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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 Aug 23. 2023

글 쓰는 분위기

소파, 재즈, 노트북

소파에 앉은 시선에서 보이는 티브이에는 유튜브 채널이 접속된 채로 잔잔한 재즈가 소리 8 정도로 흘러나온다. 해 질 녘 런던 다리 위를 러닝 하는 채널의 사진이 티브이에 펼쳐져 있다. 나른한 음악을 배경으로 두고, 소파에 편하게 앉은 내 무릎 위로는 하얀 노트북이 올려져 있다. 이렇게 노트북에 있는 자판에 손을 얹고 있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타이핑을 하기 딱 좋은 상태가 된다. 머리에 떠다니는 생각들을 타닥타닥 쳐 내려가고 있다. 아이가 등교하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내 루틴이 되었다. 예전에는 작정하고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켜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이렇게 노트북을 그냥 켜 두고 부엌과 거실을 오가며 소파에서 토닥거리는 행위가 더 많은 글을 쓰게 다. 접근이 쉬워야 계속 써 내려갈 수 있다.


문단 글은 정확히 7월 20일 아이의 방학식 전날에 쓴 글이다. 그때는 글쓰기 루틴이 완전히 잡혔었다. 아이의 방학 기간은 월요일이 다섯 번이었다. 그동안 위와 같은 분위기는 몇 번이나 연출가능했을까. 방학은 어떤 면에서 엄마들에게 참 잔인한 시즌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저 분위기를 한 번도 만들어 낼 수 없었으니까.



한 달여 만에 아이가 개학을 해서 등교했다. 온전히 혼자일 수 있는 다섯 시간이 주어진다. 이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서 어젯밤부터 이유 없이 실실 웃음이 났다. 그리고 어젯밤 일부러 아무 계획을 짜지 않았다. 즉흥적으로 마음 가는 대로 해보고 싶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서 지인과의 만남도 전날 끝내고 오늘 예약돼 있던 병원진료도 쿨하게 미뤄버렸다. 그러고 거실을 맞은 내가 처음으로 한 일은 책 세팅이었다. 테이블 위를 정리하고 곳곳에 책을 여기저기 놓아두는 일. 방학 동안 정신없이 여기저기 다니느라 집에 있던 책에 소홀해짐을 느꼈고 그 책들에게 안부를 묻고 싶었다. 그게 내가 첫 번째로 한 일이다.


두 번째는 무엇일까. 라디오를 켰다. 음악을 틀었다가 꺼버렸다. 다시 정적. 티브이를 켰다. 요즘 푹 빠져서 보는 '연인' 재방송이 했지만, 반복해서 너무 많이 본 탓에 더 보고 싶지 않았다. 티브이도 꺼버렸다. 라디오, 티브이, 핸드폰 같은 전자기기들은 내게 깊은 충족을 주지 못했다. 오랜만에 찾은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고 싶은데, 정작 그 무엇도 손에 잡질 못하면서 시간이 흘러가는 걸 지켜보다가 결국 다시 블루투스키보드를 잡았다. 일단 어제 있었던 그 만남에 대해서 몇 줄만 쓰고 다시 다른 일을 생각해 보자고 말이다. 키보드를 다시 두드리려고 하니, 무거운 책임감이 엄습했지만 잠시였고 거침없이 쓸 말을 적어내려 갔다. 역시 쓰기를 시작만 하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이것만큼 나를 평온하게 만드는 작업을 찾지 못했다. 마음의 소리를 마주하는 이 차분한 순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자몽청에 물을 희석해 얼음을 은 음료가 옆에 있으니 더 바랄 게 없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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