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이 오고야 말았다..!!!
오늘은 내 생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숫자들로 구성된 예쁜 여름 날이었다.
다만 비가 오고 다만 추적거리지만,
내가 태어났을 때는 비가 그치고 햇살이 비췄다는 아빠의 일기처럼
마음만은 햇빛 가득한 날이었다.
아빠는 29년 전 오늘 세상에 나와줘서 고맙다는 따뜻한 문자로 아침을 축하해주었고,
엄마는 직접 끓인 황태미역국으로 출근 전 내 속을 든든히 채워주었다.
웬일인지 퇴사한 동료 직원 분이 내 생일을 축하해주시며 꽃다발을 선물해주셨고,
일은 뭐 언제나처럼 하기 싫었지만 그래도 나름 잘 흘러간 하루였다.
몇 주전부터 기대했던 호텔 뷔페를 가기 위해 서둘러 회사를 나섰고,
비록 비가 와서 택시를 타도 되었지만 차를 안 가져 나온 김에
대중교통을 타며 비용을 아끼자! 생각했다.
먼저 도착한 호텔에서는 좋은 향기가 반겨주었고,
잠시 당신을 기다리며 샴페인을 먼저 마시고 있다보니
어느새 당신이 해바라기 한 송이를 사오며 나에게 다가왔다.
우리의 상징이자 당신의 상징과도 같은 해바라기 한 송이, 너무 귀엽고 소중했다.
한편으로는 조금 더 커~다란 꽃다발을 받고 싶어했다는 걸 알텐데 싶었지만
요새 워낙 바쁘고 정신 없었을 걸 알기에 그냥 고맙고 안쓰러웠다.
선물도 필요없고 갖고 싶은 것도 없다고 했던 나였기에, 아무것도 바란 게 없었지만
어느새 당신이 꺼내준 포토북을 보니 아 내가 바랬던 게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 바쁜 나날들 와중에 당신은 어느 짬을 내어 우리의 추억을 하나씩 되짚고
우리가 갔던 곳들을 되짚고, 우리의 대화, 우리의 웃음들을 이렇게 빼곡히 써왔을까.
너무 예쁜 마음이 빼곡히 채워있는 걸 보고 오늘 하루의 피로가 모두 녹아버렸다.
그리고는 당신은 나와 함께 루프탑 카페에 가고 싶다며, 걸음을 재촉했다.
비가 오는데 무슨 루프탑? 이라고 물었지만, 비가 와도 경치를 잘 볼 수 있는 곳이라며
해방촌 루프탑에 가자고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택시에서 내린 곳은 대체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는 곳이었고,
어둡고 가파른 골목을 계속해서 올라가는 당신 뒤에서
나는 장난으로 내 장기를 내다 팔려는 속셈이라면
나 건강하지 않으니 다시 생각하는 게 좋을거야-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렇게 도착한 한 건물의 꼭대기 층에 루프탑 카페가 있다기에
아무런 생각도 의심도 없이 당신을 따라 가던 나는,
꼭대기 마지막 층에 다다라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는 당신의 뒷모습을 보고
이게 다 무슨 일이지? 하는 생각에 모든 이성적 사고가 멈추어 버렸다.
문이 열린 곳엔, 언제부터 어떻게 했을지 모를 온갖 예쁘고 소중한 것들이
가득 꾸며져 있었고, 나를 가운데에 앉힌 당신은 A4 2장에 빼곡히 써온 편지를
조심스럽게 차근차근 읽어주기 시작했고,
그때 배경에는 우리가 좋아하는 스티비 원더의 노래가 흘러 나오고 있었고,
당신은 어느새 내가 예쁘다고 했던 반지를 꺼내어 무릎을 꿇었다.
나는 당신이 편지를 읽어주는 내내,
너무 놀랍고 감격스러워 그저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리는 것 밖에는,
더 예쁘고 멋진 모습으로 화답하지 못했다.
당신이 나를 선택해주어 고마웠고,
당신이 평생 내 옆에 있고 싶다는 이야기가 너무도 진심인 그 마음이
그 공간의 공기를 전부 감싸는 것 같았다.
언제 그 모든 짐을 이고 지고 와서
이 공간을 혼자 꾸미고, 나를 위한 것들을 준비했을까
그 마음은 오늘만의 것이 아니었다.
나를 위해, 나를 만나기 위해,
나를 위로하기 위해, 나를 지켜주기 위해,
무거운 짐도 이고 지고 기꺼이 나에게 품과 시간을 내어준
당신은 지금껏 내내 나에게 그 마음을 주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갚아야 할까,
당신을 위해 더 지혜롭고 넓은 사람이 되고 싶다.
당신을 도와주는 아내가 되고 싶다.
당신이 쉴 수 있는 집이 되어주고 싶다.
불안하고 미성숙한 나를 용납해주고
기다려주고 용서하며 이끌어준 당신의 손에
내 남은 생을 건네 주며
내 작은 손에 당신의 남은 생을 건네 받으며
우리 그렇게 같은 곳을 보고 걸어가기로 해.
사랑, 열심히 해보자!!!
2024. 7. 16. 비오는 나의 스물 아홉번 째 생일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