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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 Oct 24. 2022

선택적 고독, 완벽한 하루 2.

완벽함보다 충만함이 흐르는 발리

내가 설정한 ‘고독’, 그 스트레스 청정지역에서  마주하기 어려웠던 것들을 더 확연히 보기도 했다. 나의 고독은 위로가 두려움이 많이 섞여있었다.


예를 들면 외로운 마음에  들지도 않는 남자가 말을 걸어오면 대화를 계속 이어가는 나. 무슨 일 일어나면 도와 달라고 하려고 게스트하우스 주인과 직원들에게 괜히 친절한 나.

작은 돈에 절절매다가 우울함에 쇼핑을 해버리는 나. 스쿠터 탈 때 앞에 놓인 길에 대한 집중보다 옆에 있는 위험요소들에 더 집중하는 나, 예를 들면 지나가는 차와 부딪히면 얼마나 아플까, 저 길에 움푹 파인 웅덩이 때문에 넘어지지 않을까 와 같은 것.(그런 것들을 안전하게 지나가려면 더 앞을 보려 하고 더 빠르게 속력을 내서 지나가야 넘어지지 않는다.) 서핑할 때 ‘파도 타는 즐거움’보다 ‘파도에 말리면 어떡하지’ 두려움에 더 민감한 나.


만약 이 시기에 주변에 깐깐하고 짜증 내는 사람이 많았다면 내 외로움과 두려움을 끝까지 바라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나도 짜증내고 불평하면 조금씩 해소가 되니까 말이다. 그런데 너무나도 너그러운 발리 사람들에 둘러싸인 환경에서는 그 외로움과 두려움을 피할 곳도 없었고, 해소할 대상도 없었다. 짜증내면 받아주고 힘들어하면 옆에서 지켜봐 준다. 발리 사람들은 늘 바라보고 기다려주다 도움이 필요하면 흔쾌히 도와준다.


와룽(발리 식당/발리 pub)에서 이상한 외국 남자와의 대화를 마치고 와룽에 멍하니 앉아있으면 “은하 왜 계속 대화했어? 정말 니 스타일이야? “라고 물어봐 준 저스틴, 이 옷 저 옷 다 입어봐도 늘 웃고 있던 옷가게 직원, 내 기분이 좋아 괜히 친절할 때도 있고 아끼는 꿀이 없어졌다고 먹을 걸로 치사하게 짜증 낼 때가 있어도 미소로 다 응대해줘서 나를 반성하게 만든 게스트하우스 스텝 와얀, 아기를 포함한 3명의 가족이 탄 스쿠터를 뒤에서 들이받았는데도 넘어진 나를 일으켜주며 내 스쿠터 시동까지 다시 걸어주던 세 가족의 아빠, 큰 파도 앞에서 망설이는 내게 한 번도 소리지르지거나 재촉하지 않은 우리 서핑 선생님 아욕이 스쳐 지나간다.


 다들 투명해서 내 생각과 마음이 앞에 있는 발리 사람들을 통해 저 너머로 흘러 넘어갔다. 비난받지 않고 수용된 기분이었다. 이 발리 사람들 덕분에 나의 마음 곳곳을 끝까지 잘 읽을 수 있었다. 저 남자는 못생겨서 싫다, 미치도록 배고프다, 옷으로 욕망을 해소하고 싶다, 스쿠터를 박아서 너무 미안하고 네가 화낼까 엄청 겁먹었었어’라는 솔직함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외모를 보면 안 돼,  배고픔은 부끄러운 것이야, 욕망하면 안 돼, 쫀 거 티 나면 안 돼’와 같은 제약들이 사라졌다. 처음엔 외로움과 두려움에 점철되어 있던 고독에서 고독만 온전히 남기 시작했다. 내 마음의 소리를 비난하지 않고 다 들어주게 되었다. 발리 사람들은 꼭 엄마 같았다. 우리 엄마는 조금만 잘못해도 ‘털 팔이’라며 나를 혼냈는데 발리 사람들은 괜찮다고 했다. ‘그럴 수 있다’고  늘 말해주었다. 고독하고도 완벽하려 했던 하루는 그렇게 발리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으며 충만해졌다.

발리에 오기 전 건강한 마음으로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고  뒤에 오는 편안한 마음을 누려야지 했는데 발리에 있으면서 이미  성공을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말하고 싶을  말하고 침묵하고 싶을  침묵한다. 춤추고 싶을  춤추고 멈추고 싶을  멈출  있다.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명확해서 다른 의견도 흘려보낼  있다.


나를 안으로도 밖으로도 만나 참으로 편안하다. 나약함을 말할 용기도 있고 하고 싶은  조금씩 해내   있는 힘도 있다. 사회적으로 해야 하는 ,  것이 아닌 탐나는 일에 가끔 에너지를 쓰긴 하지만 이내   마음이 지속적으로 향하는 일에 집중할  있다. 감정의 수용은 이렇게 정서적 안정감을 넘어 효용성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제 고독한 시간을 길게 두지 않아도 나를 만날  있다. 잠시 눈을 감거나, 바람을 느끼고, 호흡을 하면 발리에서 모든 경험과 감각들이 깨워 놓은 몸과 마음을 만날  있다. 발리 이후의 삶은 여전히 완벽보다 충만함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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