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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 Aug 04. 2023

이 장면을 빛내줄 디테일

노트 vs 노트북

노트의

다음 장을 넘기고

노트북의 빈 문서를 여는 순간


다이어리를 즐겨 썼다. 그날의 동선을 아침부터 따라가면서 떠올리는 일을 낙서의 형태로 남겨두는 것은 오랜 습관이다. 글감이 아날로그 형태인 손글씨로 남아있다고 해서, 키보드를 앞에 두기만 하면 바로 술술 써지는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서 무엇을 쓰겠다고 했을 때, 그것만으로 한 편의 글이 완성되지도 않는다. 디지털 방식으로 문장을 만들다가, 펜을 들고 종이에 단어를 다시 쓰면서, 그 단어와 연결할 다른 에피소드를 낙서하는 아날로그 방식이 섞인다. 그 지점이 참 작가스러워서 좋아하는 순간이다.   



분명히 본 내용인데

저 순간의 대사가

바로 안 떠오를 때처럼  


어서 빨리 써 내려가라고. 재촉하는 나의 목소리와 도무지 영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멍해진 나를 동시에 느낀다. 두세 번 봤던 영화의 명장면을 캡처해 둔 이미지를 앞에 두고, 저 순간 배우가 내뱉은 대사가 무엇인지 한 음절도 생각나지 않는 상황을 마주할 때처럼, 어떤 단서도 만나지 못할 때가 있다. 지금 마주한 그 글감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이 이어진다. 나와 대화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날로그 메모와 디지털 메모라는 글감을 두고 어떤 지점을 포착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인가.  


글쓰기에 대한 쓰기는

영원히 할 수 있다


어떤 내용에 대해 자주 쓰는가. 글 쓰는 나의 행위에 대한 글을 쓰는 나를 목격한다. 지금의 글쓰기는 예전에 비해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에 대해서, 어떻게 글감을 관리하고 다시 써 나가는지에 대해서, 예전에 종종 글쓰기를 멈추게 했던 요인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일단은 글쓰기를 계속해서 해 보는 것을 하루의 루틴으로 삼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으므로 어떤 것이든 쓰고, 다듬는다. 지금 쓰고 있는 이 행위에 대해, 하는 말들이 가장 만만하다. 할 수 있는 말도 많아진다.

 


친분이 있는 어떤 소설가는 얼마 전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자동차와 충돌해서 사고가 났다. 몸이 자전거에서 튕겨져 나가 붕 떠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그 순간까지의 몇 초간을 그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119 응급차에 실려 가는 동안 육체적 고통을 호소하거나 골절을 걱정하기보다 '아, 이젠 교통사고에 대한 묘사는 잘할 자신이 있다'며 흐뭇해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글을 쓰는 일은 건강에도 썩 좋지 않고, 평균적으로 돈벌이에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성격은 말할 것도 없이 점점 이상해져 가지만 다행히 한 가지 구원이 있다. 이렇게 모든 고통과 슬픔과 사건 사고에서도 무언가를 '건질' 수가 있다. 혼자라는 느낌이 들 때, 고독이 뼛속 깊이 사무칠 때, 무언가를 상실했을 때, 고통의 감정은 내 안의 여러 생각과 감정을 미친 듯이 자극시킨다. 비관으로 무너져 내리기보다 이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어서 글로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고통은 어떤 형태로든 창작의 원천이 되어준다.  




교통사고마저도

작은 위안으로

여기는 태도


임경선 작가의 < 태도에 관하여 >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들은 이미 어마어마하게 많은 글을 써와서, 써보지 않은 영역에 대한 고통을 맛볼 때, 이제 그것도 잘 표현낼  수 있겠다는 작은 위안으로 삼나 보다. 전문 작가에 비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브런치 작가인 나는 아직 고통 말고도 쓸 것이 많다. 글로 써낸 페이지가 한참 적기 때문이다. 아직 더 표현할 일상, 기쁨, 작은 물건, 추억, 대화가 있다. 오늘만 해도 친정 엄마가 말한 연금에 대해서, 남편이랑 카톡으로 나눈 올해 우리 가정이 해야 할 아껴 씀에 대해서, 2학기 개학이 반갑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나의 오후가 무료한 까닭에 대해서, 내가 할 일을 못하게 훼방 놓는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실제로 자신의 '아픔'을 글의 소재로 쓰는 작가들을 보게 된다. 독감에 대해, 코로나 재확진에 대해, 병원에 입원한 일을 창작의 원천으로 삼아 공감을 받는 글을 보며 나의 아픔도 찬찬히 되짚어 보고 있다. 방송인 중에 모델이 직업인 한혜진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굶지 않기 위해서 나는 실제로 굶어야 했다고. 작가의 삶도 궁극적으로는 고통스럽지 않기 위해서 고통스러워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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