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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 Aug 06. 2023

구체적인 다정함에 대해서 기록하기

지금 해 둘 일

네 앞에서

나는 어떤 재주를

부려야 하는 거니


AI 인공지능 시대에 무기는 무엇인가. 더 중요해지는 가치는 무엇일까. 인간만이 갖는 고유한 영역이란 것이 있을까.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 있을까. 인간의 감정까지 딥러닝으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을 보면서, 지금은 서툴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연출하겠구나 싶었다. 김영하의 '작별인사'에 나오는 내용처럼,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세상, 심지어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로봇이 등장하는 세상이 코 앞에 있는 것 같다.


구체적인

다정함이 살아남지 않을까


인간의 본질에 더 가까이 가려하지 않을까. 사랑과 보살핌, 다정함과 같은 것들 말이다. 흉내 내는 감정이 아닌, 진실된 인간적인 다정함을 그리워하는 시대가 올 것 같다. 라떼는 말이야,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대해주는 시대였어. 하면서 어떤 구체적인 다정함에 대해 떠올릴 것 같다. 그러면서 지금, 인간이 하는 자연스러운 감정의 행위를 구체적으로 기록해 두면, 먼 미래에 아주 잘 팔리는 글이 될 거라는 생각도 야심 차게 해 보는 바이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의 묘사는

실제 추억이 있는 인간만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출산을 하고 친정집에 내려가서 삼 주 정도 있다가,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 때, 너무 그리웠다. 친정 엄마가 직장에 출근했다가 돌아오던, 오후 3시~4시의 시간이. 내 집으로 돌아와서도 오후 3시 무렵이 되면, 친정 엄마가 퇴근하던 순간을 떠올리게 되고, 그 시간이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몇 년이 흐른 후에, 그 감정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다. 출산 후의 산후 우울증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단순하게 못박아버렸다. 그 때로부터 십 년이 지났다. 친정 엄마 집에서 십삼 일 정도 지내다가 올라왔다. 친정 엄마와 함께 있는 동안 거실에 앉아서 오후의 시간 동안 엄마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방을 닦고 빨래를 개는 모습을 본다. 내 옆에서 집안일을 하는 엄마의 모습은 어떻게 이토록 내게 안정감을 주는가. 내가 하던 일을 엄마가 해 주는 데서 오는 편안한 안락함이라고 여겼는데,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릴 때, 그것이 이토록 다시 그립고 먹먹한 감정까지 드는 걸 보면 단순한 감정이 아닌 듯 하다. 지금도 우울한 것인가. 사람이 그리운 것인가. 친정 엄마의 그리움인가. 보살핌에 대한 그리움인가. 친정 엄마와 함께 하던 오후의 시간이 또 사무치게 그립다. 그 순간이 어쩜 그리 따스한지 모르겠다. 따뜻한 온기가 나를 감싸는 것 같은 유년의 공기가 느껴졌다. 차에 올라타고 헤어지는 그 순간에 서로 눈을 마주치면 눈물이 펑하고 나올 것 같아서, 되도록 불필요한 말을 해가면서 서로의 시선을 피한다. 가슴 속에서만 눈물이 먹먹히 차올랐다. 보고 있는데도 그리운 사람이다. 차창 밖으로 내 어린 딸아이와 손을 마주 잡고서 "또 놀러와. 할미는 아쉽다. 눈물이 날 것 같애."라고 말하는 친정 엄마라는 존재는 그 무게감이 컸다. 그리고 함께 하는 그 시간이 참, 근사했다.





츤데레도

딥러닝으로 학습될까


살뜰하게 챙기는 사람을 본다. 뭉뜬 리턴즈에서 안정환 김성주 정형돈 김용만이 유럽으로 여행을 갔다. 비행기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호텔 앞에 도착을 했다. 김용만이 미리 예약한 호텔의 주소를 갖고 거리에서 그 숙소를 찾는 일이 버거워 보인다. 호텔이 아니라 게스트하우스 느낌이어서 현관 비번을 누르고 들어가야 하는데 우왕좌왕한다. 엘리베이터도 좁아 두 그룹으로 나눠서 들어가야 하고 모두 캐리어가 많다. 예약한 방에 도착해서 서로 어떤 방을 쓸지 정하는 데 안정환은 쿨하게 형들에게 양보를 하고 본인은 거실 한편에 매트하나 깔고 자겠다고 한다. 그 자리가 더 좋아 보인 김용만이 거길 차지하고 결국 방으로 들어가게 됐지만. 안정환의 살뜰함은 계속된다. 시차적응이 안 된 상태라 모두 피곤하다. 마실 물을 사러 마트로 가자고 하더니 멤버들의 식성에 맞게 누구는 계란, 누구는 과일 이러면서 투덜거리면서도 챙긴다. 츤데레다. 마트에서 오자마자 형들을 위해 요리도 한다. 뭔가를 끓여서 내놓고 먹으라고 하는데 특유의 투덜은 덤이다.



오지라퍼는

위대한 캐릭터다


자신보다 남을 배려하면서 챙겨주는 사람은 고맙다. 게다가 그 배려가 진정으로 그 사람이 좋아서 챙겨주는 것임이 느껴질 때 더 크게 와 닿는다. 형들이 좋아서 챙겨주는 것이다. 여유일 것이다. 내 것을 하고도 또는 하지 않아도 남도 챙길 수 있는 여유. 시야가 넓다고 해야 할까. 폭이 넓다고 해야 할까. 겨드랑이에 한 폭의 소매만큼 아량이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 사람을 보면 마음이 흐뭇해진다.

여유가 없는 건 왜일까. 내 시야가 좁아지고 내 것 밖에 안 보일 때와 나도 오지랖을 떨어 볼 때의 차이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 장소에 대해 그 분야에 대해 더 알고 있을 때인가. 누군가 그랬다. 뭘 하든 넘쳐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자기 것이 다 차고서도 넘쳐흐르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 그릇이 작아야 넘치는 것인가. 내 그릇이 커서 반도 못 채워져 넘칠 수 없는 것인가. 맥주잔의 거품이 흘러내리는 생각도 해 본다. 거품처럼 허풍이 흘러내리는 것 말고 폭포처럼 콸콸 흘러넘치는 사람이 이제는 보인다. 내게도 어떤 영역에서 만큼은 폭포와 같은 흘러내림이 있어 오지랖 좀 떨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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