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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마카롱 Nov 06. 2020

뾰족뾰족한 날에는,
둥글둥글한 알감자를.

그런 날이 있습니다. 별 이유 없이 유난히 마음이 밤송이 가시마냥, 성난 고슴도치 마냥, 뾰족뾰족하다 못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쿡쿡 찌를 것 같은, 마음이 아주 뾰족뾰족한 날.


나만 이렇게 아등바등 하는 건가 싶고, 아근바근 맞지 않는 서랍이나 문짝 같은 것만 눈에 들어오고, 무엇을 해도 마음에 맞갖지 않고, 무엇을 입어도 철겨운 옷차림같이 보이는 그런 날이요. 그런 날에는 무언가 둥근둥글하고 동글동글한, 모난 것을 깎아줄 만한 것들을 찾아봅니다. 


예를 들면, 입안에서 오래 굴리고 녹여 먹을 사탕이나 초콜릿도 좋고, 마음을 감싸주는 듯한 따뜻한 목소리를 가진 이가 부리는 노래, 그리고 휴게소에서 막 받아든, 뜨끈하니 마음을 동그랗게 녹여 줄 휴게소 알감자 같은 것들을 생각해봅니다.


휴게소 알감자


우리나라 휴게소에는 정말 어쩜 그렇게 맛이 있는 음식들이 많은지 늘 여행중에 들리는 휴게소는 정말 여행에서의 큰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 먹으면 하나 더 먹고 싶은 소떡소떡이나 떡꼬치 같은 메뉴부터, 기다리면서 입안 가득 침이 고이는 핫바, 도서관에서 먹는 라면보다 더 맛있게 느껴지는 휴게소 라면과 우동, 쫀득하게 구워 손으로 탱글탱글한 살을 입에 물면 감칠맛이 도는 맥반석 오징어, 입안이 까지도록 호호 불면서 입안 가득 물게 되는 호두과자, 그리고 참 별것 아닌 거 같은데 이쑤시개를 여러 개 꽂아 차 안에서 함께 나눠 먹어야 제맛인 휴게소 알감자까지. 이 글을 쓰면서, 저는 벌써 입맛을 다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며칠 전에 사 온 작은 알감자로 휴게소 알감자를 만들어 보기로 합니다.


감자를 쪄 준뒤, 이제 부터 시작합니다.


통통하니 둥글둥글한 감자를 물에 깨끗이 씻은 뒤, 소금을 살짝 뿌려서 칼끝으로 감자를 쿡 찔러도 훅- 들어갈 때까지 감자를 쪄줍니다. 한 김을 빼준 뜨끈한 알감자를 손으로 살살 껍질을 까줍니다. 껍질을 깔 때는 겉에 아주 얇은 겉껍질만 잘 까주도록 하세요. 감자껍질이 아주 얇을때는 안까도 맛있지만, 버터의 풍미와 간이 감자에 잘 배는 것을 도와주니 조금 번거로워도 하나하나 까봅니다. 포슬포슬하니 감자가 아주 잘 익은 것 같아서 오늘 알감자는 무척 맛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집 앞에서 따온 타임과 버터를 온기가 남은 감자 사이로 넣어줍니다.


버터를 손가락 한 마디 만 하게, 두세 조각 뚝뚝 잘라서 감자 사이사이에 넣어 준 뒤, 소금을 뿌려줍니다. 아직 남은 감자의 온기 덕에 버터가 소금과 함께 사르르 녹으면서 감자에 배어드는 모습을 보니 입안에서 짭조름한 맛이 벌써부터 상상됩니다. 저는 그 냄새와 온기에 고새를 못 참고 감자 하나를 입안에 쏙 넣어봅니다. 이대로도 너무 맛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라이팬에 불을 약한 불로 올려주고, 식용유를 프라이팬 바닥에 자작하게 깔릴 정도로 부어준 뒤, 감자를 올려서 익혀줍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감자를 아주 약한 불에 눌리듯이 바싹한 부분이 고루고루 잘 생기게 구워주는 것 입니다. 꽤 오랜 기다림이지만, 집안에 기름 냄새와 감자가 익어가는 소리, 그리고 노릇노릇 구워지는 감자의 색만 보고있어도 이미 행복한 기다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감자가 잘 익고 있습니다!


그렇게 감자를 우리가 원하는 만큼, 먹으면 행복하고 마음이 둥글둥글해질 것 같은 만큼 잘 익혀준 뒤, 이제 버터를 원하는 만큼 넣어서 2분 정도 감자에 잘 스며들도록 굴려줍니다. 노릇노릇하게 익힐 정도로 기름 없이 버터로만 감자를 익혀주는 방법도 있지만, 저는 감자의 바삭한 부분을 좋아해서 오랫동안 익히다 보니, 이렇게 식용류로 어느정도 색이 올라온 뒤, 마지막에 버터를 넣어서 감자에 이렇게 해주면 버터가 타듯이 조리가 되지도 않고, 원래 버터가 가진 감칠맛이 사라지지 않아서 더 맛있는 게 느껴집니다.


아, 저는 집에서 키우는 타임이 있어서 파슬리 대신 버터와 어울어지게 손으로 살짝 비벼서 향을 느끼며 감자를 버터에 살짝 굴리듯이 넣어봅니다. 이제 냄새로도 너무 맛있는 감자를 그릇에 담아, 피자 먹고 남은 치즈 가루와 설탕을 기호에 맞게 뿌려서 먹을 준비를 합니다.




문득, 휴게소에서 감자를 담아주던 둥그스름한 플라스틱 용기에 감자 몇 개에 쿡쿡 아무렇게나 찔러놓은 이쑤시개들이 문득 그리워집니다. "빨리 와~ 곧 출발한 데!" 라고 외치던 친구들과 손에 하나씩 휴게소 간식들을 전리품마냥 들고 그 입안 가득 도토리 문 다람쥐처럼 오동통한 볼따구를 한 채 차 안으로 달려가다 찍힌 사진을, 휴게소를 막 출발하는 차 안 가득 퍼져있는 그 음식들의 온기를 생각해 봅니다. 이런 동글동글하고 짭조름하니 달달한 알감자를 앞에서, 어떻게 뾰족뾰족해진 마음으로만 있을 수 있을까요. 마음이 뾰족뾰족한 날에는, 동글동글 둥글둥글한 알감자를 내밀어 보기로 합니다.


 시골에서 짠, 들기름에 오래도록 지지듯이 바삭하게 눌려먹었던 감자 그리운 날. 가끔 외할머니가 보고싶은 날은 이렇게 해먹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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