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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마카롱 Dec 15. 2020

결혼식도, 결혼반지도 없지만.

'스드메'도, '예단', '혼수' 도 잘 모르지만, 잘 살고 있어요.


엄마: 딸, 나 영어 공부해야 할 거 같은데.

유자마카롱: 응? 웬 갑자기? 엄마 영어 공부하고 싶으세요?

엄마: 아니 나중에 너 결혼할 사람이랑 말하려면 엄마가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유자마카롱: ㅋㅋㅋㅋ엄마...내가 무슨 결혼이에요 ㅋㅋㅋㅋ남자 다 귀찮아~ 그리고 나도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모르는 그놈은 영어 쓰는 놈이래요? 영어 쓰면 내가 통역하면 되지. 비싼 돈 들여서 가르쳤는데 그 정도도 못할까 봐요.

엄마: 아니 그래도 간단한 대화는 할 수 있게 배우려고. 너 예전에 듣던 영어 라디오부터 들을까? 뭐부터 하면 돼?


조금은 황당했던 이 대화는 8년 전쯤, 어느 주말 엄마 집에 잠깐 밥 먹으러 갔을 때 했던 대화였던 걸로 기억해요. 그 당시에는 몇 년간 남자친구는커녕, 학부모님들 아니면 주변에 동료나 남자 상사분들은 다 유부남 들이였거든요. 일 때문에 늘 바빠서 친구들한테 핸드폰 메시지도 다음날 답장할 정도로 정신이 없었고요.


그 와중에 소개팅은 한번 했었는데, 소개팅남에게 밥값에 술값까지 몇 번 뜯긴 에피소드는 제 친구들에게 꽤 오랜 안주감이 되어 저의 흑역사를 자랑했고, 남들 말하는 대로 자는 시간을 줄여서 동호회나 모임 같은데 나갔는데 미적지근하게 썸 타는 것도 지치고, 조금 이상한 남자들이 접근해서 골치가 아프게 지냈던 터라 그저 '내 인생에 남자는 없나보다. 열심히 즐겁게 나 혼자 잘 살자.' 싶었거든요.


그리고 8년쯤 지난 지금, 엄마의 예지력 덕분인지(?) 영어쓰는 나라에서 프랑스 남자를 만나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모 언니네 신혼집 방 입구에서 너무 마음에 들어 찍은 사진.



결혼 혹은 동거


호주는 같이 산 시간이 1년 이상이면 법적으로 결혼과 동등한 효력을 가집니다. 그래서 결혼을 안 했으나 아이가 있는 커플도 많고, 동거한다는 것이 결혼과 상관없이 당연한 문화 중 하나입니다. (제 호주친구 중 하나는, 여자친구랑 동거해보지 않고 결혼을 바로 하겠다고 했더니 부모님이 일단 같이 살아보고 나서 결혼 생각을 해보라고 강경히 반대했다고 들었어요)



오후 4시~5시이면, 카페부터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기 시작하며 외식비가 워낙 비싸서 집에서 데이트하는 경우가 많고, 본인 집이 아니라면 보통 꽤 비싼 월세를 내고 지내기 때문에 동거하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요. 여기서는 연애를 하는 커플이 함께 사는 건 너무 당연한 터라, 나중에 뒤늦게 들은 고랑이에 말에 의하면, 제가 몇 번 이사를 하면서 같이 살자는 말을 한 번쯤은 할 줄 알았다고 해요.


저는 고랑이를 만날 초기에 졸업생 비자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제 힘으로 비자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는 같이 살고 싶지 않았고, 한국에서도 보수적인 집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지라 '결혼 할 사이도 아닌데 동거를 하는 건 좀 아닌것 같다.' 싶었거든요. 그리고, 고랑이는 연애기간동안 이렇게 생각했다고 해요.


'아, 이 사람(유자마카롱)은 매우 독립적인 사람이고, 이 부분을 존중해줘야 내 사람이 되겠구나.'





결혼 << 내가 내 인생을 잘 꾸려가는 것


저는 비혼주의자까지는 아니어도, 결혼식에 대한 로망도, 결혼도 생각해 본적이 없어요. 일단, 10대, 20대에는 제 인생을 스스로 감당하기에도 조금은 버거운 문제들이 있었고, 저의 부모님의 삶은 존경하지만 사랑 없이 결혼한 저희 부모님의 결혼생활에 대해서는 꽤 회의적이었거든요.


그래서 '결혼'보다는 '내 인생을 내가 잘 꾸려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결혼이든 동거든 누군가와 함께 인생을 공유한다는 것은 '내가 내 일상을 온전히 꾸려갈 수 있는 능력' 이 있는 상태에서 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어요.


내가 단돈 100만원을 한 달에 벌어도 열심히 내가 피땀 눈물 흘리며 번 돈이고, 내가 괜찮은 사람이고, 내 일상에서 내가 오롯이 홀로 설 수 있다는 자신감과 안정감 같은 것들이요. 물론, 이런 나를 존중해주고 내 가치관과 생활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연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거 같고요.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매우 큰 친구를 위해 만들었던 작은 카네이션 부케와 부토니에.


저도 물론 친구들이 고르는 예쁜 드레스와 화려하고 반짝거리는 프로포즈링등을 보면 감탄하고, 축하하는 마음으로 부케를 만들다가도 예쁘다며 사진 찍고 좋아하는 보통의 여자이지만, 제가 입고 싶은 웨딩드레스나 결혼식 장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축하하는 마음으로 일하면서 만든 웨딩 디저트도, 제 손으로 자른 웨딩케이크가 수백 가지가 넘은 터라 저는 그걸로도 충분히 만족하거든요.


그리고 운 좋게 한국에 있는 동안, 친구들이 결혼 준비하면서 친구들이 예쁜 웨딩드레스, 결혼반지,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것도 가까이에서 잘 봤던 터라 그거면 저는 결혼 준비에 있어서 가장 즐겁고 달콤한 부분들은 신부만큼 행복했다고 생각해요.


일하면서 만난, 중동국가 웨딩에 버금가는 양으로 준비 된, 신부의 할머니가 직접 보낸 크로아티안 웨딩을 위한 디저트.


엄마:  고랑이는 좋은 사람이니?

유자마카롱:  응. 자기 일 열심히 하고, 돈 함부로 쓰는 것도 없고. 나한테 잘 하고. 식물에 물 줄 때도 혹시 작은 도마뱀이나 지렁이를 자기가 밟지 않을까 싶어서 조심조심 걸어 다녀요.

엄마: 그럼 됐어. 네가 선택한 사람이면 그거면 돼.


그렇게 결혼 생각이 1도 없었던 두 남녀가, 지금은 웃고 마는 우스운 해프닝덕에 예쁘고 화려한 결혼식도, 결혼반지도 없이 영화에서 보다 더 간편하게 정말 '한 장의 종이'와 증인 몇 명과 둘의 싸인으로 시작된 함께 하는 여정을 선택했고, 저희는 그렇게 함께 살아가고 있어요. 어쩌면 저희에겐 종이에 싸인을 하기전, 함께 살며 부딪치며 했던 대화와 질문들이 저희에겐 결혼식을 위한 준비였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이는 갖지 않지만, 서로 마음속에 품고 사는 아이 같은 마음을 서로 보듬어 주기.

의견이 맞지 않거나 싸우게 될때, 화내거나 비난하지 않고, 해결방법을 찾아보기

제가 성당에 가는 것도, 고랑이가 종교를 갖지 않는 것에 대해서 존중해주기.

고랑이의 대출금 상환 계획과 함께 앞으로 돈은 어떻게 모을 것인지 계획하기

갑자기 실직상태가 되거나 일을 그만두어야 할 때, 한쪽이 버는 돈으로 아껴 쓰며 지내기.

서로가 얼만큼의 돈이든 어떤 일을 하던 숫자나 타이틀보다는 돈을 버는 가치와 노동의 대가를 믿고 지지해주기.

손편지와 꽃을 서로에게 종종 선물해주기

몇년 뒤에, 간단한 커플링 맞추기

한국어 공부와 프랑스어 공부를 꾸준히 하면서, 서로의 나라와 문화에 대해 더 알아가고자 노력하기 등등


맥주와 함께 한국어 공부중인 고랑이.



요즘 다이어트와 직장 스트레스 예민한 고랑이와 이직 준비로 감정의 날이 바짝선 제가 결국 어제 저녁, 저녁밥을 먹다가 서로 '갸르릉' 거리며 싸우곤 말았어요. 심통이 단단히 난 저는 아침에 고랑이의 출근길 배웅조차도 안 해줬고, 고랑이도 뒷꿈치를 들며 살금살금 왔다갔다 거렸는데 고랑이가 출근 뒤 나와보니 손글씨로 작은 편지 한 통을 써놓고 나갔더라고요.


그리고 그 마지막에 적힌 말.

(그럼에도), 나는 너를 많이 사랑해. 좀 있다 봐 - 고랑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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