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이의 잔인한 선택
나의 취향과 정체성이 소용돌이에 들어가기 시작한 건 대학교 4학년 봄이었다.
대학교 4학년에 올라가던 겨울 방학, 가족 여행에서 이모는 내게 이런 이야기들을 했었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나서라도 여자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
"자기 일이 있어야 목소리도 내고 사는 거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은 다를 수 있다"
와 같은 어른의 조언들을 마구 해주었다.
엄마만큼이나 가깝고 내가 믿는 이모의 말은
그날 이후 내 머리 속에 가득 자리 잡고 무겁게 가라 앉았다.
이전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사는 게 제1의 목표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대학원 진학을 꿈꿨고,
교수님과 면담을 했다.
그런데 미술사학과 교수님은 내게,
"집에 미술관 있는 거 아니면 이 길은 힘들다"
라고 아주 날카롭지만 분명하게 말하셨다.
미술관에서 내가 전시를 기획하고 작품을 들여오고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내 꿈은 사실은 판타지에 가까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가능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집에 미술관 있는 사람" 일 줄은 꿈에도 몰랐지.
그저 미술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고,
던지는 질문들이 재미 있어서 사람들의 공감을 불어일으키는
그런 능력의 사람이면 된다고 생각했었지.
나는 꽤나 재미있는 질문들을 던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더 그런 사람이고 싶었고,
그런 능력을 키우면 멋진 큐레이터가 되리라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큐레이터의 길도, 교수의 길도
기약 없는 인풋만 가득하고
아웃풋이 언제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막막함을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 정서적 여유가 있을 때
펼쳐질 수 있다는 건 전혀 몰랐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을 깨달았다고 해도, 좌절하거나 낙심하지는 않았다.
그럼 나는 잠시, 내 경제적 기반을 쌓고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는 일을
먼저 하고 난 다음, 준비가 되었을 그때,
늘 품었던 애정을 쏟아 내어 더 다채로운 이야기를 풀어내는
큐레이터 내지는 학자가 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모르겠으나,
"하고 싶은 일, 하면 되지! 다만 지금 당장이 아닐 뿐이야!" 라는 마음으로
곧바로 훌훌 털어내고는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대학원 진학이라는 선택지를 지우고 나니,
인문사회계열의 대학교 4학년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그리 많지는 않았다.
0. 대학원
1. 취업
2. 행정고시
3. 언론고시
4. 로스쿨
어차피 돈 벌고 사회적으로 자리 먼저 잡은 다음에,
결국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려고 했던 거니까
어떤 진로를 선택하든 나에게 대단히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뭐가 되었든, 일을 시작하고 자리를 잡고난 뒤에
학예사 시험도 다시 보고 그림도 배우고 하자 - 라는 꽤 가벼운 생각이었다.
여기서부터 내 안에 해결되지 않는 카오스; 소용돌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별 고민 없이 리트(Leet;로스쿨 입시를 위한 시험) 문제집을 한 권 샀고,
두어달 문제를 풀어보다 여름 방학, 시험을 치고는
정신 없이 입시 시절을 지나 로스쿨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렇게 4줄의 글로 끝날 정도로 별 생각 없이 들어간 로스쿨 생활이
적성에 맞을리도, 즐거웠을 리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