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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 Oct 30. 2022

발리 카드 복제 사건이 내게로 온 날

너는 내게 무슨 의미일까

발리에 온 지 일주일 만에 환전한 돈을 다 쓰고 ATM에서 돈을 뽑아 쓰자마자 카드 복제 사건이 일어났다. 일주일을 지내고 맘에 들었던 게스트 하우스에 옮긴 후 60만 원을 결제하려고 하는데 카드가 안 되는 것이다. 체크카드에 돈이 하나도 없었다.심장이 벌벌 떨렸다. 마피아들은 내 체크카드 비밀번호를 알아내 복제한 카드로 16만원씩 몇십번을 인출해갔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신용카드와 안 썼던 체크카드로 다행히 돈을 쓸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은행 측에서 요구하는 자료들을 잘 제출하면 은행 측에서 들어놓은 보험을 통해 돈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마음이 아주 많이 쪼그라들었고 여기에 온 이유와 반대편에 놓였다. 아이처럼 놀기 위해서는 책임질 일 투성이었다. 나는 발리은행까지 가서 돈이 빠져나간 ATM 위치를 찾아야 했고, 그 시간 내가 ATM을 쓰지 않은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게스트 하우스 CCTV를 돌려보아야 했다. 발리 덴파사르 은행에 가서 경찰들로부터 사고 접수증도 받아야 했다. 그리고 몇몇 서류들을 더 챙겨 보냈다. 이럴 땐 인터넷 커뮤니티가 참 도움이 되었다. 서프 엑스라는 서핑 커뮤니티에 발리 카드 복제 사건 글을 검색해보니 비슷한 경우도 많았고, 내가 쓴 글에 답변도 많은 위로가 되었다. 그중 나랑 같은 날에 똑같이 복제 사건을 겪은 은행원인 서퍼의 은행 측으로 돌려받을 테니 걱정 말라는 답변은 큰 안심이 되었다.


이렇게 큰돈이 툭 없어지는데 내가 아껴 써서 무얼 하나 싶기도 했다. 자료를 정리하다가 마음이 너무 가난해서 들고 있는 신용카드로 맛있는 걸 먹으러 갔다. 그냥 맛있는 거 말고 비싸고 좋은 음식을 한 끼 든든이 먹었다. 해산물이 가득 든 파스타를 먹었다.


몇 주 후 나는 잃어버린 돈도 찾았고, 현금이 부족해 만든 마이너스 통장으로 돈이 두 배가  되어버렸다. 아끼는 여행 말고 필요한 걸 하는 여행을 하기로 했다. 소박한 삶도 좋지만 귀하고 소중한 물건을 사는 것, 건강한 음식을 제때 적당히 먹는 것이 항상 내 삶을 순환시켰다. 싸게 사서 자주 사러 나가야 하는 것, 쉽게 여기는 물건에 대한 마음가짐, 저렴한 음식을 많이 먹는 것은 난 좀 싫었다. 꼭 그런 남자 친구들은 나도 함부로 대했다.


카드 복제 사건이 내게 온 것도 지금은 큰 행운으로 생각한다. 나는 발리에 모인 각국의 음식들과 옷들을 경험했고, 외국문화에 대해 다양함에 대해 혀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돈에 한정된 것이 아닌 그날그날 내 마음의 끌림과 필요함에 따른 쓰임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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