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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 Jul 24. 2023

브런치, 내 편지를 받아주오

우표 없는 발행

첫 편지는 아빠에게 썼다.

정확히 기억난다. 용돈을 모아 어버이날이 되면, 문구점에 가서 카네이션 같은 걸 사서 드리는 게 친구들 사이에서도 좀 우쭐하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정도였던 것 같다. 명절도 아닌데 친척이나 부모님 지인으로부터 용돈을 좀 받았었나 보다. 평소보다 넉넉했던 주머니 사정이, 아빠 생일을 위한 선물을 사는 데에 마음을 부추겼다. 이건 착한 일이라는 동심도 한 몫했다.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공간으로 생각한 곳은 문구점 밖에 몰랐으므로, 동네 문구점에 가서 어떤 물건을 골라야 하나 한참을 서성이다가 머그잔을 골랐다. 그리고는 계산대 바로 옆에 진열된 예쁜 편지지를 보면서, 이걸 함께 쓰면 감동이 배가 된다고 여겼다. 어렸지만, 물질보다 마음씀이 사람을 감동하게 한다는 진리를 빨리 깨달은 것 같다. 아빠를 기분 좋게 해 드리고 싶다는 어여쁜 진심이 그 생각에 도달하게끔 만들었으리라.


그때도 문장에 집중했다.

편지를 쓰는 데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뭔가 아빠를 놀라게 할 만한, 평소에는 하지 않은 말이지만, 이 편지지에는 꼭 적을 만한 문장 말이다. 아빠가 읽었을 때, 우주에서 나만이 아빠에게 할 수 있는 말을 골랐고, 그 문장을 통해 이 편지를 더 값지도록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글로 뭔가를 써서 표현한다는 것은 타인에게 내 진심을 표현하는, 저 먼 원시시대부터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이치와도 같은,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작전은 통했다.

예상보다 울림이 컸다. 아빠가 그렇게 펑펑 우실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다. 아빠는 저녁상이 차려진 밥상에서 내 편지를 한 손에 들고, 한 손으로는 눈물을 닦으면서, 편지지에서 눈을 떼지 못하셨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젊었던 아빠의 얼굴과 표정과 아빠가 입고 있던, 흰 민소매 러닝셔츠가 생생히 기억난다. 아, 내가 을 적었더니 그걸 받은 사람이 저렇게 감동할 수 있구나. 그날의 장면은 내가 토록 글쓰기를 사랑하게 된 근원이다.

  

그 후로 편지는 계속되었다.

타 지역에 살던 사촌 언니와 이 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펜팔처럼 주고받았다. 계기는 사소했다. 타 지역에 사는 사촌 언니와 방학 때 함께 며칠을 놀고 헤어지니 아쉬웠다. 나는 오빠가 있어서 '언니'라는 대상이 항상 궁금했고 좋았다. 그리운 마음에 시작한, 손 편지를 써서 우편으로 보내는 일을 서로 끊지 않고 지속했다. 그런데 지금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다 버렸다. 놔둘 걸. 삼십년 전 편지를 찍어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 얼마나 좋았을까.  


편지지를 미리 사서 쟁였다.

우표를 처음 사서 붙여보고 편지 봉투를 넉넉히 사두게 되었다. 편지를 보낼 때마다 문방구에서 파는 작은 반지나 작은 과자를 작은 봉투에 넣어서 함께 보냈다. 봉투의 무게가 많이 나가서, 혹시나 우체부아저씨가 반송처리를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항상 들었지만,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규칙 상 어긋나지만, 오래 계속 이어지는 편지 탓에, 지역 우체부 아저씨가 아량을 베풀어 동심을 지켜주셨다고 믿는다. '우체부 아저씨 고맙습니다.'란 글귀를 봉투 겉에 큼지막하게 항상 썼다.


재밌었다.

그래서 지속할 수 있었다. 첫번 째는 보낼 때의 재미다. 예쁜 편지지를 골라 정성을 담아 쓰고 보낼 때마다 접는 방식을 달리한다. 예쁜 스티커도 평소에 챙겨 뒀다가 붙인다. 두번 째는 답장을 기다릴 때의 마음이다. 현관문을 나설 때마다 우체통을 들여다볼 때의 기대감이란. 로또 번호를 기다릴 때의 스릴이 있단 말이다. 세번 째는 편지가 왔을 때의 설렘이다. 우체통에 꽂혀 있어서 내가 직접 꺼낼 때가 제일 반갑고, 엄마가 다른 우편물과 함께 미리 꺼내서 내 책상 위에 올려둘 때, 책상 위에 놓인 편지를 봐탄성이 절로 나왔다.


여전히 편지를 쓴다.

학년 말이 되면 감사한 마음을 담아 아이 담임선생님께 손편지를 쓰고, 함께 일했던 동료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때도 선물과 함께 편지를 쓴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편지지나 축하 카드 같은 것를 여러 종류로 미리 사 두는 것은 여전하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써야겠다 싶으면, 바로 꺼내 쓰는 일에 익숙하다. 지금 브런치에 글을 써 발행하는 일도 편지를 부치는 마음과 같다. 온라인 상으로 내 글을 띄우고, 도착한 글을 읽은 구독자 님들의 라이킷과 댓글을 호시탐탐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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