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걸 써야겠다.
아이가 학교에서 받아온 온누리 상품권 일만 원권이 한 장, 냉장고에 붙어있은 지 꽤 긴 시간이 지났다. 아이와 나는 그 상품권을 쓰러 갔다. 상품권은 아이가 학교에서 받은 것이므로 전적으로 아이 것이다. 그래서 평소 장난감을 마음대로 사지 못한 아이는 이 상품권 일만 원을 자신의 자유로 장난감을 사는 데 쓴다고 했다. 장난감을 사고 간 김에 책도 좀 사고 올 계획이었다.
문방구에 도착했다.
아이는 장난감을 고르고 나는 책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런데 책을 들춰보는 내게 아이가 옆으로 다가오면서 보여준 물건은 거대했다. 큰 초록색 박스였고 그 위에 삼센티 정도의 가격표가 붙어있었는데 자그마치 삼만 칠천 원이라고 쓰여있었다. 아이가 살 수 있는 일만 원의 세배 네 배나 하는 가격이다. 그런데 아이는 그것을 사겠단다.
왜지.
이걸 왜 사는 거지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갖은 애교를 부리면서 사면 안 되겠냐고 한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표정이다. 이 표정으로 이걸 사겠다고 하는 아이를 모른 체 하기에 마음이 약해진다. 그리고 이것은 보드게임이질 않은가. 보드게임을 할수록 두뇌회전이 되므로 다른 장난감보다 유익하다. 그런 점이 나도 그걸 산다는 것에 동의하도록 마음이 기울었다. 그래도 삼만 칠천 원에서 일만 원을 제하면 우리는 이만 칠천 원만 내면 된다고 계산했다.
예측하지 못한 일이 또 생겼다.
계산대로 갔는데 웬걸 이 문방구에서는 온누리 상품권을 취급하지 않는단다. 우리 돈으로 3만 7천 원을 다 냈다. 뭐지. 아이는 공짜로 장난감을 얻었다. 나는 낭패다. 이 무슨 평소 논리도 안 맞고 즉흥적으로 산 보드게임이란 말인가. 사고 나서 집으로 오는 길에 마음이 좀 찜찜했다. 아이와의 경제적인 부분에서 교육하는 우리 부부의 대원칙이 또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하도록 한 것이 엄마의 판단 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어 잠시 자책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집으로 오면서 아이에게 왜 그것을 골랐냐고 물었다. 아이는 그려진 양의 얼굴이 재미있는 표정이었기에 마음이 갔다고 했다. 이유는 그것뿐이다. 양의 표정. 집에 와서 보니 열여섯 마리의 양의 표정이 기막히게 다르고 익살스럽다. 나 같아도 혹 할 것 같은 디자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게임을 그날 하지 않았다. 아이는 그걸 가지고 혼자 구경하면서 놀고 보드게임의 형식으로 판을 벌이지는 않았다.
어제였다.
드디어 그 보드게임을 펼쳤다. 구성품은 목초지 4개씩 4세트, 양 열여섯 마리 4세트 그게 다다. 그리고 자신의 양이 많은 목초지를 차지할수록 이기는 게임이다. 그러나 양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규칙이 있다. 마치 체스판처럼 자신이 선 곳에서 직선으로 움직여 제일 끝 가장자리로 갈 수 있다. 중간에 자신의 양이든 상대의 양이든 서 있다면 넘어가지 못한다. 간단한 규칙만으로도 게임하는 내내 여러 가지 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나의 수도 생각하고 상대의 수도 생각해야 한다. 동시에 상대가 모르게 작전을 짜서 심리전을 펼칠 때도 있다. 게임을 거듭할수록 어떤 점이 유리한지 판단이 서고 점점 교묘해졌다. 역시 보드게임의 진가가 발휘된다.
이기면 기쁜 속내를 숨길 수 없다.
한 번은 아이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내가 깔깔깔 웃어댔더니 아이가 표정이 좋지 않았고 시묵룩해 지자 아빠가 합세했다. 아빠는 영리하다. 계속 이긴다. 수를 잘 쓴다. 나는 계속 지고 말았다. 지니까 재미가 없다. 점점 아이가 이길 때가 많아졌다. 아이가 쓴 방법은 목초지의 외딴 골목을 가로막는 방법이었다. 역시 나보다 낫다.
보드게임은 사랑이다.
보드게임을 통해 희로애락을 느꼈다. 이겨서 기뻤고 져서 화가 났고 아이의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가 사랑스러웠고 우리 가족이 다 같이 게임을 하면서 동질감을 느꼈다. 즉흥적으로 샀지만 이것은 우리가족을 하나로 묶어준 매개물이 되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