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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 Aug 07. 2023

브런치를 꾸준히 쓰는 이유

빅픽쳐

인생을 바꾸는 방법은 간단하다. 의사 결정력을 높이면 된다. 독서와 글쓰기다. 2년간 2시간씩 글쓰기와 독서를 해라. 매일 실천하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실천하는 비율은 0.1퍼센트도 안 될 것이고, 1주일에 한두 번 실천하는 비율은 그중 5퍼센트 정도일 것이다. 이래서 인생이 참 쉬운 것이다. 아무도 이 쉬운 것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온갖 핑계를 만들어내며 포기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역행자>

한 단락이다 


신기한 일이다. 지난 삼십 년간 독서! 글쓰기! 운동! 세 가지를 매일 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단 하루도 그 세 가지를 모두 해내며 보냈던 날이 없었을까. 저자는  중의 두 가지를 택했다. 읽은 책의 한 단락을 옮긴 뒤,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두어 단락으로 덧붙였다고 한다. 그 일을 반복했는데, 2년 정도 했다고 적혀있었다.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해 보라고 하는 문장이 적혀 있다. 그 문장을 보면서도 '그렇지, 글을 쓰는 습관이 없는 사람들에게, 직접 해 보라고 하면 하루 이틀 하다가 말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달라, 그 정도쯤이야, 스스로 세운 동기다면 5년도 더 할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



다섯 편까지는

쉬웠다


'Like it' 에는 중독성이 있다. 브런치에 글을 써 보면서 느꼈다. 이곳에 글을 올리는 일은, 매일 일정한 시간을 들여 꾸준히 써낸다, 구독자 님들이 읽어 주기도 하며 시시때때로 울려대는 라이킷과 간혹 올라오는 댓글 반응 등 나름의 성취 요소와 동기부여 자극 거리가 충분히 있어서, 흥미를 잃지 않고 지속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글을 다섯 편 정도 쓸 때까지는 말이다.



내가 해냈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너지기 십상이


꾸준함이 어렵다.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행위는 쉽지 않았다. 작더라도 하나의 행위를 정해두고 꾸준하게 지속하는 일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느껴졌다. 오히려 없던 습관을 새로 들이고 그 일을 반복하초반 며칠이 쉽다고 생각된다. 내가 루틴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만난 생각지도 못한 문제는, 며칠 만의 성취로 자신이 바뀌었다고 믿는 순간이었다. '내가 해냈어. 역시 난 마음만 먹으면 가능해'라고 자만하는 순간이 고비였던 것이다. 그때부터  반복되는 행위를 왜 계속해 나가야 하는지, 자신의 합리적인 의심과 싸워 나가야 하는 일이 거대한 돌덩이처럼 버티고 있었다.



반복하는 행위에

대한

구실을 찾으려는 것이 문제다


'그냥 하는 거지 뭐' 이런 스타일이라면 그냥 눈뜨면 하던 걸 하고, 또 하고, 또 하면 된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가 않았다. 습관이 정착되면서 이 행위가 당장 나에게 주는 이득이 무엇인가, 이 행위를 하는 데에 이러저러한 힘듦이 생기는데,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이 행위를 지속할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이 행위에 쓰는 에너지를 다른 데 쓴다면 삶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 뭐 끝이 없었다. 누가 시킨 일이라도 변명거리를 찾고, 당위성에 의문을 품기 마련인데, 이건 주체적으로 선택한 일이다 보니, 더 의심했다. 그 속에서 적당한 합의점을 잘도 찾아내는 게 함정이곤 했다. 내 일상에서 글을 쓰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백가지도 넘기 때문이다.



백 편을 채운들

뭣이 중헌디


목표가 없었다. 브런치 글을 삼십 편 또는 백 편을 써서 뭐하나. 동기 부여가 안 됐다. 그런데 글쓰기 특강을 듣다 보면 꼭 하는 말이 있었다. 일단  혹은 최소 년은 쓰고 나서 말하라고. 사람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에 지금 시점에서 미래를 예측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의 내가 미래를 미리 판단해서 생기는 억울한 일이 많을 것이기에. 그래서 판단은 유보하고 지금 뭔가를 노력해서 쌓아두라고 했다. 그럼에도 의욕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당장 현실에서 이걸 이렇게 쓴다고 쌀이 나오나, 콩이 나오나.  행위를 그만둔다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으니까 더 쉽게 그만할 수 있었다.



해 본 자

만이

터득하는 지점


좋은 점은 확실하다. 쓰면서 느껴진다. 좋은 점이. 말하려는 바가 명확해지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하는 습관. 발상 자체가 이전과 다르다. 뇌의 생산성이라고 해야 할까. 글쓰기도 예전처럼 버벅거리지 않고 무엇에 대해 쓰겠다고 생각하면 두두두둑 흘러나온다. 할 말이 넘친다는 표현이 맞겠다. 생각의 유창성이라고 해야 할까. 그 말을 정교하게 다듬는 퇴고의 과정에서도 내가 얻는 게 많다. 구성력, 비유, 이 말을 제거할지 더 넣을지 생각하는 과정에서 판단을 셀 수 없이 많이 하게 된다. 사고력이 깊어지지 않을 수가 없다.



비어 있으면서도

꽉 찬 것 같은

뿌듯함이랄까


어렵게 앉아 쓰고 난 후의 카타르시스가 매력적이다. 배아픔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집에만 있다가 그날따라 많이 움직여, 그간의 숙변을 게워낼 때가 있다. 묵혔던 응어리가 터져 나오는 느낌은 상쾌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장이 훤해지고 다시 싱싱해지는 느낌이랄까. 글을 쓰면서도 묵혀 있던 저 밑의 감정 쓰레기를 토해낼 때가 있다. 마음속이 밝아지고 다시 싱그러운 생각들이 자리 잡을 빈 공간이 생기는 것 같아 좋다. 차 있는 것이 없는데도 뿌듯해지는 느낌이랄까.


온몸으로

시범 보이는 삶


매일 씀으로써의 당장의 이득은 여기서 찾기로 했다. 아이가 나를 보고 배우는 것이다. 쓰라고 직접적인 말을 절대 내뱉지 않을 계획이고. '엄마는 저게 뭐가 렇게 좋아서 계속 뭘 쓰는 거지. 나도 한 번 써 볼까' 싶게 만드는 것이 내가 그린 큰 그림이다. 그래서 일부러 내 글을 쓰면서 소재를 아이와 관련한 것으로 잡을 때도 있다. '우리 어제 문방구 갔잖아. 거기서 보드게임 산 거, 그거 너는 왜 골랐어.' 그러면 아이가 대답한다. ', 그걸 문장으로 표현할 건데 이렇게 할까.' 하면 아이가 수정해서 이러 이렇게 말하라고 덧붙인다. 그러면서 쓱 곁에 와서 한 번 본다. 그러면 난 또 묻는다. '이때 감정이나 기분에 대해 뭐라 덧붙일 말이 있나. 보드게임을 좀 더 자세하게 묘사하고 싶은데, 거기 있던 양이 어떻게 생겼더라. 모두 몇 개야. 이게 다인가.' 이런 질문을 하면서 자세한 묘사를 유도한다.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상황을 자세하게 써야 한단다'라고 곱씹으면서.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이미 뭔가를 얻어가는 중이라고 여기면, 이 행위는 더 할 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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