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적한 후라이팬을 올리고 불을 켤 때, 휑하니 넓은 그 팬에서 나올 결과물이 예상되니 부담 가득한 돌덩이를 안고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마치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패배를 감지한 전사와도 같다. 결과물이 기대되지 않고 설렘이 없다. 설레지 않는 물건은 버리라고 한, 곤도 마리에가 한 말이 스치면서 이 후라이팬을 재활용 쓰레기더미에 버리려면 천원 딱지를 붙여야 하나 이천원 딱지를 붙여야 하나 하는 잡념이 잠시 스친다. 넓은 후라이팬을 무엇으로든 채워 양으로 승부보면 막막함이 덜 할까 해서, 썬 채소들을 대중없이 때려 넣어서 양이 넘쳤다. 볶음밥을 한다고 그 위에 밥이라도 얹으면, 그 많은 양을 입맛에 맞게 간을 하는 일은 늘 어려워서,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 앞에서 진땀이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소금을 뿌리고 간장을 넣고 굴소스를 넣어도 간이 심심해서 다시 소금, 간장, 굴소스를 무한 반복해도 맛이 나지 않을 때의 절망감이란. 이건 다시 나를 부엌에 오지 못하게 할 또 하나의 트라우마가 만들어지는 순간이라 볼 수 있다. 그렇게 내 부엌에서 실패의 경험이 쌓였다.
그런데 지름 20cm 작은 후라이팬이 날 살렸다.
하루에 세 번도 넘게 쓰는 내 20cm 팬
우연히 사뒀던 팬인데 쓰지 않다가, 쓰던 팬이 코팅이 많이 벗겨져 음식이 자꾸 타는 바람에 딴 거 없나 하고 궁여지책으로 꺼냈던 팬이었다. 크기가 작다 싶어서 재료도 적게 썼다. 양파 1/4개, 파 조금, 소분해 둔 버터 한 조각을 넣고 볶다가 햄도 볶고 밥도 볶는다. 양이 적으니 통제가 가능했다. 실패해서 버린다고해도 마음이 덜 부담스러워서 요리하는 동안 심적 부담감이 없어 해방된 기분이었다. 말 그대로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하니 요리하는 상황에 유연해지고 용기가 났다. 내겐 '실패해도 괜찮아. 막 한 번 해봐.' 라는 자유 무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제 스파게티도 쉽게 원팬으로 한다. 라면 물 보다 좀 더 물을 붓고 스파게티 면을 삶는다. 10분 삶고 물을 버리고 거기에 토마토 소스를 넣어 살짝 볶는다. 끝. 라면은 4분이지만 스파게티는 10분이라는 점이 다를 뿐 참 쉽다. 라면을 끓이는 대신, 냉장고에 남은 채소 다 때려넣고 만들어서 먹게 된다. 내겐 얼마나 사소하며 놀라운 변화인지 모른다.
20cm 팬으로 요리한 초간단 파스타 만드는 과정
음식은 이제 밖에서 오는 일이 줄었다.
냉장고에서 꺼낸다. 미리 냉장고 속 사진을 찍어두었더니 요긴하다. ‘배가 고플 때, (배민 어플 말고) 사진첩을 열자’라고 스스로 약속했다. 소파에서 뒹굴거리다가 핸드폰 사진첩에서 냉장고 사진을 보고, 빨리 먹어야 하는 채소를 눈으로 본다. 그리고 문 앞에 있는 배달 음식을 가지러 나갈 때의 그 민첩함과 정성으로 내 앙증맞은 20cm 팬을 잡기만 하면 성공이다. 팬에 물을 붓고 불을 켜고, 재료는 넣고 싶은 대로 넣기만 하면 하나의 요리가 완성된다. 싸고 건강하고 시간이 절약되면서, 마음의 죄책감이 1도 없는 일상이 쌓이니 이 팬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도 배달 어플을 켜는 대신, 이마트에서 작은 팬하나 장바구니에 담아 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