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바오 11. 구겐하임 미술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어떤 유럽의 도시들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심오한 변화를 불러왔다."
인간은 언제나 인간을 필요로 한다.
특히 위기가 닥쳤을 땐 더욱더 그러하다. 아플 땐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고, 망할 처지가 되면 돈이 있는 누군가가 필요해지기도 한다. 혼자서 다 잘 헤쳐나가면 좋으련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도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인간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그 집단들이 모여 만들어진 도시 역시 위기에 빠졌을 때 그것에서 벗어나는 일에 기꺼이 뛰어들어 변화를 주도해 줄
인간이 필요하다
chapter 11.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했던 항구공업도시 빌바오는 1970년대 이후 철강 자원의 고갈로 중공업이 위축되면서 실업자의 증가로 도시 전체가 위기에 처한다.
그렇게 1980년대부터 도시 재생을 위한 장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서 미술관 건축을 결심, 6개월 만에 바스크 행정부와 구겐하임 재단은 도시의 마지막 희망과도 같은 구겐하임 미술관의 위치를 정하고 프로젝트를 이끌 건축가를 선택한다.
빌바오의 선택을 받은 건축가는
이미 독특한 디자인 철학으로
현대 건축사에 뛰어난 업적을 남기고 있었던
프랭크 게리 Frank Gehry였다
미술관 입구에 도착했는데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건 평생 처음이었다. 숨겨진 건축적 판타지가 입구 반대편에서 비밀스럽게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미술관에 들어가는 대신 미술관 주변을 걷는 데 할애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그 숨 막히는 방황 속에서 잠시 멈춰서 바라본 구겐하임의 전경은 영화 트랜스포머처럼 어딘가 계속 꿈틀꿈틀 움직이며 과감한 변신을 시도할 것만 같았다.
마치 이 도시 스스로가 여전히 건재함을
온몸으로 포효하고 있는 것 같았다
죽어가는 도시에 파격적인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게리는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건축가들 중 한 명이다.
그는 50년간 약 100여 개의 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의 건축가로 선정된 것은 무려 그의 나이 62세 때의 일이다. 93년에 공사에 들어간 미술관은 완공까지 4년이라는 길고도 묵묵한 시간들을 견뎌냈고 마침내 빌바오를 상징하는 특징적인 건물로 이름이 오르내리게 됐다.
사람들이 도시를 찾을
하나의 이유를 만들어준 것이다
게리는 구겐하임 미술관의 겉면을 총 3만 3천 개의 티타늄 패널로 만들었다. 그 제작 방식은 당시 패션 표현 기법 중 하나인 퀼트(Quilt, 1970~1980년대)에서 착안했다.
그가 이처럼 표면을 번쩍이는 재료로 만든 것은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물고기의 비늘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상당수 그의 작품들이 이처럼 번쩍이는 티타늄 재질의 마감으로 이루어졌다.
"게리와 그의 팀원들은 수개월동안 가장 최적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 두께별, 무게별, 질감별로 각각의 티타늄 패널들을 설치하고 실험했다."
독특한 디자인만큼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 완성된 미술관은 도시에는 경제적 발전을, 게리에게는 현대 건축의 정상으로 도약하는 것을 의미했으니 양쪽은 어느 정도의 윈윈을 성립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의 미술관 건축 디자인의 출발이 항구 도시의 새로운 부흥과 같은 도전적 과제이든 유년시절의 작은 놀잇감에서 찾고 싶었던 자신의 본질이든 그 두 가지를 모두 얻은 듯 해보이니 말이다.
어쩐지 항구 공업 도시로서 성공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었던 빌바오와 해양 생명체의 신비함에 매료된 어느 천재 건축가와의 만남은
가히 필연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네르비온 강물을 품은 미술관을 건너편 산책로에서 바라봤다. 강물의 물결마저 티타늄의 퀼팅 라인과 결을 함께 하는 듯했다. 누군가는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그의 건축 인생에 대미를 장식한 걸작에 뜨거운 박수를 치고 있을 것이다. 혹은 부럽게도 저 광경이 그저 집 앞 공원처럼 익숙하다던지.
빌바오에게 게리는
도시를 살려준 의인이자
그들의 정체성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참조 <Visual guide to the Guggenheim Museum Bilb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