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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 Jul 22. 2023

욕망의 진화

버킷리스트

뭘 할까.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자리를 파하기 전에 종종 상대에게 묻는 습관이 있다. 이제 집에 가면 뭐 하실 거냐고 말이다. 집에 가면 애들 밥 챙겨주고 씻고 뭐 그래야죠.라는 뻔한 대답을 하면, 재차 묻는다. '뭐 재밌는 건 없어요'라고 말이다. 내 경험으로는 이렇게까지 물었을 때, 상대가 요즘 자기가 꽂힌 찐 아이템을 말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예를 들어, 뜨개질을 한다든지, 와인 한 잔이 그렇게 좋다든지, 어떤 드라마가 참 재미있다고 살짝 흥분된 어조로 말하는 것이다.


남들이 갖는 걸 경쟁적으로 탐했었다.

방학이 되면 방콕이나 일본으로 일주일 정도는 여행해야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안도했다. 예쁜 새 옷을 사서 입고 나가면 패션에 관심 두는 감각적인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했다. 아이패드를 살 것이냐, 갤럭시 탭을 살 것이냐, 엘지 노트북을 살 것인지 고민하면서 변화하는 시대에 잘 적응해 사는 현대유목민이라고 여겼다. 새로 출시된 틴트, 메이크업 베이스를 장바구니에 담으면서 스트레스받을 때면 충동 소비를 하곤 했다. 사고 지르고 또 쟁이면서도 '마음이 허하다' 며 푸념을 늘어놓았는데, 쓰면서 보니 참 허탈해진다. 남들이 다하는 걸 나도 못하면, 행복에 도달하지 못한 거라고 여겼나 보다. 한참을 그런 것에 기준을 맞추고 살았다.


이유를 알았다.

남들이 어떻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즐거워하는지 참 궁금하면서도, 막상 들어보면 재미없었다. 내가 사실 원한 답은, 내가 찾는 재미는 거기에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내일 내가 뭘 하고 싶은 지, 충분한 고민이 없었고, 마주할 용기가 안 났고, 따라서 계획도 없던 시절이었다. 오히려 난 이런 걸 남에게 물으면서 궁금하지도 않은 대답을 들으며 더 공허해졌던 것이다. 사실, 내가 하려는 욕망이 가득한 것이 있는데, 그걸 내가 하고 있지는 못하면서, 어떤 내 주위의 상대가 그걸 하고 있길 바라면서 묻는 질문이었다. 집에 가면 애들 다 재워놓고, 읽던 책을 펴서 밑줄 그은 문장을 메모해요. 얼마나 예쁜 수첩을 샀는지 몰라요. 이런 대답을 하는 사람이라면, 내 눈이 초롱초롱해지면서, 잠깐만 앉아봐요. 좀 더 얘기해 봐요. 그래서요. 했을 거다.   


지금 당장 원하는 것은 이렇다.

소설책을 공부하듯 밑줄 그으며 읽고 싶다. 그것에 대해 쓰고 싶다. 쓰고 난 후, 가벼운 산책을 하고 동네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다. 블로그 브런치 인스타그램이 잘 관리되면 좋겠다. 눈만 뜨면 삼십 분 내로 나가서 새로운 장소에 가서 탐색하고 싶다. 단, 사람이 적은 조용한 곳에서. 자연이 있는 한적한 곳도 좋지만 집이 더 좋다. 계속 쓰고 싶다. 읽은 걸 분석하고 싶다. 메모하면서. 나는 정말 메모광이 되고 싶은데, 그렇게 많이 메모하지 않는 나를 보면서, 더 메모라는 단어에 집착하는데 그런 내가 좋다. 모두 글쓰기가 만든 욕망이다.


자신은 기차의 지붕 위에서 타고 가는 것이 버킷리스트였는데, 막상 인도에 와서 기차의 마지막 칸을 타 열악한 환경에서 하룻밤 지내보니, 인도 열차 1등석에 앉는 것이 버킷리스트가 되더라고 말했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의 기안 84가 한 말이다. 버킷리스트는 눈앞에서 바뀔 수 있다. 지금 내 눈앞에는 글쓰기. 그게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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