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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마카롱 Jan 12. 2021

너를 울리는 음식, 나를 울리는 음식

얼마 전, 유**에 추천 영상으로 맛깔나는 연기로 사람들을 울고 웃게 하는 배우 박철민 씨가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한국 예능에 출연했던 영상이 떠서 클릭해서 보았어요. 치매를 앓고 계신 어머니의 손맛을 무척 그리워하는 박철민 씨를 위해 정호영 셰프님이 '조기매운탕'과 '카스테라'를 만들었고, 그 음식을 맛보는 박철민 씨는 '비린내가 나게 조리하는 것 까지 똑같다.'라며 프로그램 내내 울면서도 맛있게 먹는 모습에 마음이 짠해지더라고요. 알고 보니 정호영 셰프님의 아버지도 치매로 고생을 하고 계시고, 이 프로그램 출연 이후 정호영 셰프님이 가게에 박철민 씨와 어머니를 초대하여 식사를 맛있게 하셨다고 합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함께 먹으며 서로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일이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음식이 담긴 접시들을 가운데 놓고 그것의 밑바닥을 함께 보는 일이다. (박칼린, ‘사는 동안 멋지게’ 중)




20대에는 얼음장 같은 사회생활에 마음이 허허 해질 때는 혼자 쉬는 날, 새벽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돼지국밥을 먹으러 종종 내려갔던 기억이 납니다. 눈물 콧물 빼며 한 그릇을 뚝딱 한 뒤, 해변가를 걸으며 바닷바람을 맞으며 가슴 속 불덩이를 식히기도 하고, 또 어느 해에는, 친구와 정동진에서 해를 보겠다며 밤 기차를 타고 가 밤새 해물탕 하나를 두고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 일출을 본 뒤 해장술도 한잔 걸친 추억도 있죠.



국밥 좋아하시나요?


가끔 어머니 집에 들리면, 속상한 맘을 말하지 않아도 엄마는 제가 좋아하는 청국장 찌개나 북어를 가득 넣고 미역국을 끓여주시면 눈물과 삼키기도 했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추어탕집에 저를 데려주시기도 합니다. 좀처럼 마음이 잡히지 않을 때는, 혼자 며칠 절에 머물며 산에 오르고 1,008배를 하면서 절밥으로 좋은 기운을 가득 채운 시간도 있었어요.


그렇게 20대 내내 먹방을 찍은 탓에 저는 꽤 볼살이 통통한 상태로 20대를 보냈지만, 그 음식들의 위로 덕분인지 제 앞에서 누군가 실컷 울어도 받아줄 마음이 생겼고, 늘 언제든지 연락해도 반가운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 같아요.


누군가를 울릴 수 있는 맛이야


얼마 전 고랑이가 '양배추 수프(Soupe aux choux)'라는 음식을 저에게 소개해주었어요. 비가 며칠 내리면서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진 이곳에서 양배추와 햄, 당근, 감자 등이 들어간 이 수프는 투박해 보이지만, 온몸이 뜨끈뜨끈해지면서 계속 먹고 싶은 매력이 있는 음식이더라고요. '어때? 맛있어?'라는 고랑이의 질문에 저는 '응. 누군가를 울릴 수 있는 음식인거 같아. 나 한 국자만 더 주세요.'라고 말했더니, 고랑이가 멋쩍은 듯 웃으며 한 국자를 양껏 퍼서 그릇에 담아주더니, 더 많이 먹어도 된다며 빵을 한 조각 더 썰어주더라고요.


프랑스 남자표 양배추 수프. (soupe aux choux)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며 음식을 먹다 보니, 우리는 때가 되면 음식으로 기쁨을 나누며 위로를 하는 법을 배웁니다. 고랑이가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날 때쯤이면, 뿔오히 (la Poule au riz; 프랑스식 삼계탕? 같은 음식입니다)를 만들 좋은 닭 한 마리와 어머니가 좋아하셨을 법한 와인 한 병을 사기도 하고, 저는 아버지 기일쯤이면 막걸리에 간단한 안주를 만들면 고랑이는 작은 초 하나를 켜주기도 합니다. 스트레스받는 날이면, 한국 드라마 마니아인 고랑이는 '스트레스받는 날이니, 한국식으로 매운 음식을 해달라' 고 하기도 해서 눈물 날 정도로 매운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얼마 전 떠난 고랑이의 23년 지기 친구가 매년 공들여 구운 커다란 햄을 추억하며 손님들과 함께 나누기로 했는데, 코로나 덕에 이마저도 무산되고 집 냉장고 안에는 커다란 햄이 아직도 자리 잡고 있어서 이번 주 목요일에는 저와 둘이서라도 햄을 나누기로 합니다. 햄을 굽다가 아마도 떠난 친구를 생각하며 고랑이가 울지도 모르지만, 누군가를 울릴 음식은 그만큼 소중한 추억이고 시간이기에 이젠 저와 함께 햄을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겹겹이 쌓아가길 기대해봅니다.


프랑스식 삼계탕 뿔오히. 노오란 베샤멜소스를 양껏 어머니와 함께 찍어먹는 것을 좋아했다는 고랑이.


음식이 가진 힘은 지울 수 없는 시간과 추억의 힘이라는 것을, 위로의 힘이 있다는 것은 과연 누가 가르쳐 준 걸까요?  할머니가 만들어 준 비릿내가 나는 갱시기 조림일 수도, 어머니가 해주던 삼삼한 소고기 뭇국일 수도, 아니면, 아빠가 해주던 바싹하게 누른 부분이 있는 김치볶음밥일까요. 엄마가 가끔 눈물을 글썽이며 '외할머니 손맛이 그리워 끓이지만, 도저히 그 맛이 안 난다는' 외할머니 전용 감자 숟가락으로 껍질을 얇게 벗겨내어 들기름에 고추장을 볶아 감자 고추장 찌개 한 그릇을 저에게 내어주시던 마음을 감히 이제서야 가늠해봅니다. 


여러분을 울리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그 음식에는 누가 함께 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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