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하 Oct 30. 2022

선택적 고독, 완벽한 하루 1.

beautiful after silence.


발리로 아이가 되기 위해 떠날 때에는, 자연과 나만 존재하고 싶었다. 외부 관계로부터 완벽하게 단절된 여행을 먼저 하고 싶었다. 외로움이 수동적 감정이라면 고독은 능동적 선택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나는 많이 고독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아이가 되려고 마음을 먹었기에 서핑을 배우거나 여행을 할 때, 제한을 걸고 가르치려 드는 사람들을 단 한 사람도 허용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정도 적당히 꾸려진 안전한 문명 안에서 자연과 나만 존재했으면 했다. 그래서 고독을 위한 디테일한 설정도 정해  떠났다.



1. 한국인을 피할 것. 한국인은 1살만 많아도 꼰대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 생각했다.

2. 로컬 서퍼에게 배울 것, 최대한 말이 적고 나를 기다려주는 서퍼’아욕’에게 배울 것.

3. 사람이 아닌 자연과 나를 믿을 것.

4. 마음이 회복하기 전 까지는 인스타그램으로 내가 발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을 것.

5. 아침엔 아쉬탕가 마이솔 클래스를, 오후엔 쉼을, 저녁엔 선셋 서핑을 매일 갈 것.

6. 요가 후에는 책을 읽고, 서핑 후엔 깊은 잠을 잘 것. 몸과 마음과만 관계하기.



처음 동생과 발리를 왔었을 때에도 막 파혼을 했고 요가원에서 교정이랍시고 자꾸 몸의 일부분만 고쳐 쓰려는 딱딱함이 싫어서 로컬 서퍼를 찾아다녔었다. 비록 3일 수업이었지만. 거리를 걸으며 로컬 서핑 스쿨에 문을 두들겨 봤지만 다 잠겨있었다. 그러다 숙소 프리 호텔로 돌아오는 데, 바로 옆에 ‘Ayok surf&stay’가 보였다. 이렇게 코 앞에 두고서. 들어가니 건장한 아저씨가 나왔다. 영어를 잘 못하는 듯하셨고 아들을 불렀다. 아들이 ‘Ayok’이었다.


아욕의 강습은 말로 전할 수 있다. 아주 단순하다. ‘속도가 느려지면 앞으로 내려가고, 속도가 빨라지면 옆으로 가’

내가 사이드 라이딩을 하고 싶다니 바로 미드 랭스 하드보드를 주었다.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곳으로 바로가’라는 말이 어디선가 들렸다. 그동안 너무 많은 단계를 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짧고 가벼운 보드로 바꾸니 사이드 라이딩이 되었다. 요리조리 움직였다. 물론 자세는 엉성했다.


아욕은 큰 파도를 무서워하는 내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나를 구해 줄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이 제일 컸겠지만 말이다. 미간을 찌푸리고 파도를 관찰하는 내게  ‘ 은하 바람을 느껴봐 ‘라고 한마디 했다. 자기가 그런 말 한 줄도 까먹었을 테지만.


아욕과의 수업을 10번 정도 들은 후 혼자 서핑을 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바투 볼롱은 내게 친숙한 바다가 되어있었다.

수업이 끝날 때쯤 공유하는 주방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은 나는 돈을 좀 더 써서 개인 주방이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옮겼다. 세 그루의 나무 사이에 놓인 방갈로였다. 나무와 나, 가끔 오는 고양이 레인보우만이 함께했던 곳이었다.


해가 뜨고 지는 걸 보며 해의 시간을 닮아갔다. 달이 뜨고 지는 걸 매일 보며 차오르고 비워지는 것에 밤마다 생각했다. 매일 밤 속삭이는 나뭇잎 소리들이 무서웠지만 몇십 년 혹은 백 년을 살았을지도 모를 이 커다란 나무 안에 있으면서 아욕과 함께 서핑을 하듯 발리라는 곳이 내게 친숙한 곳이 되기 시작했다. 다 알면서 침묵하는 나무와 함께하는 것은 온전한 수용 안에 있는 기분이었다. 화장실에서 뱀이 나오기도 한 경험을 쓰면 분위기를 망칠까. 그래도 좋았다.


내가 먹고 싶을 때 먹고 잠을 자고 싶을 때 자고 빛과 바람이 쉼 없이 흐르는 곳에 몸을 뉘인다는 것은 황홀한 행복이었다. 좋아하는 식재료를 사 와 어설프지만 하나하나 정성들여 손질하고 굽고 차려내는 집중의 시간은 내가 내게 보내는 사랑의 시간이었다. 손끝부터 발끝부터 모든 감각이 살아났다. 감각이 다 살아나니 모든 것이 수용되었다. 요가나 서핑 후에도 그런 기분인데, 선택적 고독 안에서는 그런 기분을 24시간 유지하는 것과 같다. 글이 쓰고 싶어졌다. 영어로 요가를 가르쳐보고 싶었다. 아니, 글을 쓰기 시작하고 있었다. 영어로 된 요가 서적을 읽고 눈감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린아이일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도란도란하는 얘기를 들으며 낮잠을 자고 일어나 노란 방안에 혼자 눈을 떴던 달콤함도 종종 생각이 났다. 낮잡을 자고 일어나 몸이 이끄는 대로 인형 놀이를 하거나 뛰어나가 지는 해를 보던 어린 은하가 생각났다. 머리가 아닌 몸과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력을 가지기 시작한 내가 있었다. 파혼  만들었던 인스타 그램 아이디 ‘beautiful after silence’ 다시 한번  마음에 들었다. 온전한 나를 만났고 자연 안의 고독의 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되었다.

이전 06화 발리 카드 복제 사건이 내게로 온 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