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마지막 주, 저는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랜선 모임을 돌아가면서 가져보며 시간을 보냈어요.
아기 엄마가 된 친구들은 한국시간 밤 10시 이후에나 모니터로 만날 수 있어서, 이곳 시간 자정부터 눈을 비비며 새벽 3시~4시까지 수다를 떨기도 하고, 또 어떤 친구들과는 퇴근 후 저녁을 먹은 뒤 맥주 한 잔, 와인 한 잔을 앞에 두고 보고 싶은 마음을 전하며 대화를 하기도, 또 각자 컴퓨터나 티비로 넷플릭스에 접속해 영화를 함께 보며 각자의 간식을 자랑하며 대화를 하기도 했어요.
그런 저를 지켜보는 고랑이는 온라인으로 사람들을 만나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게 '이상하다' 고 했지만, 나중에는 제 친구들과 더 신나게 한국 드라마 이야기를 하는 이는 바로 고랑이였어요. 그러면서 저에게 말하더라고요.
"네가 이렇게 사람들을 좋아하는데, 여기서 친구 하나 없이 지내면서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지 조금은 알 거 같아."
그렇게 친구들과 통화를 하고 나서, 친구들과 언니들이 너무 보고 싶고 고마워서 예전 10대, 20대 때 사진들을 꺼내서 하나씩 편집을 해서 아이패드로 편지지를 만들어 보내지 못한 작은 편지들을 써 봅니다. 남편들과 남자친구에게 보일 수 없을 정도로 창피한 사진은 꼭 하나쯤은 넣되, 아주 작은 사이즈로 줄여서 덧붙이고 늘 멀리서도 힘이 돼주어 고맙다고, 올 한해 수고했다고 손글씨로 적어서 하나씩 친구들에게 보내보았어요.
우편엽서 하나 마음대로 보낼 수 없는 코로나의 시대이지만, 그래도 왠지 올 힘든 한 해에 이런 마음 한 조각쯤은 꼭 보내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작은 디지털 엽서를 친구들에게 보낸 뒤, 고랑이의 요청으로 2020년 마지막 저녁은 닭을 폭폭 삶아서 삼계탕을 끓여 먹어 봅니다. 이곳은 유난히 여름비가 많이 와서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와 무척 잘 어울리는 메뉴였어요.
새해 첫날
둘 다 출근이 없는 새해 첫날. 아침에 부스스하게 까치집을 짓고 일어났지만, 세수를 하고, 토끼 꼬리에서 참새 꼬리까지 정도로 길어진 묶은 머리를 단정히 하고, 몇 달 전 친구가 생일선물로 보내준 예쁜 앞치마를 처음 입어봅니다. 일할 때 입던 검은색 앞치마보다 너무 예뻐서 못 입고 있다가 새해 첫날이어서 꺼내 입어보았더니 고랑이가 예쁘다고 칭찬을 잔뜩 해줍니다. 새 앞치마를 입고 모카포트로 내린 커피를 내려서 있지 더 커피가 맛있게 느껴집니다. 여전히 잠이 다 깨지 못했지만, 커피 한잔을 마시며 서로에게 새해 인사를 해봅니다.
"고랑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본 아네(Bonne année! ). 해피 뉴 이어 (Happy new year!)"
"자기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본 아네(Bonne année! ). 해피 뉴 이어 (Happy new year!)"
잠을 깰 만한 영상을 찾아보다가 함박눈이 소복이 쌓인 풍경으로 시작하는 최불암 선생님이 맛깔나는 한국음식을 소개해주는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고랑이가 가장 좋아할 만한 '만두' 편을 함께 시청하기로 합니다. 꽤 긴 영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여러 가지 설명을 덧붙이며 함께 낯선 한국의 시골 풍경, 몇 년 동안 보지 못한 눈 오는 겨울, 맛깔나는 음식들에 군침을 흘리며 시청을 했더니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 저희 둘 다 제법 배가 고파져서 느지막한 아점 준비를 해봅니다.
간단히 새송이 전, 애호박 전과 손바닥만 한 부침개를 부치며 기름 냄새를 풍겨봅니다. 어제 삼계탕 끓이고 나서 남은 닭 뼈와 말린 표고버섯과 다시마를 불린 물로 준비했던 닭 육수를 한소끔 끓이면서 떡만두국을 준비하고, 냉장고에 남아있던 총각김치와 고명을 꺼내어 새해 첫 아침 준비를 했어요.
몇 해동안, 저의 떡국 동지 고랑이는 이제 척척 김을 잘게 부수어 고명을 올릴 준비를 하고, 상을 닦고 수저를 놓은 다음 떡만두국을 올릴 넓은 그릇을 꺼내고, 고랑이가 제일 자신 있게 만드는 만두와 전을 찍어 먹을 양념장을 준비합니다. 집 앞에서 막 따온 고추를 잘게 썰고 간장에 식초를 새콤하게 추가하고, 맛술도 넣고…. 이제는 알아서 척척 제법 잘 만들에 예쁜 그릇에 옮겨 담기까지 하는 모습에 몇 해 동안 한국음식을 소개해준 보람을 느낍니다.
고랑이가 좋아하는 김치만두를 반으로 갈라서, 뜨끈한 닭 육수를 한 숟갈을 촉촉하게 먹을 수 있도록 뿌려준 뒤, 양념장을 위에 살짝 올려주며 새해 첫 끼니를 함께 해 봅니다. 매콤한 고추 향과 쫄깃한 새송이, 한입에 쏙 들어가는 애호박전을 먹으며 올해에 해야 할 일들을 이야기합니다.
맥주와 소주(고양이들)의 백신 예약부터, 고랑이 병원 예약, 세금 등등. 한창 진지한 이야기가 오가다가 갑자기 고랑이가 떡만두국 국물만 반 그릇 더 달라고 합니다. 떡국 한 그릇 먹으면 한 살을 더 먹는다고 했더니, 국물만 반 그릇 먹으면 더 나이 안 먹을 테니 딱 나이 더 안먹을 그만큼만 더 달라고 해서 저를 결국 웃기고야 맙니다. 그렇게 저는 떡만 가득, 고랑이는 커다란 그릇에 국물만 가득 퍼서 냄비를 싹싹 비우고 식사가 끝이 납니다.
예전에 한국에 갔을 때, 하루는 엄마가 얼려둔 사골 국물로 해주셨던 우윳빛깔의 떡국에 대추, 은행, 계란 고명이 얌전히 올라간 떡국이 생각이 나서 외장하드에 있는 엄마의 떡국 사진을 찾아봅니다. 한국에 한 번씩 가면, 엄마가 일 년 치 엄마 밥상을 몰아서 하루는 떡국, 또 하루는 미역국, 어묵국 등을 끓여주실 때마다 사진을 찍곤 했는데 엄마는 흔한 밥상 사진을 왜 찍냐며 부끄러워하셨거든요. 엄마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 해동 안, 타지에서 엄마 흉내는 내다보니 그래도 제법 새해 첫 밥상 티는 나는 것 같아 엄마께 보낼 새해 첫 밥상 사진을 보내봅니다.
"정갈하게 잘했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우리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