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현실에 치이지 않고 사랑하는 법 같은 게 있나요?
가족이 되기로(?),
같이 살기로(?),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 주기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뒤로도 시간이 꽤 흘렀다.
우리는 연애 초반부터 진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눴고,
가족이 되고 싶다는 확신을 서로에게 꽤나 일찍 심어줬으며,
그렇기에 결혼 준비라는 말이 무색하게끔
결혼에 대한 생각을 오래 해왔다.
친구들은 결혼 준비를 시작한다고 하면 일응,
식장을 예약하고, 상견례를 하고, 스드메를 알아보고,
신혼집을 알아보고, 전세자금 대출을 알아보는 등 일련의 활동을 시작한 거라 생각하던데.
그런 것들도 포함이겠지만
그보다는 하나가 되고 가족이 되려는 마음가짐부터
준비를 해나가기 시작한 것 같다.
우리는 점점 더 서로를 많이 용서하고, 용납하고,
서로를 위한 마음의 방을 내어주고, 기다려주고,
서로를 닮아가고 있다.
매일 밤 자기 전 서로 돌아가며 기도를 하고,
금요일 저녁 종종 함께 예배를 드리고,
고민이 있으면 달래주고 기도해주는 우리가
나는 이런게, 우리의 결혼 준비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아무래도 사람들은 식장, 상견례, 신혼집 이런 것들이 궁금한가보다.
덩달아 내 마음도 조급해진다.
결혼을 하려면 식장은 1년도 전에 잡아야 한다는데,
유명한 사진작가는 1년 반 전부터 대기를 걸어야 한다는데,
계획형인 나에게 형식적 의미의 결혼식 준비는
설레면서도 부담이 되어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긍정적인 미래를 그리며 함께 성장하던 우리가,
점점 더 느려보이고 요원해보이기 시작했다.
이런식으로 해서는, 내년 아니면 그 후년이라도
신혼집 전세자금 일부도 마련이 힘들겠는데,
겨우 모아도 신혼집 자금만 겨우 모으겠는데,
그 안은 그럼 뭐로 채워? 신혼 여행은 안 가?
아니 사진, 영상까지 다 하나 하나 돈이 이렇게 들어?
고급 예식장은 커녕 그냥 식장도 부담스러운데,
그냥 결혼식이고 뭐고 다 하지 말고 식사나 하고 끝내?
서울 중심부에 전세 신혼집은 무슨
그냥 풀옵션 신축 오피스텔에 월세 알아봐?
아니 월세는 또 왜 이렇게 비싸?
...
사람들이 말하는 결혼식 준비가 내 머리속에 들어온 이후부터,
나는 조급함에 잠식당하기 시작했다.
같이 책을 읽고, 돈 공부를 하고,
재정을 다루는 훈련을 하고, 기도를 하며 성장해나간다고 생각했던
우리가,
한없이 어리고,
부족하고,
모자라게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는 기약이 없는데...'
'오빠 회사 동기들은 말도 안 되게 다 부자인 것 같던데..'
'우리 엄마는 내가 이 정도는 살기를 바랄텐데...'
.. 내가 지어낸 생각들이 나를 괴롭히고,
우리의 결혼을 향한 길 정중앙을 떡 하니 가로막고 앉았다.
너무도 소중한 "우리"를 이렇게 느낀다는 것 자체가 또 나를 괴롭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