 핸드폰 메모장에 남겨도 좋고, 소셜미디어에 누가 보든 안보든 올리셔도 좋아요. '나는 내가 나를 위해 하나 정도 노력을 하고 산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으니까요. 재미있는 것은 이 노력이 하나씩 쌓이면 나만의 습관이 되고, 우리에게는 '좋은 습관 + 다른 하나의 노력'으로 늘 하루를 살아게 되는 것이니까요. 참고로, 저에겐 오늘 이 글을 완성해서 여러분과 공유하는 것이 오늘의 노력이에요.



저는 저의 작은 레시피들을 적어보았지만, 여러분들도 스스로를 조금씩 일으키고 다독이는 좋아하는 일 하나, 혹은 작은 나만의 팁 하나 정도는 있을 거예요. 제 친구 중 하나는, 정말 우울할 때 집에 본인이 좋아하는 작은 향초를 켜놓는 다고 하더라고요. 또 어떤 친구는 비 오고 축축 쳐지는 날, 커피를 좀 더 진하게 내려서 마신다고 하더라고요.(비 오는 날 집에서 커피를 내리면 그 향이 더 짙게 퍼진답니다 :))  다들 힘든 시기이고, 저도 많은 일들이 잘 안 풀리는 것 같아서 풀 죽어 있다가도 그래도 조금씩 이렇게 사부작사부작하고 있거든요. 이 작은 글이 누군가에게는 꼭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적어봅니다. 일상에서 도망치지 않고, 사부작사부작 작게라도 스스로를 일으키고 무언가 하다 보면 좋은 소식들이, 좋은 시간들이 저와 여러분의 일상에 잘 스며들기를 진심으로 응원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소주-



작가의 이전글 15년째 월세 살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