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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 Jul 23. 2023

뭐라도 써 둡니다

한 두 단락

독서감상문 어떻게 써요.

사람들이 내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다. 가 하는 대답은 뻔하다. 상 깊은 장면을 골라보고, 그 장면이 왜 인상 깊었는지 써봐요. 이렇게 말하면 상대는 일단은 '오오' 하면서 그런 방법으로 써 봐야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정작 표정에서 본인의 감탄사와는 다른,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듯하다. '그걸 누가 모릅니까. 그 부분이 왜 좋다고 느끼는지, 당최 뭐라고 쓸지를 모르겠다고요. 그 많은 종이 여백을 '그 장면이 참 좋았다'로 끝낼 순 없잖아요.' 남들이 다 비슷하게 좋아하는 명장면에서, 나만의 느낌이 녹아나는 감상평을 쓰고 싶은데, 번뜩 안 떠오르니, 그 지점을 어렵게 여기고, 결국 글쓰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고야 마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

어떤 책의 독후록을 남기려고 하면, 거룩한 부담감이 덮친다. 다만, 고칠수록 좋아진다는 뻔한 말에 대해, 실제로 고칠수록 좋아진 경험을 많이 해봐서 그 말이 찐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이,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과 내가 다른 지점이라고 여겨진다.  많이 고쳐야 좋아지는 걸 알기에, 한글 파일을 열어두고, 빨리 아무 말이나 내뱉어 한 두 단락정도 써 둔 뒤에,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고 다음날 또 고치고 저녁에 또 고치고, 자면서 또 생각나서 다시 고치고 그게 다다. 고칠 문장이 있어야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며 앉게 되므로, 아무 말 대잔치인 그 두어 단락이 있어야 어떻게든 진행이 된다. 그래서 아무 말 대잔치를 자주 남겨두는 편이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

풍경화를 잘 그리겠다는 말이 아니다. 만화 같은 느낌으로 종이조각에 쓱쓱 그렸는데 전달하려는 말은 담기되, 그림을 아기자기하게 그리고 싶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학교 선생님이 칠판에 판서하면서 아이들에게 이해를 돕기 위해서, 간단히 남자와 여자를 그려, 이들이 이런 식으로 앉아있다면 바람이 이렇게 불었겠지를 설명하는 듯, 그런 잘 못 그리더라도 이해가능한 그림 말이다. 이왕이면 조금 귀엽게 그리고 싶다. 멜론 아니 수박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하면 바로바로 쓱 그려서 표현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원한다. 요즘은 쉽게 그리도록 도와주는 책이 많다. 아이들의 그림일기에 표현이 쉽도록 도와주는 책이 다. 나무라던지 케이크라던지, 커피잔 같은 것을 보면서 쉽게 따라 그릴 수가 있다.


그러다가 본 영상이 이기주의 스케치였다. 유튜브 콘텐츠다. 거기서 하는 말은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면 그냥 종이에 대고 끄적여보라고 권한다. 사람을 어떻게 그릴까 생각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낙서하듯이 해 보라는 말이다. 결국 쓰기도 그림도 같은 맥락이다. 일단 처음에는 그냥 한 번 해 보는 거다. 그러다가 스킬이 느는 것 아니겠는가. 오늘도 종이에 졸라맨을 그려보고, 핸드폰 메모장에는 아무 말 대잔치를 열어본다. 내일 고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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